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 탐색

2016.11.07 11:40:04 호수 1088호

“고구려의 혼을 지켜라”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계소문이 예복을 갖추어 입고 아침 일찍 안학궁으로 걸음을 놓았다.

조정에서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영류왕을 만나 직접 일의 전모를 따져 물을 참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처사였다.

단순히 대대로란 직책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찌 북방 오랑캐들, 특히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진행 중인 장성 축조작업을 멈추라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필시 당나라의 압력이 있었거나 아니면 당나라에 아첨하는 세력들이 모종의 일을 획책하기 위해 그리 일처리 했는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물론 자신이 그들의 눈에서 벗어난 부분도 간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귀족이랍시고 거드름 피우며 고구려의 혼을 좀먹는 족속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귀족들을 무시했고 어떤 경우엔 아예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초래된 일이라면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뿌리까지 뽑아 완전히 갈아치우는 방법, 결국 피를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다지며 안학궁 가까이 이르자 두 명의 병사가 길을 막아섰다.

“비켜라!”

연개소문이 한마디 내뱉고는 자신을 막아 선 병사와 주변 병사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회의 시작 전까지는 아무도 들일 수 없습니다.”


“뭐라!”“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지엄한 명이 있었습니다.”

“누가!”

병사가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이놈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고함과 동시에 바로 앞에 선 병사의 허리에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나 연개소문이다. 이곳 책임자는 어느 놈이냐!”

칼을 든 연개소문이 살기를 품은 눈으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연개소문이라는 말과 갑자기 돌변한 상황에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순식간에 칼을 빼앗긴 병사는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기를 잠시 후 한 병사의 안내로 중간 지휘관 정도 되어 보이는 군관이 급히 다가왔다.

“대인께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연개소문을 잘 알고 있는 듯한 군관이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를 알현하고자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군관이 답에 앞서 주위 병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작심한 듯 연개소문 곁에 자리했다.

“소장이 모시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낯은 익지만 누군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를 바라보며 칼을 다시 병사에게 돌려주었다.

“어제 대신들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어느 누구도 들이지 말라 했습니다.”

“어느 놈이 그랬단 말인가?”

“이리 대신을 중심으로…”

그 다음 말은 안 들어도 훤했다.

슬그머니 이가 갈렸다.

“대인, 저희들은 오로지 대인만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군관을 살펴보았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도국이라 하옵니다만, 저희 같은 놈들의 이름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유사시에 대인을 따라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진심어린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말을 새기며 영류왕과 귀족들의 처사를 생각했다. 절로 이빨이 갈렸다.

왕의 거처에 도착하자 연개소문의 출현을 알아챈 궁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쩔쩔맸다.

그렇다고 경비를 담당하는 군관과 함께 들어선 그를 제지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어쩔 수 없이 연개소문이 왔음을 고하였다.

살기 어린 연개소문…영류왕과 독대
갈팡질팡 영류왕…고구려의 미래는?

“무어라! 아직 회의가 열리기 전 아니냐?”

“전하, 신 연개소문입니다. 전하를 알현하고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나이다.”

연개소문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안으로부터 어수선한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얼마 후 안으로부터 들이라는 전갈이 전해졌다.

연개소문이 마음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서자 부스스한 모습의 영류왕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맞이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인 일인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영류왕을 보자 은근히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납득하지 못할 일이라니?”

“신의 직책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북방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한 공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전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영류왕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씀 주시기 곤란하시옵니까?”

연개소문이 차분하면서도 음험하게 말을 하고 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영류왕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흡사 주객이 전도된 듯했다.

그를 살피며 바로 일을 벌일까 하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미 작정한 일 섣불리 행동하면 오히려 모든 일 그르칠 수 있었다.

호흡을 조절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며 영류왕의 답을 기다렸다.

“실은 내 대인을 부르려던 참이었네.”

영류왕이 핑계거리를 찾는 듯 우물거렸다.

“전하, 바로 여쭙겠습니다. 당나라 놈들의 요구 때문입니까 아니면 조정에서 내린 결정입니까?”

“당나라가 드러내놓고 우리 내정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면 조정 대신들이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입니까?”

영류왕이 다시 우물거렸다.

가만히 영류왕을 바라보며 저걸 왕이라고 인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솟구쳤다.

“전하, 소신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말해보게.”

두 가지라는 소리에 적이 마음이 놓였는지 영류왕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누구의 나라이옵니까?”

영류왕이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양이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연개소문을 주시할 뿐이었다.

“전하, 이 나라는 고구려 혼의 나라입니다.”

영류왕이 고구려의 혼을 되뇌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만의 나라가 아닙니다.지금까지 피땀 흘려 고구려를 일구어낸 우리 선조들과 뒤를 이어 이 고구려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물려받은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무슨 의미인가?”

“우리 고구려의 혼이 일부 사람들의 알량한 이욕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특히 오랑캐들에게 고구려의 혼을 팔아넘기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연개소문이 오장을 끄집어내듯 절절하게 말을 이었다.

“내 무슨 말인지 알겠네. 다음은 무엇인가?”

빨리 말하고 나가라는 영류왕의 의도를 연개소문은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 없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전하, 왕과 귀족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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