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위기의 슈틸리케

2016.10.17 11:25:47 호수 0호

마지막 기회…우즈벡 단두대 매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갓틸리케’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한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란과의 맞대결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와 더불어 경기 직후 기자회견의 ‘누워서 침 뱉는 격’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11일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4차전서 전반 25분,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졌다. 이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이 질 수도 있다. 실제 한국은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는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서 42년간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이날 패배로 한국의 아자디 스타디움 원정 전적은 2무 5패가 됐다.

“공격수 없다”
해선 안될 말

그럼에도 축구팬들과 전문가 사이에선 슈틸리케호 위기론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위기론을 키운 것은 경기 결과보다는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과 경기 후 터져 나온 대표팀의 날카로운 파열음이다.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90분 내내 유효슈팅 ‘제로(0)’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냈다. 0대1로 패한 게 다행이라고 할 만큼 한국은 무기력했다.

이란전 패배는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2년 여간 화려한 성적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곪아 터진 참사다. 전술 부재, 용병술 실패, 감독의 잘못된 진단이 합쳐진 결과다. 전문가들은 “손흥민 등 일부 선수는 2년 전보다 성장했지만 대표팀 전체의 능력은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대표팀은 승점 7점(2승1무1패)으로 A조 3위가 되며 각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 확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2차 예선 때까지 ‘갓틸리케’로 불렸던 슈틸리케 감독은 ‘탓틸리케’로 불리며 비난을 받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전 패인을 선수에게 돌려 들끓는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경기 직후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에 김신욱을 최전방에 투입해 득점 루트를 만들려 했지만 잘 안됐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이 대놓고 경기 패인을 선수들에게 돌린 것이다.

그러자 손흥민은 “다른 나라 선수까지 언급하면서까지 우리 선수들 사기를 떨어뜨린 건 아쉽다. 한국에도 좋은 공격수가 많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축구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네티즌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4골을 터뜨린 손흥민을 두고 소리아 운운한 건 명마를 가진 자가 당나귀를 부러워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비난이 확산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소리아를 거론한 것은 그 선수의 특징을 분석해 우리도 잘해 보자는 의미였는데 잘못 해석된 것 같다”며 “우리 팀의 공격수 자리에 다른 선수를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도 있는데 굳이 소리아를 선택하겠나”라고 해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패배 원인으로 한국 축구의 유소년 시스템 문제도 끄집어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이란 선수에 비해 신체적인 면이 약하다. 유소년 단계부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팬들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선생님을 모셔왔더니 중학교 때 공부하지 않아 대학을 못 보낸다는 격”이라며 비난했다.

이란 원정 졸전 ‘유효슈팅 0’ 수모
게임 끝나고 선수들 탓…무너진 신뢰

사실 굳이 이번 경우만 아니더라도 슈틸리케 감독의 부적절한 언행은 최근 점점 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중국과의 1차전 직후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신의 용병술에 대한 비판 여론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카타르전 후에는 “팬들의 비난이 심해서 이럴 바엔 이란에도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지난 6일 카타르전(3-2승) 당시 2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수비수 홍정호를 두고 “두 번이나 실수를 저지르고 퇴장까지 당했다”며 비난했다. 이란전 출국길에는 “역전승을 거뒀는데도 여론이 차갑다.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부임 초기 겸손하고 모범답안에 가까운 인터뷰와 합리적인 태도로 팬들의 호평을 받았던 그 슈틸리케와 과연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정작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는 이중잣대로 인해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팬들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10월 A매치 소집명단을 발표하던 자리서 손흥민 등 일부 스타 선수들의 태도 문제를 거론하며 “불손한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교체되면서 물병을 걷어차거나 악수를 거부하는 등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슈틸리케 감독이 최근 대표팀 운영을 둘러싸고 보여준 수많은 실언들은 팬들에게 물병이나 수건 투척 이상의 실망과 불쾌감을 안겨준 꼴이 됐다.


