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찍힌 사람들

2016.09.05 12:13:08 호수 0호

눈 밖에 나면 누구든 추풍낙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두 명의 희생자가 추가됐다.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은 각종 의혹들이 터져 나오자 모두 자리서 물러났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이 물러났을 때와 일종의 기시감마저 든다. 서슬 퍼런 박 대통령의 노기에 희생양이 돼야 했던 사람들을 <일요시사>가 모아봤다.



“(박근혜) 대통령 눈 밖에 나면 누구든 추풍낙엽처럼 날아간다.”

지난달 30일, 정의당 추혜선 대변인의 논평이다. 지난달 2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사표 제출과 지난달 30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해당 언론사의 방침에 따라 보직 해임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해당 논평은 꼭 두 사람의 사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정가에선 “VIP(박 대통령)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고 있다.

눈치만 슬슬

이 특감의 사표 제출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특정 언론에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그는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랬던 이 특감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검찰은 최근 서울 청진동 특별감찰관실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날 기자들에게 “압수수색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직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에도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고 있는 우 수석과는 완벽히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 특감은 전방위로 압박을 받던 상황이었다.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이 터졌을 당시 청와대는 ‘국기문란’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진행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우 수석의 자택을 대상에서 제외한 데 반해, 이 특감에 대해서는 청진동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 두 대를 확보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특감으로부터 감찰 내용을 전달받았다는 이모 조선일보 기자의 휴대전화 한 대도 압수했다.

무엇보다 이 특감이 박근령 전 육영재단이사장을 사기 혐의로 고발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아닌가라는 주장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양순필 부대변인은 지난달 23일 논평을 통해 “(이 특별감찰관이 박 전 이사장을 사기혐의로 고발한 것이) 청와대가 ‘국기문란’까지 들먹이며 이 특감을 찍어내려는 진짜 이유 중 하나인지 의심이 간다”며 “아무리 청와대가 ‘우병우 구하기’에 혈안이 됐다고 해도 너무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는데 그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청와대가 우 수석 감싸기는 물론 대통령 친인척을 비호하기 위해 이 특감에게 ‘불신의 낙인’을 찍으려 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우 수석과 관련해 의혹 기사를 냈던 <조선일보> 또한 압박을 받고 있다.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구속된 홍보대행사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와 함께 ‘초호화 외유’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와 주필·편집인직서 물러난 상태다.

이석수·송희영 잇따른 압박에 사퇴
유승민·조응천·진영·채동욱 유사

해당 의혹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언론사(조선일보)는 이 시기(송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외유를 제공받았다는 시점)를 전후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우호적인 사설을 수차례 게재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보의 ‘출처’에 의혹을 눈길을 보내는 중이다. ▲청와대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여러 기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폭로 내용이 감사 또는 수사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김 의원은 출처에 대해 “청와대, 검경, 국정원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야권에선 ‘청와대 기획설’을 주장하며 김 의원이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즉 우 수석에 대한 비리 의혹을 무마시키길 원하는 청와대가 김 의원의 입을 빌어 <조선일보>에 대한 공격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앞서 나온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근거로 내세운다. 익명의 해당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우 수석에 대한 의혹제기에 대해 “대통령과 정권을 흔들어 식물정부를 만들려는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우병우 죽이기’”라고 규정했다. 이는 ‘우병우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상황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사퇴가 박 대통령의 직접 ‘오더’로 진행됐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해 두 사람이 결정적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청와대가 존재해왔다.


이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행해진 프로세스다. 단적인 예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법 개정안 파동’ 때 박 대통령은 정부 정책을 비판해온 그를 ‘배신의 정치’로 지목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신호로 친박계 의원들의 사퇴 압박이 줄을 이었고 결국 그는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당시 비박계 인사들이 당 지도부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박 대통령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청와대의 압박에 의해 사실상 장관직서 밀려난 경우다. 기초연금 파동 때 청와대를 거역했다는 이유였다. 이어서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진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결국 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택했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 또한 희생양이었다. 조 의원은 소위 ‘청와대 찌라시’ 파문으로 사실상 박근혜정권에 찍힌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찌라시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관련됐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분노를 샀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 바 있다. 이후 조 의원은 진 의원처럼 더민주에 입당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는 이 특감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과 가장 유사하다.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수사 책임자였던 채 전 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로 사실상 자리서 물러났다. 의혹 보도 당시 채 총장은 ‘검찰 흔들기’라며 버텼지만, 법무부가 감찰을 지시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채 총장 사퇴 이후 댓글수사팀은 위축됐고 소속 검사들은 좌천당했다.

“찍히면 죽는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불리한 국면 때마다 걸림돌이 되는 특정인을 찍어내 위기를 넘겨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를 위해 검찰·국가정보원·민정수석실 등 사정기관의 정보가 동원됐을 가능성 또한 높다. 이를 규탄하는 야권의 목소리는 임기 말로 갈수록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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