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6) 계비

2016.10.31 09:56:20 호수 1087호

사택비에 빠진 효의 운명은?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무왕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방금 전에 보였던 무기력함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군왕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태자는 한 나라의 임금이 무어라 생각하느냐?”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듯했다.

임금인 당신이 있는데 비록 아들이지만 임금에 대해 언급하다니.


“아바마마, 소자가 어찌 보위에 대해 논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저 소자는 아바마마께서 오래 오래 이 나라를 경영하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방금 전 말했듯이 생명체는 오는 순간 가게 되어 있고 이제 내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네 의견도 한번 들어 보아야겠다.”

“아바마마, 소자에게 정령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 태자는 보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냐?”

“아바마마께서 건재하신데 소자가 어찌 언감생심 생각이나 할 수 있는지요.”

무왕이 잠시 침묵을 지키며 효를 주시했다.

“요즘 들어 부쩍 네 계모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당연한 일이옵니다. 비록 제게는 계모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답은 그리했지만 머릿속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냐?”


차마 답을 할 수 없었다.

이어 무왕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온화한 표정으로 효를 바라보았다.

“네 계모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능히 너라면 백제의 중흥은 물론 가족의 화합도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아바마마께서 하실 일이옵니다!”

“아니야. 이제는 서서히 마무리하도록 해야지. 그리고 내가 태자에게, 내 큰 아들에게 부탁하려 한다. 들어줄 수 있겠느냐?”

“부탁이라니요, 당치않습니다!”

효의 목소리가 다시 가래 끓는 듯했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네 계모와 그 일족의 목숨을 보전해줄 수 있겠느냐?”

“아바마마, 고정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사택비를 각별히 대해줄 수 있겠느냐?”

“아바마마!”

이제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그리해야 하느니라.”

어느 날 저녁 사택비로부터 들라는 전갈을 받고 효가 서둘러 거처를 찾았다.

거처에 들어서자 속이 보일 듯 말 듯 얇은 옷으로 치장한 사택비가 주안상을 마련해놓고 요염한 모습으로 맞이했다.

“아바마마는?”

“순행 떠나셨지요.”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 무왕이 백제의 실정을 살핀다는 이유로, 아니 생의 막바지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겠다며 태자인 효에게 궁궐 일을 맡기고 남쪽 지방으로 순행을 떠났던 터였다.

“그런데 어찌 함께하지 않으시고.”

“그야…”

이미 훤하게 알고 있을 일을 물어보는 효의 진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지 사택비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어 미소를 보이며 효의 한쪽 팔을 꼈다.

순간 사택비의 가슴에 닿는 야릇한 촉감과 그녀의 향기로 인해 효의 온 몸의 기운이 한쪽으로 쏠리며 경직되기 시작했다.

“오늘은 소녀가 모시고자 하는데 싫으신 모양입니다.”

“허허 누가 싫다 했소. 너무나 황공스러워 그러지요.”

헛기침 한 번 하고는 슬그머니 몸을 사택비에게 돌렸다.

감쌌던 팔이 풀리면서 자연스레 두 몸이 합치되었다.

“아바마마께서 계시지 않다고 이래도.”

사택비의 입이 이미 효의 입을 덮고 있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순간 효도 본능적으로 사택비의 허리를 감쌌다.

무왕 궁 맡기고 남쪽 지방 순행
태자를 전하라 부르는 이유는?

“태자, 아니 전하께서는 소녀가 싫으신가요?”

입을 뗀 사택비가 양팔로 효의 목을 감쌌다.

“전하라니!”

반사적으로 답한 효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 걱정 마세요.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전하라는 말은 삼가함이.”“왜요, 제가 미덥지 못한가요?”

“허허, 그런 게 아니라 해도.”

“그러시면?”“아직은 아바마마께서 계시지 않소.”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택비가 효로부터 천천히 물러나 상 앞에 자리 잡았다.

“그동안 많은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태자께, 아니 전하께 굳은 약조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감히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사택비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주시하자 순간적으로 효의 마음이 출렁거렸다.

“어서 앉으시지요.”마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아니 자석에 이끌리듯 자리했다.

“한잔 받으시지요.”

효가 잔을 들자 사택비가 조심스럽게 술을 따랐다.

“오늘 태자 저하께 제 목숨을 맡기고자 합니다.”

“목숨이라니!”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왜요, 아니 되겠습니까?”

되묻는 사택비의 눈가가 촉촉하게 변해갔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가슴속으로부터 솟구쳤다.

효가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사택비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간절히 바라던 바요.”

“추호도 변함 없으셔야 합니다.”

효가 대답 대신 사택비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기를 잠시 후 사택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효에게 큰 절로 예를 올렸다.

잠시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던 효가 급하게 몸을 숙여 사택비를 일으켜 앉혔다.

“그대도 한잔하시겠소?”

대답 대신 닿을 듯 가까이 다가온 사택비의 눈동자가 불빛에 춤추고 있었다.

“저뿐 아니라 저의 주변 모두를 거두어 주셔야 합니다.”

“그대가 바로 나인데. 내 어찌 그대를 내칠 수 있겠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치고 애절하게 바라보자 사택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 시간 이후로 저의 모든 것은 서방님의 소유이옵니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저고리를 벗자 효가 얼른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치마끈을 잡았다.

그 상태에서 잠시 사택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택비의 눈가에 고인 이슬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보이기 부끄러웠는지 사택비가 효의 머리를 감쌌다.

치마끈을 끄르기 전에 사택비에게 얼굴을 묻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애초에 권력 이양의 문제로 접근했지만 사택비는 묘한 여인이었다.

그 순간까지 숱한 여인을 겪어보았으나 이 여인은 알아갈수록 묘했다.

미모가 특별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매가 특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냄새가 풍겼고 그 냄새는 항상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런 연유로 무왕이 애지중지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냄새의 진위를 알아내겠다는 듯 효가 서서히 얼굴을 들고 치마의 한쪽 끈을 당겼다.

치마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색다른 세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내 아버지, 편하게 마감하실 수 있도록 하시게!”

격동의 시간이 지나자 효의 떨리는 목소리가 사택비의 귀를 통해 가슴으로 깊이 깊이 전달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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