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는 현대중공업 진짜 노림수

2016.11.22 10:17:25 호수 1089호

하다 하다 안되니 ‘MJ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현대중공업이 회사 쪼개기에 나섰다. 중차대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분사를 결정한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 차원이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몇 년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연결기준 영업손실이 각각 3조2000억원과 1조5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2014년 말 권오갑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해 1월 1500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고 올해 5월에도 2000명이 사직서를 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훨씬 큰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 중이다.

살길 찾아
몸집 줄이기

현대중공업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그룹을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로봇 ▲서비스 등 6개 회사로 분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한 지붕 밑에서 독립경영을 유지하기보다 아예 회사 자체를 쪼개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선·해양·엔진을 제외한 분사되는 5개사 사업 매출은 3조8000억원대로 현대중공업 3분기 전체 매출(28조9800억원)의 13%에 해당된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해왔다. 현대커민스, 독일 야케법인, 중국 태안법인 등 비주력사업을 정리한 데 이어 현대종합상사,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자원개발은 계열 분리됐다. 현대아반시스 매각과 호텔사업 독립경영 체제 구축도 비슷한 시기에 이어졌다. 분사 결정 역시 이 같은 움직임의 연장이다.
 

그룹의 기존 차입금은 분할되는 회사로 상당 부분 이전될 전망이다. 6개 독립회사 중 규모가 큰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은 분사된 회사에 차입금 배정이 가능한 사업분할 방식을 따른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그린에너지 ▲서비스 부문은 현물출자 방식으로 분사된다. 정확한 분할 비율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회사 부채 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분사가 완료되면 기민하게 시장 흐름에 대처할 여력도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극복 플랜
진짜 계획은?

문제는 분사 방침이 노조의 강한 반발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추가 자구계획이 확정된 지난 6월부터 파업을 실시하는 등 분사에 반대해왔다. 분사가 시행되면 노조 입장에서는 기존 현대중공업 본사에서 받던 급여를 포함해 복지혜택 등이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사를 통해 노조의 규모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팽배하다.

지난 16일에는 울산 본사 노조 조합원을 주축으로 회사의 결정을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이 발생하기도 했다. 노조는 이달 중으로 3차례 더 울산 본사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을 이어간다는 복안도 마련한 상태다. 절차를 밟고 있는 금속노조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는 한편 투쟁 수위를 높여 전면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그룹사 6개 부문 회사로 분리 추진 발표
실상은 경영권 승계 물밑작업?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중공업 분사가 경영권 승계 구도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표면상 현대중공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으로 분류된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 1987년 회장을 거친 후 2001년 고문으로 물러나 지금껏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최대주주 자리는 유지한 상태에서 정치인으로서 무게중심이 실린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정 이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후퇴한 사이에 회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렇다고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전무한 건 아니었다. 정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전무(1982년생)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오너경영 체제로 복귀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정 전무는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임원 직급을 달고 그룹 승계구도에 이름을 올리는 재벌가 후계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2009년 대리로 입사한 정 전무는 반년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2013년 부장 직함을 달고 회사에 복귀했다. 본격적으로 승계 교육을 받기 시작했던 정 전무는 이듬해 임원으로 승진했다. 현재 정 이사장의 자녀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지분 승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중공업은 현대삼호중공업 지분 94.92%를 손에 쥔 상태다.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 지분 42.34%를, 현대미포조선은 현대중공업 지분 7.96%를 보유 중이다. 아직까지 정 전무는 상여금 등으로 받은 현대중공업 주식 617주가 전부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지주사 전환을 통해 본격적인 지분승계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 이사장이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정 전무가 경영권을 승계할 시기가 빨라질 거란 분석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곳이 '현대로보틱스'다. 이번 분사 결정으로 ▲그린에너지 ▲서비스 부문은 신설회사인 현대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될 예정이다. 로봇 부문은 비상장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 차입금을 떠안는 대가로 지분(91.1%)을 확보하게 된다. 향후 로봇 부문이 현대중공업 지주사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정 이사장이 향후 인적분할 하는 4개 회사의 지분을 지주사가 될 현대로보틱스에 현물 출자하게 되면 10%대 지분율이 40%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지분 승계가 이뤄지면 정 전무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을 확보하게 된다.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될 시 지배구조 개선은 물론이고 차후 경영권 승계까지 가능한 셈이다.

진짜 이유는
경영권 승계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뿐 정 이사장이 오너 경영인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14년 긴급 투입된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모두 정 이사장과 오래전부터 연을 맺어 온 최측근이다. 겉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지만 실상은 최대주주의 최측근이 경영을 맡는, 최대주주가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임원 25%를 내보내며 고위직 의자 빼기에 나섰지만 정 전무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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