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 특집> 미제사건 파일6 ②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2017.02.06 11:01:00 호수 1100호

실종 46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금방 온다던 문자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만 발견됐을 뿐 십수 년이 지나도록 누가 어떤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인근지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의 흔적만 아른거릴 뿐이다.



2004년 10월27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서 대학생 노모양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행방이 묘연했던 노씨는 실종 46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잘못된 수사

학교서 중간고사를 치른 노씨는 오후 3시경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노씨는 동생 둘과 함께 집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헤어졌다. 노씨가 발길을 돌린 곳은 집에서 약 3km 떨어진 화성복지관 수영센터. 수영강습을 받기 위해서였다.

수영강습을 받기 직전인 오후 7시경 노씨는 어머니와 통화했다. 수영강습이 끝나면 자동차로 데리러 오길 부탁했다. 하지만 노씨 어머니의 일정 때문에 둘은 함께 귀가하지 못했다. 이 통화가 생전 노씨가 남긴 마지막 목소리다.

오후 8시25분경 수영강습을 마치고 안녕동 화성복지관 근처 버스정류장서 경진여객 소속 34번 버스에 탑승 후 노씨는 집에 있던 남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금방 갈게.” 그러나 노씨는 영영 오지 못했다.


오후 8시35분경, 노씨는 수원대학교 정류장을 지나 봉담읍 와우리공단서 서너명의 승객들과 함께 하차했다. 와우리공단은 노씨의 집에서 3km 떨어진 곳이다. 정류장서 내리는 장면이 버스 CCTV에 포착된 후 노씨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오후 11시까지 귀가하지 않는 딸이 걱정된 어머니는 통화를 시도했으나 노씨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곧바로 태안지구대에 실종신고가 접수됐고 경찰과 가족은 다음 날인 28일 새벽 3시까지 집 주변을 수색했으나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오전 7시30분경 노씨의 휴대전화 번호로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동네 신문 배달부인 38세 김모씨. 오전 5시 신문배달을 하던 중 김씨는 노씨의 휴대전화을 주웠고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통화 목록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발견 당시 휴대전화는 흠집 하나 없는 깔끔한 상태였다.

휴대전화가 발견된 곳은 노씨의 집 반대 방향으로 화성복지관서 4km나 떨어진 협성대학교 근처 커피자판기 옆이었다. 노씨가 자발적으로 집에서 반대 방향인 협성대학교 근처로 갔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에 경찰은 노씨의 신변에 이상이 있음을 가정하고 휴대전화 발견 장소를 중심으로 수사를 개시하기에 이른다.

아른거리는 ‘화성연쇄살인’ 기억
눈 앞서 놓쳐버린 살인범 어디로?

오전 10시30분 휴대전화 발견 장소에서 노씨의 집 방향으로 1.6km 떨어진 곳에서 보라색 티셔츠와 검은색 후드점퍼가 발견됐다. 티셔츠 곳곳에 주로 야산서 자라는 주름조개풀이 묻어 있었다. 노씨의 흔적은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티셔츠가 발견된 지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정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 있는 청바지가 발견됐다.
 

청바지 발견 지점서 800m 떨어진 곳에서 브래지어, 브래지어 발견 지점서 50m 떨어진 곳에서 흰색 양말, 양말 발견지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운동화 왼쪽 부분을 찾아냈다. 나머지 운동화 오른쪽은 4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노씨 자택서 약 7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모든 유류품은 실종된 노씨의 소품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후 4시 운동화가 발견된 근처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저수지서 노씨의 면티, 팬티, 가방, 화장품이 발견됐고 31일 오후 12시30분경 저수지 근처 도로변서 수영강습에 쓰인 수영모와 물안경, 3시30분경 수영복과 쇼핑백이 연이어 목격됐다.

그러나 정작 노씨의 신원은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46일이 흘러간 후 노씨는 싸늘한 주검이 돼 모습을 드러냈다.


12월12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태봉산서 부동산 거래를 위해 일대를 둘러보던 부동산업자 홍모씨는 괴이한 광경을 발견했다. 들쥐들이 모여 무언가 부지런히 갉아 먹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들쥐들이 갉아 먹던 것은 살점이 일부 남은 채 뼈가 드러나 있는 사람의 시신이었다.

부패가 꽤나 진행된 상태라 신원 파악이 어려웠지만 결국 이 시신은 12월14일 국과수의 부검 결과 노씨로 밝혀졌다.

시신의 위장서 떡조각, 양배추 등이 나왔다. 실종 당시 노씨가 동생들과 분식을 먹었다는 점에서 실종 당일 살해됐다고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시신에서 흉기로 찔리거나 골절 등의 흔적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 질식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노씨의 신원이 파악된 후 경찰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청바지서 발견된 정액을 기초로 노씨 주변인물과 화성 일대 택시기사, 전과자들의 DNA 샘플 검출작업이 이뤄졌다. 당시 용의선상에 이름을 올린 인원만 4600여명에 달한다. ‘인권침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가족과 경찰은 더 이상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국과수 감정 결과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건 당일 노씨를 태운 버스기사와 승객에게 최면수사도 감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서 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거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역과 매우 인접한 데다 수법도 상당히 비슷했다. 노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한 신문 배달부 김씨도 유력한 용의자로 몰렸다. 김씨가 전과 4범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명확한 물증은 끝내 찾지 못했다.

서서히 잊혀가던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은 2015년 2월28일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다시 주목받았다. 청바지서 채취한 DNA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사실 확인 결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측의 입장이 뒤늦게나마 전해졌다.

기회 놓쳤다

재감식을 통해 범인을 붙잡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그러나 끝내 유가족의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바지의 행방을 두고 경찰과 유가족이 상반된 주장을 펼친 까닭이다. 수사 담당 경찰 측은 검식이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청바지를 유가족에게 돌려줬다고 주장했고 정작 유가족 측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셈이다. 2019년 10월27일 만료 예정이었던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시효 무기한 연장이 이뤄졌다는 게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한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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