조 3위로 추락
이대로 가다간…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논란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강경발언을 이어가며 논란이 사그라질 줄 모르고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나가라면 나가겠다”고 강한 어조로 발언, 다시 한 번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슈틸리케 감독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도 아쉬웠다”며 “우즈베키스탄(11월15일)과의 경기를 위해 이번에 부족했던 점을 파악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란과의 경기 전까지 우리는 최종예선 3경기에서 무패를 기록했음에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근 경질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거취와 별개로 (우즈벡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대로 준비하게 하겠다”며 “다만, 한국 축구는 지난 12년 동안 몇 명의 감독을 교체했는지 묻고 싶다. 10명이다. 평균 15개월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새로운 감독 밑에서 한국 축구는 무엇을 얻었나”고 경질만이 답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입지에 단단히 벽을 치려는 모습이었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다소 긴장된 표현으로 인터뷰에 나섰고, 자신의 발언이 오해를 불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선수들과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았다. 선수들도 어떤 의도인지 이해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번 졌다고
경질 얘긴 좀…

슈틸리케는 1954년 11월 15일 출생으로 1975년에는 VfL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서, 1985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서 UEFA컵을 들어올려 지금도 두 팀에서 전설로 불린다. 선수 시절 초창기에는 분데스리가 VfL 보루시아 뮌헨글라트바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에는 부동의 명문 바이에른 묀헨조차도 분데스리가에선 VfL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넘어서지 못했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슈틸리케는 수비의 베르티 포그츠, 공격의 유프 하인케스와 같은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팀의 척추를 구성하며 분데스리가서 3번이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또한, 슈틸리케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도 역시 주전 수비수였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수비수로서의 빈자리를 파울 브라이트너와 함께 채워냈다. 유로 1980 우승,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준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FIFA와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이 20세기 최고의 명문으로 선정한 레알 마드리드서 무려 8시즌 동안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오가면서 4연속 라 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다. 3번의 프리메라리가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UEFA 컵 우승 1회에 기여한 레전드급 선수였다.

2014년 부임후 최대 위기
월드컵 본선 진출 빨간불

당시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서 독일 출신 선수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유의 파이팅 넘치고 중후한 플레이 스타일이 돋보였다. 레알 팬들에게 독일산 ‘판처’로 불리면서 널리 사랑받았다.

과거 프리메라리가서 매 경기마다 외국인 선수는 2명 이하로 출전제한이 있던 시절에 무려 8년간 주전 멤버로 활약을 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에 애정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1988년 선수로서 은퇴한 뒤,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감독 데뷔전서 브라질을 상대로 1-0으로 이기는 쾌거를 이뤘다. 감독으로서 슈틸리케의 첫 공식 무대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유럽 예선에 참가한 것으로, 1승 1무 2패로 지역예선서 탈락한다.

포르투갈과의 홈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것과 벨기에와의 홈경기서 2-1로 이기고 있다가 자책골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서 유로 1992 예선에 참가, 스코틀랜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산마리노와 같은 조가 되어 4승 2무 2패로 1위 스코틀랜드와 승점 단 1점 차이로 조2위를 기록해 예선서 탈락한다.

1991년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한 뒤 유럽 여러 팀을 거치고 나서 1998년 모국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에리히 리베크 감독의 3백 전술에 반대하고 선수들과는 훈련 방식의 문제 등 마찰을 빚으면서 유로 2000 본선 직전에 물러났다.

2000년부터는 독일의 U-19, U-20, U-21 국가대표팀 감독을 6년 동안 역임했는데 2003년 U-20 월드컵 조별리그서 당시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한국을 만나 0-2로 패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일하면서 독일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내부갈등 수습
다시 시작한다

그 후 앙리 미셸 감독 하에 2006년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4경기서 13득점 무실점이라는 성적으로 코트디부아르를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들의 심각한 병세 문제로 인해 본선 전에 사임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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