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윤회 카드’ 꺼내는 이유

2017.05.22 10:42:30 호수 1115호

정 볼모로 검·야 '두 마리 토끼' 사냥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청와대는 검찰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따라 수사해 논란을 빚은 ‘정윤회 문건’ 재조사를 지시하면서 검찰과 전 정권에 칼을 들이댄 모양새다. <일요시사>는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을 겨냥한 이유를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 11일 신임 민정수석, 참모진과 가진 오찬 자리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엄정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다음 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정윤회 문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공약의 첫 단추로 ‘2014 정윤회 문건’ 처리과정을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8가지 버전

정윤회 문건 사건은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검찰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은 없다’는 결론을 내려 국정 농단 사태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윤회 문건은 최순실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청와대 및 국정운영에 관여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이 문건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는 검찰 수사 초기부터 ‘문건 내용은 지라시에 불과하다’며 국기문란 행위로 선을 그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당시 검찰의 수사 방향과 관련해 문건 내용의 진위가 아닌 유출 경로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해당 문건과 관련된 수사는 문건 유출한 책임이 있는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이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되면서 일단락됐다. 

최근 청와대가 재수사 의지를 밝히면서 정윤회 문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양새다. 문서 유출로 처벌을 받은 박 전 행정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검찰은 정윤회 문건 2쪽 분량에 간단한 내용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문건에는 8가지 버전이 있었다”며 “검찰도 최초 문건을 포함해 8가지 버전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 내용을 다 담으면 ‘역린’이라며 수위를 조절하라고 지시해서 농도가 톤 다운됐다”며 “비공개 문건이었지만 검찰이 청와대에 협조해 문건을 받았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당사자인 정윤회씨는 “재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정씨는 한 언론을 통해 “재조사를 하겠다면 받아야지 별 수 없지 않느냐”면서도 “내가 비선 실세라는 문건 내용은 허구”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전 행정관의 주장에 검찰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 수사 당시 고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가 정씨의 부인이라는 내용이 단편적으로 적힌 문건만 확보했을 뿐 최씨가 정권 실세라는 내용이 서술된 문건을 확보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시 수사팀은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관들의 이른바 ‘십상시 모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이후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에서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은 여러 대의 차명폰을 사용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며 “검찰이 이런 부분까지 파헤치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정윤회 문건 재조사 방침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4일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과거 민정수석실서 작성된 각종 자료는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라 하더라도 임의로 들여다볼 수 없다”며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료를 보는 그 자체가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로 ‘정치검찰’의 인적 청산을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며 “실제로는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정치검찰을 만들려고 한다는 의혹의 눈초리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문건’ 재조사 지시…적폐청산 신호탄
검찰·자유한국당 압박카드 성공할까?


정윤회 문건 재수사로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당시 검찰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수사를 진행했다. 재수사가 진행되면 청와대의 하명수사가 있었는지 여부와 수사 지시 경로에 대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조사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검찰 수뇌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부도 관건이될 전망이다. 해당 수사는 최근 사의를 표명한 김수남 전 검찰총장, 유상범 창원지검장, 임관혁 부산지검 특수부장이 맡았다. 

만약 검찰이 청와대의 지시에 복종한 것이 드러난다면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문재인정부가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약들을 내세우며 검찰 손보기에 나선 만큼 이에 국민적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 문건 재수사를 두고 한 변호사는 “3년이나 지난 사건이고 그동안 검찰과 특검이 수사했던 내용이라 재조사가 잘될지는 미지수지만 검찰 입장에선 굉장히 아픈 재조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정윤회 문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그동안 국정 농단의 방조자라는 이야기까지 듣지 않았느냐”며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게 검찰을 위해서라도 좋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건 재수사가 본격화되면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비서관이 다시 수사 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비선 실세 정씨가 이재만 비서관 등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인사 방향 등에 간여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질 당시 이 전 비서관과 안 전 비서관은 국정 농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의 칼끝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 재수사를 통해 새로운 혐의가 밝혀진다면 법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압박수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의 대통령으로서 자유한국당 및 야당의 협조 없이는 정국을 이끌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때 자유한국당에 메스를 들이대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연결고리는?


바른정당 한 의원은 정윤회 문건 재조사에 대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면 또 갈라치기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며 “그런 부분은 법과 원칙에 따라가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다른 의원은 “정윤회 문건 사건도 그렇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는 게 맞다”며 “정윤회 문건과 최순실 사태,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연결되는 만큼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밝혀지는 게 옳다”고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개혁 방향은?

문재인정부는 검찰개혁 수단으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공약했다.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수처 설치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만큼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은 높은 상황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검찰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발탁한 파격 인선도 검찰개혁의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문재인정부는 검찰 내부 조직 개편에도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공안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전망이다. 이는 공안 검사의 강세가 사회 추세에 맞지 않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안 검사의 역할은 시대 변화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며 수사의 특수성도 인정돼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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