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2016.10.04 09:22:36 호수 0호

닉 수재니스 저 / 책세상 / 1만8800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남긴 여운은 아직도 선명하다. 놀랍도록 세심하게 표현된 블랙홀, 고대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만 행성과 밀러 행성, 웜홀을 통한 행성 간 이동, 그리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차 등은 과학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동시에 영화적 상상력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그중 백미는 이 영화의 기술자문을 맡은 천재 과학자 킵 손도 경탄해 마지않았던 5차원 공간. 지금까지 누가 영화에서 5차원의 공간을 표현하려고 했던가. 머릿속으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던 5차원의 세상을 시각화함으로써 영화는 우리의 시야를 기존의 시공간 너머 세계로 확장한다.
이처럼 〈인터스텔라〉가 과학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고차원 세계를 보여준 영화라면, 닉 수재니스의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원제 Unflattening)는 언어와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사고 Visual Thinking’ 실험을 선보이는 책이다. 오랫동안 언어는 사유의 주요 수단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반면, 이미지는 언어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유의 수단이 우리의 시야를 규정한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사유의 수단으로서 텍스트에 의존하게 되면서 언어 바깥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시되어왔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언어가 만들어낸 ‘인위적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자와 이미지를 ‘만화’라는 형식 안에서 ‘동등하게’ 활용하면서 두 요소가 ‘동시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 삶에 견고한 형식을 부여해주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온갖 도구와 개념, 제도 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일차원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변모, 거꾸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경직되고 협소한 일차원적인 것을 총칭해 ‘단조로움 flatness’이라 하고,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와 생기, 인간성 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하나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는 입체적 관점, ‘언플래트닝 unflattening’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만화가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 발표 즉시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실험적 시도’라는 평가를 받으며 ‘컬럼비아 대학 최초로 논문 심사를 통과한 만화’ 형식의 이 책은 이후 ‘하버드 대학이 출간한 최초의 만화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학계와 만화계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철학, 과학, 문학, 예술, 신화 등 다양한 지식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의 시선은 강렬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나 깊고 넓은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 새로운 인식 차원과 지식 형태를 경험하게 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려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재미와 유익함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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