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어린이집 병력기록 보니…

2017.07.17 14:08:16 호수 1123호

애 보내려다 애 잡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이에 대한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다. 훌륭한 교육에 대한 열망은 물론 건강 문제도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때론 그 욕심이 과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 최근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논란이 그랬고, 앞서 교육열이 과한 부모로 인해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 문제로 비화된 적도 있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집 병력기록 기재 논란도 그 사례다.
 



지난 6월 부산의 한 어린이집서 수업을 받던 4살 아이가 쓰러졌다. 아무 징조도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진 아이로 인해 담당교사와 원장 등 관계자들은 혼비백산했다. 아이는 호흡이 가빴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담당교사는 119에 신고한 후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담당교사의 응급처치로 아이의 의식이 돌아왔고 곧바로 119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엄마들 ‘쉬쉬’

아이의 부모와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어린이집으로 달려왔다. 담당교사는 병원으로 움직이면서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린이집 관계자와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제는 그 후였다. 아이가 쓰러진 것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갈렸다. 아이의 엄마는 담당교사를 향해 ‘아이가 뭘 먹었는지, 밥을 먹고 뭘 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담당교사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두 함께 먹은 점심 메뉴와 일정에 대해 답했다. 


아이의 엄마는 어린이집서 내놓은 식사와 일정 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담당교사는 별다를 것 없던 일정을 재차 설명하며 평소와 다름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아이의 병력기록이었다. 쓰러진 아이는 간질(뇌전증)을 앓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의 엄마가 어린이집에 해당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다.

선입견 생기고 허가 안 날까
의도적으로 기재 누락하기도

아이를 돌봤던 어린이집의 담당교사는 “아이가 간질을 앓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엄마가 왜 아이의 병력을 감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병력이 드러나자 엄마는 그제야 어린이집에 책임을 묻던 태도를 슬그머니 바꿨다. 그러면서 아이가 계속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담당 교사와 원장에게 부탁했다.

어린이집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서 만든 생활기록부 양식과 어린이집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입학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어린이집 자체 입학원서도 양식이 조금씩 다를 뿐 채워 넣어야 할 정보는 대부분 비슷하다. 

사고가 있었던 해당 어린이집의 입학원서를 보면 입소신청서, 개인정보·CCTV 촬영·응급처치·특별활동 프로그램 신청 등에 대한 동의서를 포함, 급식·간식에 대한 알레르기, 예방접종·병력기록·신체발달 상황 등 세세한 정보를 요구한다.

경력 10년차의 한 보육교사는 “정말 누구에게 어떤 사고가 언제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잘못 먹은 음식 하나, 놀이 하나로도 아이에게 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어린이집서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위해서”라며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어야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빠른 처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린이집 병력 기재 문제는 일종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의 검진 정보를 관련 기관에 전산으로 제공 중이기 때문에 아이의 병원 기록을 일부 볼 수 있다”면서도 “이전 기록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고 지병이 있어도 병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역시 어린이집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감추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기록 꺼려진다면
선생님한테라도 말해야

실제 엄마들이 많이 모인 포털사이트 카페 등에서는 어린이집 병력 기재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서 특정 병명을 진단받아 치료했던 사실을 공개하며 이를 어린이집 입학원서에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글쓴이의 고민에 다른 엄마들은 “입학원서에는 쓰지 말고 선생님에게만 알려라” “그래도 쓰는 게 좋다” “입학원서에도 쓰지 말고 선생님에게 말도 하지 마라”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갖고 있는 병력이 어린이집 교사들이나 주변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가 앓았던 병에 대해 너무 자세히 말하면 어린이집서 입학 허가가 나지 않거나 이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떠안기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과거 병을 앓았거나 지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날카롭기 때문에 생긴 고민이자 걱정이었다.

인천서 한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부원장 박모씨는 “아이가 못 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서는 엄마들이 정말 꼼꼼하게 적어주신다”며 “하지만 병력 기재란은 비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아이가 앓고 있는 질환이나 지병이 없어서 적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있는데도 감춘 상태서 사고가 발생하면 어린이집은 미칠 노릇”이라며 “여러 어린이집서 근무해봤지만 꼭 한 두 번은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갑작스런 사고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먼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엄마들이 아이의 병력을 감추는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는 설명이었다. 

관계자는 “간질 같은 병력은 남에게 알리기 예민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아이를 편견 없이 봐주길 바라는 엄마들의 생각이 과하게 나타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입학원서에 기재하는 게 꺼려진다면 상담 시간에 원장님한테라도 꼭 얘기를 하는 게 좋다”며 “잘못하면 아이의 생명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끝나지 않은 ‘안아키’ 논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이른바 ‘안아키’ 논란이 현재 진행형이다. 안아키는 2013년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이자 4형제의 엄마인 A씨가 개설했다. 아이가 아플 때 약 처방을 자제하고 자연스럽게 회복하도록 면역력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아이 열이 39도인데 방치하는 아내랑 이혼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시작된 안아키 논란에 누리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아키 회원인 아내가 아픈 아이를 방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글 이후 관련 제보가 속출하면서 누리꾼들은 안아키서 아동학대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관련 단체 역시 선 긋기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연치료를 할 수 있다면 약을 먹지 않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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