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엄마의 기억 쫓는’ 박진영

2017.04.24 10:39:50 호수 1111호

‘엄마의 병’에 렌즈를 맞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중견 사진작가 박진영이 오랜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시리즈를 통해 타인의 재난을 기록해 왔던 박진영은 ‘엄마의 병’이라는 개인의 재난으로 렌즈를 돌렸다. 개인전 ‘엄마의 창’ 전시 준비가 한창인 아트스페이스 J서 박진영을 만났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온 작가의 답은 생각보다 길었다. ‘사진’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뤘지만 그사이 작가가 흘리듯 들려준 가정사나 과거에서 사진작가이자 아들로서의 박진영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이야기’. 병실 침대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족발을 먹으며 한 대화는 작가의 카메라를 거쳐 사진으로 형상화됐다.

사진에 담긴 장소들은 엄마가 대화에서 언급한 곳이다. 엄마가 몇 번이나 읊조렸던 ‘후로리다’는 아마 미국의 플로리다였을 터, 작가는 그곳을 찾아 길에서 먹고 자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를 위해

박진영은 1987년 최루탄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던 이한열 열사가 담긴 사진을 보고 길을 정했다. 1987년 6월9일 정태원 전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이한열 열사의 사진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자 박진영의 인생 방향을 결정한 ‘큰 기로’가 됐다.


엄마는 ‘사진만 알던’ 아들을 위해 보험 설계사 일에 뛰어들었다. 필름값과 대학원 등록금은 모두 엄마의 손끝서 나왔다. 엄마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으로 작가는 사진만을 위해 종횡무진 세상을 누볐다.

작가는 한때 기자를 꿈꿨다. 한 언론사 공채시험 최종 단계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는 그는 “만약 기자가 됐다면 지금쯤 현장을 누비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일은 내 인생의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생각한 인생의 큰 기로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것, 에르메스 아틀리에, 고은사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큰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 것 등이다.

알츠하이머 앓고 있는 모친
병실서 나눈 대화 사진으로

처음 일본에 갔을 땐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며 “초기 3년 정도는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꾼 큰 기로는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에 규모 9.0의 지진이 덮쳤을 때 작가와 그의 아내는 도쿄에 있었다. 도쿄에도 진도 5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서 있을 수조차 없었지만 그는 차를 달려 후쿠시마로 향했다. 1박2일 동안 차에 기름이 다 떨어지도록 달렸던 작가는 일본 히타치 수출항에 값비싼 벤츠가 다 뒤집혀 널브러진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겠다고 결심했다.

벌써 3년째 후쿠시마를 방문하고 있는 그는 6개월 전에도 폐허가 된 그곳을 렌즈에 담았다. “처음 후쿠시마에 갔을 땐 냄새가 정말 심했고, 시체가 많았다”며 “전쟁보다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작가의 카메라에 담긴 참상은 지난 2015년 5월 강홍구 작가와 함께 개최한 2인전 ‘우리가 알던 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아내뿐 아니라 지인들은 매년 후쿠시마를 찾는 그가 피폭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한다. 그럼에도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일본의 축구선수 미우라 가즈요시의 말을 인용했다.

1967년생인 미우라 선수는 만50세가 된 지금도 현역 축구선수로 뛰고 있다. 기자들이 그에게 왜 계속 현역으로 뛰느냐고 묻자 “나는 축구를 더 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박진영은 “미우라 선수의 대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나도 사진을 더 잘 찍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1987년 사진 한 장에 작가로
매년 후쿠시마 찾아 참상 담아


박진영은 디지털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20㎏이 넘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사진을 찍지만, 눈앞에 보고 있는 풍경이 제대로 카메라에 담겼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다.

“올해로 사진을 찍은 지 30년째지만 필름카메라는 조금만 실수해도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작가가 골몰하고 있는 건 ‘빛의 축’이다. 작가에 따르면 사진은 공간과 빛, 시간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광화문에 가면 촛불집회를, 목포에 가면 1091일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찍을 수 있다. 바로 ‘공간의 축’이다. 빛의 축은 보통 태양을 가리킨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플로리다’와 ‘이즈반도’에는 마치 점찍은 듯한 빨간 태양이 잡혀 있다.

몇 단으로 구성된 사진은 태양을 어디에 두고 찍었는가에 따라 선명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역광으로 찍은 부분은 약간 흐릿하다. “보통 태양을 마주하고 찍으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는 역광이어도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다”며 “그때 자신만의 궁극의 기술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빛을 담다

박진영에게 전시는 작가가 만든 작품의 최종 단계다. 이번 전시가 마무리되면 그는 작품으로 엄마의 병실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엄마를 전시장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엄마가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래서 전시 날짜를 5월로 잡았다”며 “가족마다 남들은 모르는 아픔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을 돌아보면서 효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5월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박진영은?]

부산 출생


▲학력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중퇴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졸업

▲전시

‘우리가 알던 도시 강홍구 박진영 2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2015)
‘방랑기 1989-2013’ 고은사진미술관, 부산(2013)
‘사진의 길 : 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에르메스 아틀리에, 서울(2012)
‘ひだまり’ 토요타 아트스페이스, 부산(2011)
‘ひだまり’ 갤러리 S, 서울(2008)
‘The Game 분단풍경 다시보기’ 금호미술관, 서울(2006)
‘Boys in the City’ 금호미술관, 서울(2005)
‘서울…간격의 사회’ 조흥갤러리, 서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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