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겨우살이’ 교도소 가는 사람들

2016.10.31 09:43:58 호수 0호

“적어도 끼니 걱정은 없잖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날씨가 쌀쌀해지자 최근 노숙인들 사이에선 교도소가 ‘핫플레이스’로 자리잡고 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계절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교도소를 주거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다 입혀주고 치료해주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까지 제공해주는 데 있다. 사회서 적응 못한 사람들은 차라리 제한된 영역에서 국가가 돌보는 삶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경제불황 속에 수은주마저 떨어지면서 마땅한 거처를 구하기 힘들어 제발로 구치소 등을 가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현행법(형법 제69조)은 벌금 등 미납자에게 구치소·교도소서 노역하는 만큼 해당 금액을 탕감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 ‘환형유치제’를 운영하고 있다.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일당은 5만∼10만원으로 환산되고 있다. 노역을 하면서 구치소에 머무는 동안 숙식까지 제공된다. 때문에 구치소·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은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철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노역장은 초만원

지난 7월31일 부산 북부경찰서는 여관에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로 A(48)씨를 붙잡았다. A씨는 북구 구포의 한 여관서 침대 시트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절도 등으로 여러 차례 범행을 저질러 교도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범행은 지난해 5월 출소 후 보호관찰을 받으며 생활 중 생활고를 비관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마음을 잡고 돈을 벌어보려고 했는데 직업도 구해지지 않고 돈벌이도 없어 교도소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5월에는 “다시 교도소에 가고 싶다”며 상습적으로 돈을 안 내고 음식을 먹은 오모(50)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오씨는 2015년 10월부터 8개월간 서울 성북·강북구 일대 음식점에서 6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무전취식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씨는 무전취식을 하다 풀려나기도 했으나 “교도소에 가고 싶으니 구속이 안 되면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겠다”며 계속 무전취식을 일삼았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상해·무전취식 등의 혐의로 수감됐다가 2014년 12월 출소했다. 이후 아파트 분양대행업체에 취직하는 등 재기를 꾀했으나 여의치 않자 생활고에 시달렸다. 경찰 조사에서 오씨는 “계속 자살 충동이 들어 차라리 교도소에 가면 억지로라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할 범행동기나 이유도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의 이른바 ‘묻지마 범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일부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판 과정서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 범행에 나섰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는 점이다.

일부러 죄를 저지른 데에는 경제적 빈곤이 큰 영향을 끼쳤다. 범행 전까지 별다른 직업 없이 무직자로 생활해오던 이들은 일정한 소득 없이 배고픔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감시와 통제 속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겨울철 앞두고 일부러 죄짓고 감옥행
“삼시세끼 주는 교도소가 낫다” 고백

하지만 교도소에 들어가고자 일부러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막상 징역형이 선고되자 항소하는 경우도 있다. 징역 3년이 나오자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가 기각된 사례가 있었다. 한 노숙인 역시 일부러 교도소에 들어가려고 본드를 흡입해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지만 형을 낮춰달라며 항소했다.

2013년 대검찰청이 발간한 <묻지마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12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87%가 무직 또는 일용직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63%가 30∼40대 중년들이었다. 이처럼 사회에서 생활고로 좌절감을 느낀 중·장년층이 ‘마지막 출구’로 교도소를 택하면서 관련 범죄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신규 재소자 중 60대 이상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60대 이상 신규 재소자 비율이 2011년만 해도 5.8%에 불과했으나 올해(지난달 말 기준)는 10.6%까지 상승했다. 전체 재소자 가운데 60대 이상 비중도 9.8%에 달한다. 노인 재소자의 증가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현상이다.

지난해 말 60대 이상 인구가 전체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다. 2010년(16.6%)보다 3.2%포인트 늘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령 인구의 증가 속도에 비해 노인 재소자가 좀 더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절도 범죄 중 60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과 2012년 각각 5% 수준이었으나 2014년엔 8.6%로 급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노인들의 절도 범죄 재범률(61.9%)은 다른 범죄보다 눈에 띄게 높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령의 전과자들은 출소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며 “차라리 교도소가 낫다며 경범죄를 저지르고 재입소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2014년부터 지방교정청별로 ‘노인 수형자 전담시설’을 정해 노인 전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방교정청별로 각 1개 기관(서울남부교도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광주교도소)을 지정해 노인 수형자 맞춤형 시설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징역형을 받더라도 노인 재소자들은 건강 상태에 따라 종이가방 접기 등 가벼운 작업을 맡긴다. 건강검진도 연 2회(일반 재소자는 연 1회)로 늘렸다.

가을부터 골머리

법무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노인 전용 교도소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1조2000억원 수준(작년 말 기준)인 전국 교도소 운영비용은 매년 3∼4%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재소자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재취업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