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취재>한솔그룹 ‘국보 전쟁’ 막전막후 ③지하 수장고의 비밀

2008.10.24 11:42:45 호수 0호

국보급 유물을 놓고 한솔그룹과 전주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전주 한솔종이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국보 1점과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다툼의 도화선이다. 국내 ‘제지업의 대명사’한솔그룹은 과거 매각한 종이박물관을 되찾아 다른 지역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전주시는 ‘종이의 고장’인 만큼 이전은 물론 문화재 반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사유재산에 침해할 권한이 없다”는 한솔그룹과 “지역의 자존심을 강탈하려 한다”는 전주시 간 벌어지고 있는 팽팽한 설전은 전북도와 도내 문화예술계가 연합전선을 구축해 전주시 편에 가세하면서 파장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남 본사 지하창고에 보물 가득 쌓였다

전북 전주 팔복동 한솔제지 전주공장에 세워진 한솔종이박물관의 이전 소식이 전해지자 전주시는 물론 전북도 전체가 들썩였다.
한솔그룹은 전주시에 소유지 변경 신고 전 이미 종이박물관 유물들을 서울로 실어 날랐다. 전북도 문화예술계 및 시민단체들은 한솔그룹이 지역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극비리에 수송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내전시관 목적 제작
종이박물관에 전시됐던 국보급 유물들은 현재 한솔그룹 본사에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시에 따르면 한솔그룹은 지난 6월 노스케스코그로부터 종이박물관을 재매입해 7월 문화재 보관 장소를 서울 강남 역삼동 사옥으로 변경했다.
한솔그룹 ‘비밀 아지트’라 불리는 ‘수장고’가 그곳이다. 그룹의 문화사업 부문인 한솔문화재단이 관리·운영하고 있는 수장고의 존재와 쓰임새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후 자체 사옥이 없었던 한솔그룹은 ‘리틀 삼성’답게 급성장해 1998년 3월 역삼동에 지하 6층, 지상 24층짜리 한솔빌딩을 세웠다. 수장고도 신사옥 건립 당시 건물 지하에 별도로 만들어졌다.
항온항습 장치 설치는 기본. 방재 설비와 보안 장치까지 갖추고 있다. 그룹 측이 “수장고 모든 시설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최첨단 장비를 자랑한다”고 자평할 정도다.
수장고 입구는 건물 내부로 통하기 때문에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건물 관계자는 “수장고는 관계자외 접근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웬만한 회사 직원들도 들어가 보지 못했을 정도로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고 귀띔했다.
사실 한솔그룹에겐 수장고가 ‘뼈아픈 과거’다. 한솔그룹은 당초 사옥내 박물관에 버금가는 유물 전시관을 운영할 복안이었다. 그래서 수장고도 제작했지만 곧바로 터진 IMF 사태에 회사가 휘청이면서 전시관 개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급기야 재무구조 개선작업의 일환으로 사옥 매각까지 추진했다. 한솔그룹은 부실계열사 정리·합병 등 뼈를 깎는 경영정상화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제자리를 찾았지만 이미 사옥을 해외회사에 매각한 뒤였다. 사내 전시관 설치가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그룹 측은 “출범 이후 승승장구해 신사옥을 마련, 사내 전시관을 만들기 위해 수장고를 제작했지만 IMF 당시 무리한 공격 경영으로 위기를 맞아 계획이 전면 철회됐다”며 “2003년 2월 나중에 되산다는 조건 없이 사옥을 외국계 투자사에 팔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시관을 개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베일에 싸인 수장고 최첨단 장비로 ‘외부인 원천봉쇄’
박물관 유물, 이인희 고문 소장품, 재단 미술품 보관

한솔빌딩 수장고엔 현재 한솔문화재단 소유의 미술품 일부와 종이박물관에서 옮긴 고려시대에 제작된 국보 1점(2백77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고려∼조선시대에 제작된 보물 7점(1천1백53호 묘법연화경 권 제1-3 등) 등이 보관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솔그룹이 1997년 구입 당시 국보는 1억원이 넘었고, 보물들은 각각 5천만원 이상이었다는 후문. 현재가로 따지면 1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특히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개인적으로 사들여 소장하고 있는 국내외 골동품과 미술품, 문화재급 유물 등의 작품도 수장고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여년 전부터 미술품 등을 수집한 이 고문은 삼성특검 당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와의 인연으로 유명세를 탄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져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룹 관계자는 “종이박물관 유물들과 이 고문의 개인 소장품이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것은 맞지만, 일일이 확인해 주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한솔그룹은 계열사 한솔개발이 주관하고 있는 종합리조트단지인 강원도 원주 한솔오크밸리에 미술관과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고문이 며느리 안영주 씨(조동길 회장 부인)와 함께 이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한솔오크밸리로 이전?
이곳엔 종이박물관 유물들은 물론 이 고문이 소장해 온 작품들이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한솔그룹은 앞서 지난해 5월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 씨에게 설계를 맡겼다. 안도 씨는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미국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 건축계의 거장으로 도쿄대, 예일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솔그룹 측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유물들을 지역 사업장에 둘지 아니면 독립적인 전시관을 만들어 옮길지는 아직 미정”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될 때까지 수장고에 그대로 보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종이의 고장’이다. 한솔그룹은 ‘종이업의 대명사’다. 앞으로 이들의 ‘종이 전쟁’, 나아가 ‘국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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