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 사비성의 밤

2016.09.26 11:23:06 호수 1082호

의자왕 태자 책봉될까?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저하, 지금부터는 발소리를 죽여야 합니다.”

어스름한 달빛이 세상을 뒤덮은 늦은 시간, 그림자 둘이 소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알겠소. 주의하도록 하지요.”

상대를 저하라 부른 남자, 성충이 주위를 살폈다.

“형님, 아무 이상 없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담벼락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분 장군께서 고생 많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공은 절대 잊지 않겠소.”

가볍게 고개 숙인 성충이 저만치에 있는 동생, 윤충을 바라보다 이내 해동증자(의자왕) 효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시지요.”

성충의 제안에 효가 말없이 뒤따랐다.

연로한 아버지, 무왕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 후임을 두고 조정이 설왕설래하였다.

당연히 태자인 효가 보위를 승계 받아야 하나 계비인 사택비를 중심으로 태자를 새로 세워야 한다는 말들이 암암리에 흘러나왔다.

그 일에 사택비의 아버지로 대좌평인 사택지적과 내좌평인 기미 등의 문신들이 앞장서고 또한 사택비가 농익은 삼십 후반의 요염한 여인의 향취로 생에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부왕을 녹이고 있었던 터다.


효가 그러한 정황을 직접 확인하기로 작정하고 성충, 윤충 형제와 함께 사비성 내 사택비의 거처로 이동 중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사택비가 거처하는 곳에 당도하자 마침 방안에 희미하게 불이 밝혀 있었다.

윤충으로 하여금 철저히 경계하라 지시하고 효와 성충이 발소리를 죽여 문가로 다가갔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다행스럽게도 궁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살피며 문에 바짝 붙어 섰다.

“부인!”

“말씀하세요.”

무왕과 사택비의 은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인의 손길이 스치는 곳마다 전율이 일어난다오. 마치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아니 이런 상태를 가리켜 회춘한다 하는가 보오.”

“제 느낌 역시 그러하옵니다.”


“부인도?”

“물론이옵니다. 전하의 살결이 제 손끝에 닿일 때마다 행복한 느낌이 솟구친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하오면 하의도 벗…”

“부인의 섬섬옥수로 온몸을 어루만져주구려.”

이어 옷을 벗는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효와 성충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누우세요.”

“그럽시다. 그런데 부인도 옷을.”

“저는 그냥, 이대로.”

“손길뿐 아니라 부인의 온몸을 느끼고 싶소.”

“온몸이라 하셨는지요?”

“그렇소. 온몸.”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 원하신다면.”“아니오, 내가 벗겨주겠소.”

“아니옵니다, 제가.”

“허허, 내가 벗겨준다 해도.”

이어 방금 전보다 둔탁한 소리가 일어났다.

“이리 오시오, 부인.”

“제 온몸을 느끼고 싶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가만히 누워계시지요.”

“그럴까요.”
 

대답하는 무왕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이어 사택비의 손이, 아니 온몸으로 말하는지 무왕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좋소, 부인.”

중간 중간 콧소리까지 이어졌다.

“그리도 좋습니까?”“그야 이를 말이오.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닌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일게요.”

“그러시다면 이번에는 꼬집어볼까요?”“꼬집는다.”“물론 입으로지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무왕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부인, 너무…너무나…”

“여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참을 수 없…”

살과 살이 맞부딪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두 사람의 난해하기 그지없는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찾는지 부르는지 부인과 여보 소리가 간절해지고 이내 길고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침묵이 이어졌다.

“어떠했소, 부인.”

건강 악화된 무왕…후임 두고 뒷말
사택비의 계략…음모 엿듣는 성충

무왕의 목소리에 가느다란 숨소리가 함께 묻어나왔다.

“그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내가 말이요, 아니면 내…”

“물론 제 것이지요.”

“부인 것이라.”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더욱.”

“더욱 무어란 말이오?”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사택비가 말을 마치고 모종의 행동을 취하는지 다시 무왕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 이 밤이 다하도록 부인을 느낄 일이오.”

“쉬지 않고 말이옵니까?”

“그러면 아니 되겠소?”

“술 한잔하시며 원기를 회복하심이…”

“그도 좋은 방법이구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미세하게 감지되었다.

“아니오, 부인. 서로를 음미하자 하지 않았소.”

“하오면.”

“우리 이 상태로 한잔합시다.”

“원하신다면 저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후 상을 당기는 이어 술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도 한잔하구려.”

“저는 안주나 챙기겠어요.”

“안주는. 부인이 안주인 것을.”

다시 사이를 두고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여보!”“말해보구려!”

“이런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애간장 태우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보구려.”

“제 아들, 아니 우리 아들 교기를.”

“우리 아들 교기가 왜요?”

순간 무왕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저…”

“시원하게 말하라는데도 그러는구려.”

“태자가 보위에 오르게 되면.”

잠시 말이 끊어졌다.

“태자가 보위에 오르게 되면 교기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른다, 이 말이오?”“꼭 그렇다기보다, 여하튼 교기로 하여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교기와 부인의 목숨을 위해 교기를 태자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오?”

“너무나 두렵사옵니다.”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생각하고 있소.”

“당신이 보위에서 물러나면 어찌 될지 모든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마시오. 내가 어찌 부인을 두고 먼저 갈 수 있단 말이오.”

“그러니 오래도록 건강하셔야 하옵니다.”

잠시 대화가 멈추어지더니 이내 무왕의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저하,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사택비의 거처를 돌아 나오는 길에 성충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요부는 요부로고. 거의 발기되지 않을 정도로 연로하신 분을. 그래, 장군 생각은 어떻소?”

“어떠한 경우라도 무력은 아니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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