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24) 복수

2017.03.13 10:21:22 호수 1105호

핏빛으로 물든 사비성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흥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병사들이 두 사람을 양쪽에서 끼고 막사 밖으로 끌어내려 하자 애걸하듯 매달렸다.

결국 개 끌려가듯 질질 끌려간 곳은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마한 공터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품석과 서천은 사색이 되었다.

사색이 되다

품석의 마누라인 고타소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포박당하여 무릎 꿇려 있었고, 그들 앞에 도끼를 든 검일과 시퍼런 칼을 든 모척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검일 옆에 조그마한 탁자 위에는 검일의 아내였던 애랑의 두상이 놓여있었다.

“저 두 놈도 결박하라!”

검일의 노기에 찬 소리에 병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놈아, 네 정녕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더냐!”

모척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전만 해도 생에 대해 애착을 보였던 품석과 서천이 둘의 출현과 동시에 실낱같은 희망까지 포기한 듯 병사들의 움직임에 흐느적거렸다.

“소감이 어떠냐?”

검일이 도끼를 내려놓고 칼을 든 후 고타소의 곁에서 눈을 부릅뜨며 품석을 노려보았다.

“이보게, 검일. 내 잘못은 인정하겠네. 그러나 나의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

“이 놈아, 그러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리도 남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었더냐. 이 버리지만도 못한 놈!”


“내가 모든 벌 받겠네. 그러니 가족만은 제발!”

“네 놈의 죄가 네 놈 하나에서 끝날 일이더냐!”

“제발!”

품석을 노려보던 검일이 고타소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소?”

은근한 말투에 고타소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주시했다.

“지지리도 못난 남자를 만난 이년이 무어 할 말이 있겠소. 그저 박복한 이년 고통 없이 어서 보내주구려.”

이어 잠시 고개를 돌려 애처로운 시선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떨구었다.

“저승에 가면 괜찮은 남자 만나시구려.”


말과 동시에 검일의 칼이 번쩍였다.

이어 고타소의 머리가 밤나무에서 밤송이 떨어지듯 떨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순간 곁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절규가 일어났고 마치 그에 답이라도 하듯 머리 잘린 몸이 꿈틀거렸다.

품석이 차마 볼 수 없는지 고개를 돌렸다.

“여봐라, 저 놈의 눈을 이리로 고정시켜라!”

검일의 호령에 병사 한 명이 품석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턱을 돌려 검일 쪽을 바라보도록 했다.

“나 먼저 죽여주게.”

“그럴 수는 없지. 이 모습 그대로 보고 저승에 가서 만세토록 기억하며 고통 속에 살도록 해라.”

비죽거리며 답을 하는 검일의 모습이 마치 야차처럼 비쳐졌다.

검일이 천천히 품석의 딸에게 다가갔다.

“너는 할 말 없느냐?”

품석의 딸은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할 말 없냐고 묻지 않았느냐?”

검일이 다시 나직하게 말을 하고는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흰 자위로 뒤덮인 눈동자에 핏기 없는 얼굴.

비록 이빨은 서로 부딪치고 있으나 이미 혼이 완전히 빠져나간 상태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지지리도 못난 네 아비를 원망하거라!”

부하의 아내 탐한 대가는?
저승길에 오른 품석과 서천

역시 말과 동시에 칼을 내리쳤다.

이어 두려움으로 완전히 혼이 나간 품석의 어린 자식들을 차례차례 베고 천천히 둘에게 다가섰다.

“이놈아 어서 죽여라!”

눈앞에서 벌어진 처참한 광경에 품석의 혼도 반쯤 빠져나간 듯 탄식에 가까운 절규만 되풀이했다.

“흐흐 이놈아, 그리 쉽게는 안 되지. 네 놈은 아주 천천히 고통이 주는 두려움까지 맛보게 해줄 테다. 네 오장육부를 조금씩 잘라내 잘근잘근 씹어 먹을 테니 그동안 오매불망 네 놈의 계집이나 실컷 보거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칼을 품석의 턱에 대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애랑의 잘려진 머리로 향하도록 했다.

“네 놈은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느냐?”

검일이 그 상태에서 서천을 노려보았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힘들게 말을 하는 서천의 파리한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끝까지 궁색하게 변명하는구나. 그러니까 살려 달라!”

“그렇다고 살려 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 어서 죽여주게!”

작심한 듯 서천이 눈을 감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생각 잘했다. 그래야 죽어서는 아부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지. 부디 죽어서는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 만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동시에 검일이 품석의 턱을 받치고 있던 칼을 들었다.

“잠깐!”

시종일관 묵묵하게 지켜보던 모척이 나섰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그 놈의 목은 내가 베마!”

“형님이오?”

“같은 군인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니, 이놈은 내가 베야겠다.”

“형님 뜻대로 하십시오.”

서천과 모척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검일이 뒤로 물러섰다.

“죽는 순간까지 한 치 뉘우침도 없는 한심한 놈 같으니. 부디 저승 가서는 사람답게 살아라!”

동시에 칼을 비껴 내리쳤으나 칼이 닿은 곳은 목이 아니라 어깨였다.

“명줄은 긴 놈이구먼!”

서천의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말인지 신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를 살피며 서천의 뒤에 자리 잡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어서 죽여주시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한 줄 알았더냐. 저승길도 어찌 그리 편하게 가려 하느냐!”

다시 한 번 칼을 내려치자 이번에는 반대 쪽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쉽게 저승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모척의 의도에 따라 저승을 향하는 고통의 소리가 커져갔다.

“어떠냐? 견딜만하냐?”

모척이 다시 서천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통의 소리

“용서하오. 제발, 어서.”

“그리는 안 되지. 잠시 후 이 쥐새끼와 사이좋게 함께 보내줄 터이니 기다려야 되겠다!”

말을 마친 모척이 검일에게 눈짓을 보내고 뒤로 물러섰다.

모척의 의도를 알아챈 검일이 다시 품석 앞에 자리 잡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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