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박정희시대’ 비판 이재오 속셈

2011.06.15 12:53:29 호수 0호

버림받은 ‘왕의 남자’ 제 갈길 간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이재오 특임장관이 거듭 자신의 트위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엄혹했던 경험을 올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차별화하며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확보하려는 신호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해석에 이 장관은 “트위터 하기 무섭다”며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박 전 대표도 썩 유쾌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 흠집 내기에 분주한 이재오, 그의 속내는 무엇일까.

“난 비주류, 쓴 소리 하겠다”
박 전 대표 측 불쾌한 반응



4·27 재보선 참패 후 이재오 특임장관은 책임을 통감하며 한 달 가량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7·4 전당대회를 한 달여 남짓 앞두고 기지개를 켠 이 장관은 연일 박근혜 전 대표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 행보를 재개하자마자 박 전 대표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유신의 딸’ 박근혜?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앞두고 이 장관은 “유럽 특사 활동 보고 이외의 다른 정치적 의미를 낳는 것이 있다면 오히려 당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특사 보고를 듣고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특사 보고 외에) 당이 민생을 해결하고 신뢰회복을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래야 우리가 국민들께도 면목이 있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이 정치활동을 갓 재개한 이 장관의 행보에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이 정권성공과 정권재창출에 다시 한 번 공감대를 형성할지, 아니면 국정현안 조율에서 이견을 표출할지에 따라 이 장관의 행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회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 졌고 많은 정책 현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친이계는 “당 화합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모두 당과 나라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데 대해 당내 계파 갈등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쏟아졌다.

하지만 친이계의 좌장격인 이 장관은 ‘6·3 항쟁’ 47주년을 맞은 지난 3일 굴욕적인 한일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던 대학생들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박정희시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친이계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 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964년,1965년에 일어났던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 학생운동으로 1965년 군이 대학을 점령해 위수령을 내렸고 드디어 저는 대학 제적과 함께 수배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갈림길이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오늘은 군이 계엄령을 내려 학생운동을 탄압한 그날입니다. 47년 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당시 시위주동자로 중앙대에서 제적을 당했으며, 이후 군에 강제 징집돼 3년 뒤 만기 제대했으나 3선 개헌 등을 이유로 복교를 거부당했다.

이 장관은 종종 “학교 선생을 하거나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이 꿈이었는데 복교가 안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이 장관 개인에겐 의미가 남다른 날이지만, 정치권에선 하필 이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 전 대표와의 오찬 회동이 열렸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 가문과의 악연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이 장관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에 반대했다가 옥살이를 했다. 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3차례 옥살이를 한 이 장관에게 ‘유신의 딸’로 불리는 박 전 대표와는 좋지 않은 인연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3일에 이어 지난 6일에도 트위터를 통해 “1974년 서울구치소에서 그해 6월 첫 일요일 아내에게 첫 편지를 썼다. 그때 참담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방에서는 자기가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거 같았다”고 쓰며 ‘박정희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박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박 전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를 두 번이나 거론하며 우회적으로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사실상 열린 공간인 트위터에 이 장관이 비슷한 주제를 연거푸 언급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늘 본인의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지만 공개적으로 두 번이나 언급한 걸 보면 이 장관이 박 전 대표와의 차별화나 각 세우기를 통해 본인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같은 6·3 동지회 회원으로서 유신 세대가 적지 않은 이 대통령 주변 참모들과 한나라당에 박정희 시절의 ‘역사’와 박 전 대표의 ‘출신’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박 전 대표 쪽은 몹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반독재와 독재의 구도를 만들어 나름의 대선후보로 나서려고 명분을 축적하는 모양”이라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뒤 이 장관이 고립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장관이 자제력을 잃은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 장관 쪽은 확대해석은 금물이라는 반응이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박정희 정권 시절 겪은 투옥은 이 장관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이었다”며 “당시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사적인 공간에 쓴 것을 두고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확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 논란이 계속 되자 이 장관은 지난 7일 트위터에 “트윗하기가 무섭다”고 적었다. 이 장관은 “친구는 트윗을 접으라고 한다”며 “일부 언론이 너무 왜곡해서 이미지를 나쁘게 하려 한다. 갈등의 중심으로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윗 하기 겁난다”

여권 내 주류 중 핵심주류였던 이 장관. 그는 4·27재보선과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등을 통해 여권의 권력구도가 재편되면서 구주류 또는 비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장관 쪽은 이제 스스로를 비주류로 분류하고 비주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주류’ 쪽에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나면서 ‘현 정권 최고실세’, ‘왕의 남자’ 등의 타이틀과는 거리가 먼, ‘2선’으로 물러나 낮은 자세로 일관하겠다는 각오다.

신주류와 구주류의 대립과 갈등처럼 비치는 것은 이 장관도 부담스러워하지만, 궁극적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강한 비주류’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소신을 담은 쓴 소리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정치인 이재오는 원래 ‘비주류 정치’에 능합니다. 이제 비주류 대표주자이니 쓴 소리도 많이 할 겁니다.”라고 밝혔다. 최근 트위터 등을 통해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고, 박 전 대표를 겨냥한다는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알면서도 6·3 학생운동을 거론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 장관의 발언이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쓴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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