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사이버사령부 실체

2017.06.07 09:54:56 호수 1117호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19대 대선이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며 연일 미해결 과제들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하고 있다. 18대 대선과정서 불거진 국정원·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민낯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2심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 판결문을 입수해 18대 대선과정서 국군사이버사령부가 벌인 행위를 면밀히 짚어봤다. 
 



지난 18대 대선서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대의 대선 개입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2심서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7월 증거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오는 7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25만원 받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도 법망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은 소속 군인들을 동원해 인터넷에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당 후보·의원들을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했다.

군형법상 정치 관여,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심리단장은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2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법 형사2부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이를 왜곡했다”며 “부대원들을 동원해 헌법적 가치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의 댓글부대 운용 방식과 범죄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전 단장은 정치 관여와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았다. 군형법 제94조에 따르면 정치에 관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이 전 단장은 군형법 제94조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을 주장했다. 서울고법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적시했다. 또 ‘군 조직의 구성원인 군인이나 군무원 등의 경우 일반 국민에 비해 그 자유가 더 제한될 수 있다’는 2014년 헌재의 결정도 인용했다. 

심리전단의 정치 관련 댓글은 주로 이 전 단장에 의해 이뤄졌다. 이 전 단장이 대응대상을 선별해 대응논리와 함께 심리전단 2대에 지시하면 2대의 일부 부대원들은 구체적인 작전문구를 만들어 이 전 단장에게 승인했다.

이후 네이버 비밀카페에 그 작전 내용을 부대원들이 공유하고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위장문자를 발송해 작전 지시를 전파했다. 부대원들은 작전 지시에 따라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SNS에 글을 작성해 타인의 글을 리트윗했다. 부대원들은 비밀카페 댓글을 통해 자신들이 대응한 횟수를 이 전 단장에게 보고했다.

주목할 점은 부대원들이 댓글을 달면서 활동의 대가로 월 25만원 상당의 수당까지 지급받았다는 점이다. 주요사항에 대한 대응은 최소 1∼2주 동안 지속됐고, 심리전단 부대원들은 SNS 등에 월 할당량의 글을 게시하는 과정서 대응작전의 지시내용을 참고했다.

이들은 대응작전의 결과를 캡처해 제출하기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활동사항 보고 자료는 25만원 상당의 시간외수당 지급을 위한 자료로도 사용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심리전단은 군부대로서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 원칙이 중시됐다고 알려진다.

이 전 단장은 댓글 대응작전 활동에 대한 부대 장악력이 매우 컸다. 이 전 단장이 군수사기관서 “조직 내서 안 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한 점을 비춰볼 때 그의 말이 곧 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 단장은 국방이나 안보에 관한 사안에 대해서만 대응한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직접 대상으로 해 대응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무상급식’ ‘투표시간 연장에 관한 사안’ ‘김선동 전 의원의 최루탄 투척’ 등에 관해 대응을 지시하거나 직접 대응했다.
 

한미 FTA 반대자들에 대한 비난이 담긴 대응을 수차례 지시하기도 했다. 이 전 단장은 군검찰서 “한미 FTA 반대세력이 종북세력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고 진술키도 했다. 이 전 단장은 총선 또는 대선 직후 상황실서 “선거에 승리했다”며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박수를 치게 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심 판결…징역 1년6개월 선고
비밀카페로 정치관여·증거인멸교사 의혹

그는 지시를 따르지 않는 부대원을 전출시키기도 했고, 기사나 SNS에 대응할 때 정치적 표현을 주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사이버사령부 외부로 보고되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이름, 정치적 표현을 모두 삭제하거나 익명화해 정치적 중립성을 해한다는 지적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부대원 중 일부는 정치적 중립성 측면서 문제가 될 여지가 있음을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작전지시 내용상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관한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부서 소극적 반발 혹은 적극적 반발이 있기도 했다.

한 부대원은 “정치 관여 글은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글을 직접 쓰지 않고 문제 되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리트윗만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부대원은 “우리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느냐”는 말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단장의 또 다른 혐의는 증거인멸 교사다. 이 전 단장은 주로 노트북을 초기화하는 방식으로 증거인멸을 교사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전 단장이 부대원을 통해 초기화한 노트북 내에는 그의 정치 관여와 관련된 자료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적시했다.

이 전 단장은 국방부장관이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관여 의혹 조사를 지시한 직후에 부대원들의 장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부대원들 중 사이버활동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보관돼있는 팀장급 부대원들과 노트북 9대에 대해 우선적으로 초기화를 지시했다.

이 전 단장은 지난 2013년 10월20일에는 부대원 13명에게 ‘압수수색 대비 만전 신속히’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메시지를 수신한 부대원들은 다른 부대원들에게 전달키도 했다. 

이 전 단장의 증거인멸은 조사를 받고 돌아온 부대원이 “조사본부서 노트북을 초기화하지 말라고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노트북 초기화를 지시했다.

또 이 전 단장은 수사망이 좁혀오면서 초조한 모습도 보였는데 한 부대원에게 영상 등의 삭제를 지시하면서 “이거 밖으로 나가면 우리 다 죽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형 이유는?

재판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정황을 설명하면서 “대통령 선거에 관련한 의견까지 적극적으로 공표하면서도 이를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했다”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이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의 정치적 중립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적 배경의 산물로서 우리 헌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된 가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군사이버사령부는?

국군사이버사령부는 디도스 공격을 계기로 군 차원의 사이버 안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2010년 1월1일 국방정보본부 예하 사령부로 설립됐다. 이듬해 2011년 9월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라 대한민국 국방부 직속 사령부로 배속전환 및 증편됐다. 병력은 약 1000명에 달한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북한에 해킹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의 이메일 조사과정서 국군사이버사령부 또한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서 ‘시스체크’라고 불리는 보안점검 프로그램과 매뉴얼도 함께 유출돼 논란을 키웠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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