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3) 계략

2016.10.10 11:32:47 호수 1084호

사냥 끝나면 이리 잡는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고장은이 다시 엎드리자 등을 밟고 말 위에 올라 연정토와 선도해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선도해의 거처에 도착하자 마침 뜰에서 산책하던 선도해가 웃으며 맞이했다.

“선 책사, 지금 웃을 일이 아니오.”

“대인께서 오시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리 찾아주셨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그러면 무슨 일인지도 알겠구려.”


연정토가 앞으로 나섰다.

“자자, 너무 심려마시고 일단 정자로 오르시지요.”

선도해의 안내로 뜰에 있는 조그마한 정자에 오르자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조촐하게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둘의 표정이 놀라운 듯 변하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자리 잡았다.

“이러니 어찌 선 책사를 당할 수 있겠소. 그렇지 않아도 술 마시다 급히 달려왔소.”

“지나친 과찬입니다. 잔 받으시지요.”

선도해가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자 모두가 잔을 부딪고는 한 번에 비워냈다.

“저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겠소?”

선도해가 답을 하기에 앞서 연개소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 게요?”

“대인께서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러면 내가 저놈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합니까?”

“고개 숙이는 일도 일종의 전략이 될 수 있지요.”

“전략!”“이 보 전진 위해 일 보 후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봐야 일 보 전진밖에 더 됩니까?”

“비록 일 보지만 그 일 보가 세상을 바꾸기도 하지요.”

“일 보가 그만큼 중요하다 이겁니다.”

“물론입니다. 일단 저들의 비위를 먼저 맞춰주고 그런 연후에 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그냥 지금 일 보 전진하면 어떻겠소?”

“명분이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지금, 명분이라 하였소?”

“일의 성사 여부를 떠나 지금 일을 도모한다면 그저 대대로란 직위 때문이라는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대대로란 직위를 회복하신 연후에 더 큰 일을 도모해야 명분이 서지요.”

“큰 일!”“단순히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연개소문이 속내, 이참에 왕까지 갈아치우겠다는 각오를 들켰다는 듯 가벼이 헛기침했다.

“여하튼, 향후 어찌해야겠소?”

“저들의 환심을 사야합니다. 특히 영류왕과 이리에게요.”

“어떻게요?”

“왕이야 명분을 주면 되는 일이고 문제는 이리 아니겠습니까?”

연정토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막상 말은 했지만 해법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인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대인, 장군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어차피 왕이야 대신들이 몰아세우면 될 일이고.”

“그리고.”

선도해가 잠시 사이를 두자 연개소문이 말을 이었다.

“그 무엇보다 이리를 달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말이오?”

“동물 중에서 이리의 특성이 뭡니까?”

“그야 닥치는 대로 뜯어 먹.”

말을 하다 말고 연개소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대대로 노리는 연개소문…영류왕에 환심
선도해 치밀한 계략…실질적 군주 권유

“그러니까 그 놈에게 뜯어 먹을거리 즉 미끼를 주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그 자가 앞장서서 대인의 신원을 회복해 줄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일을 도모하시면 됩니다.”

“사냥이 끝나면 이리야 잡아먹으면 그만이고 말입니다.”

“단지 이리만이 아니지요.”연개소문이 중간에 끼어 든 연정토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이 참에 영류왕을 포함하여 썩어빠진 귀족들도 모두 없애 본을 보여야지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좋소. 그러면 우리 일단 이리 사냥에 매진합시다.”

“대인께서는 당분간 이리 사냥에 오로지하시고 연정토 장군은 수하 장졸들을 엄히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당연한 일이오. 헌데 조금 미진하지 않소?”

“무엇이 말입니까?”

“그냥 우리끼리만 일을 도모한다면 어째.”

연개소문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선도해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지 말고 말해보구려.”

“역시 대인이십니다. 일단 잔을 비우고 말씀드리지요.”

선도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권하자 모두 한 번에 잔을 비워냈다.

“당연히 후일도 생각해두셔야 합니다.”

“후일이라 하면.”

“일이 이루어지고 난 뒤가 더 중요합니다. 그 일을 위해 고대양 대신을 필히 만나보도록 하십시오.”

“왕의 동생 말입니까?”

“비록 형제지만 생각은 완전히 딴 판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형제가 아닌 듯합니다.”

“책사, 차라리 이참에 형님께서.”

연정토가 말을 하다 말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그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을 염두에 두신다면 왕족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이어받도록 하고 실질적으로 군주의 역할을 하심이 훨씬 이로울 듯합니다. 여하튼 그 부분은 대인께서 판단하십시오.”

연개소문이 갑작스럽게 불거진 문제를 생각한다는 듯 잠시 턱을 괴고 침묵을 지켰다.

“길게, 대승적인 차원에서 생각하심이 이로울 듯합니다.”

“그 문제는 차후에 생각해 보도록 하고 일단 영류왕과 이리를 만나 대대로 직을 먼저 받아내겠소. 지금 진행 중인 장성 축조 작업을 거론하며 내 접근하리다.”

“아울러 이 자리가 파하는 대로 서둘러 평양성으로 이동하시지요.”

 

“스승님, 그만하시고 한잔 받으시면 어떠하시겠는지요.”

“그러시지요, 스승님.”

서라벌(경주) 서쪽 선도산 외진 곳에 있는 박마령간의 허름한 집 마루에서 김유신과 김춘추가 마령간에게 연신 잔을 권하고 있었다.

마치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은근한 눈길로 둘을 번갈아 응시하던 마령간이 다시 거문고를 뜯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들의 권유가 소용없음을 알아 챈 유신과 춘추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멀거니 앞에 놓인 상만 바라보았다.

이어 은은하면서도 투명한 거문고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유신과 춘추가 그 맑은 소리에 취해 무념의 세상에 빠져들 즈음 갑자기 거문고 소리가 끊겼다.

“자, 이제 술의 세계에 빠져 볼까나.”

거문고를 옆으로 치운 마령간이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자 춘추와 유신이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좌정했다.

이어 두 사람의 손이 거의 동시에 호리병으로 향했다.

“아닐세. 오늘은 내가 먼저 자네들에게 따름세.”

이어 마령간이 병을 잡자 두 사람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아니 되옵니다, 스승님.”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아니야. 내 앞으로는 자네들과 이런 자리를 함께하기 힘들 듯하니 내게도 기회를 주게.”

“스승님!”

천천히 병을 들어 술을 따르는 마령간의 하얀 얼굴이 달빛에 더욱 창백해보였다.

“그리 서운해 하지 말게. 어차피 소리에서 온 몸 다시 소리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할 뿐이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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