불법 왁싱숍 실태

2017.08.14 10:42:52 호수 1127호

오피스텔서 털을 밀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몸에 그림을 새긴 사람을 보면 수군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 가운데 등에 용이나 봉황 문신이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조폭이나 무뢰배였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이제 문신은 누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널리 확산됐다. 왁싱 역시 문신과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면도 빠른 속도로 부각되고 있다.
 



“신세계를 경험했다.” 지난 7월 서울 강남의 한 왁싱숍서 브라질리언왁싱을 받은 20대 여성은 놀라워하며 말했다. 왁싱을 받는 동안 민망하고 아팠던 기억은 금세 사라진 듯 했다. 속옷을 입거나 생리할 때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왁싱숍을 찾을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왁싱 인구↑

제모에 대한 관심은 여름철 그리고 여성에게 집중된 편이었다. 여름철 물놀이를 위해 비키니 수영복을 입어야 할 경우 제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키니라인 제모다. 비키니라인을 따라 털을 미는 것도 꺼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와 동시에 왁싱을 바라보는 시선도 관대해졌다. 왁싱의 장점이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알려지자 그 수요는 더 빠르게 증가했다. 

포털사이트에 ‘왁싱숍’으로 검색하면 상호부터 전화번호까지 수많은 정보가 나온다. 유명 왁싱숍의 경우 이용자들의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왁싱숍 고르는 법’이라며 체크리스트를 게재해둔 블로그도 있었다.


왁싱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수요와 비례해 공급 역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유명 피부숍에서는 왁싱을 전문 분야로 추가하는 일이 늘었고 왁싱만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도 많아졌다. 문제는 공급이 늘어나는 과정서 불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운영되는 숍도 함께 늘고 있다.

왁싱 관심 높아지면서
관련영업 빠르게 증가

서울 강남구는 지난 2개월 동안 관내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불법 미용시술을 해 온 27개 업소를 적발해 영업주 전원을 형사입건 했다고 밝혔다. 이들 업소는 관할 보건소에 영업 신고를 하지 않고 왁싱·피부 관리·속눈썹·반영구 화장 등을 불법 시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27개 업소 중 9개는 미용 관련 자격증조차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왁싱숍을 운영하려면 면허증과 피부미용사국가자격증이 필요하다. 면허증은 미용학과를 졸업하면 받을 수 있고, 피부미용사국가자격증은 필기와 실기 시험을 합격해야 발급이 가능하다. 

면허증이 있어야 숍을 차릴 수 있고 자격증은 실제 시술을 할 수 있다는 증표다. 면허증만 있을 경우 자격증이 있는 직원을 고용해 숍을 운영해야 한다. 면허증과 자격증 둘 다 갖고 있으면 창업과 시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또 현행법상 미용시술업은 상가 등 1종 근린생활시설에만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오피스텔이나 원룸서 왁싱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다. 다시 말해 왁싱숍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면허증과 자격증을 구비한 후, 상가에 가게를 얻고 관할 보건소에 영업 신고를 해야 한다. 이외의 방법으로 운영되는 곳은 불법 미용시술 업소로 분류돼 처벌받을 수 있다.

불법 왁싱숍 성행
강남서 27건 적발

실제 불법 미용시술 업소를 적발한 강남구 특별사법경찰은 27명의 영업주 전원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으로 형사 입건했다. 이들은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예정이다. 

선릉역 인근 한 오피스텔 내 2개 불법 미용업소는 타 수사기관에 무신고 미용업소 운영으로 적발돼 벌금을 납부하고도 불법 영업을 계속해오다 다시 적발됐다.

강남구 관계자는 “오피스텔이 일반 상가보다 상대적으로 임차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불법영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주기적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모두 적발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강남구 보건소 위생과 관계자도 “손님이나 경쟁 업소서 민원이 들어오면 단속을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업소를 찾아가도 문이 잠겨 있거나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단속할 수 없다. 그래서 때론 손님인 척 예약해 덮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통로?

왁싱숍이 성매매의 통로로 이용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남성 전용 왁싱숍을 가장해 유사 성매매 행위를 한 업주가 경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이들은 왁싱 과정이 끝난 후 추가 금액을 낸 고객을 대상으로 유사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일각에선 안마방이나 마사집숍에 대한 단속이 심화되자 왁싱숍이 새로운 성매매 통로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주로 전화로 예약이 이뤄지는 점, 오피스텔이나 원룸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점 등 적발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왁싱숍 살인사건’ 둘러싼 이야기

지난달 5일 왁싱숍을 운영하던 여성이 손님으로 가장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남성은 여성을 살해하기 전 강간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줬다. 이른바 왁싱숍 살인사건이 불거지면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서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 및 왁싱숍 살인사건 규탄집회가 열렸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는 여성혐오 범죄 관련 집회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강남역 10번 출구 집회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하다. 왁싱숍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은 더 이상 해당 사건이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여성혐오 범죄 공론화 자체를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마포서 피부관리실을 운영 중인 30대 여성은 “10년 넘게 혼자 피부관리실을 운영했는데 그 과정서 별별 일이 다 있었다”며 “1인 여성 사업장에 대한 일종의 안전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 분야 관계자는 “아직 경찰 조사나 정확한 통계 등이 없어 정돈된 입장을 전달하긴 어렵다”면서도 “여성 혼자 숍을 운영한 게 이번 범죄(왁싱숍 살인사건)의 원인이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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