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홍’ 대한당구연맹 복마전

2016.08.23 09:21:56 호수 0호

출항하자마자…좌초 위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배를 항해하는 데 있어 선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선장이 키를 조정하는 방향에 따라 배는 암초를 만나 좌초될 수도 있고, 험난한 항로를 무사히 헤쳐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배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그럴 땐 유능한 선장도, 훌륭한 선원도 전부 배와 함께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선장을 뽑았지만 여전히 암초 더미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내부를 살펴봤다.



지난 1일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이하 연맹)이 통합 초대 회장 선거를 치렀다. 지난 3월22일 (구)국민생활체육회 전국당구연합회(이하 당구연합회)와 (구)대한당구연맹(이하 당구연맹)이 산통 끝에 통합된 지 약 4개월 만이다. 서울 SK핸드볼경기장 회의실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남삼현 한양대학교 특임교수가 101표의 유효표 중 45표를 얻어 초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시작부터 '삐걱'

남 회장은 이트레이드증권 대표이사 시절 당구연맹 공식후원사로 참여하는 등 당구와 인연이 깊다. 남 회장은 선거에 출마하면서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면서 “최고 방송 전문가들을 영입해 1년 내내 다양한 매체서 당구 경기를 방영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남 회장이 큰 포부를 펼치기엔 주변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남 회장의 선거 출마 배경에 당구연합회서 횡령 혐의로 ‘파면’ 징계를 받은 전 사무처장 B씨와 전 사무과장 H씨가 개입해 있다는 의혹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는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협회지 광고료 횡령 의혹을 받고 있고, H씨는 대회 참가비를 개인 계좌로 받아 횡령한 사실이 문체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 조사 결과 적발된 인물이다.

선거 개입·직원 비리 의혹
통합 이후에도 ‘첩첩산중’


연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남 회장이 선거에 출마한다는 사실은 B씨가 운영하는 잡지 <큐스포츠>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사가 나오면서 알려진 것으로 안다”면서 “남 회장이 당선 다음날 당구 관계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 B씨가 동석한 사실도 있다”고 두 사람의 관계에 의구심을 표했다.

B씨는 “남 회장과는 관계도 없고, 친분도 없다. 통합단체에서 일할 생각도 없다”며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그러면서 B씨는 “다만 징계(파면)와 관련해서는 연맹에 새 집행부가 구성되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고 했다.

남 회장 역시 “B씨가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겠나”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남 회장은 B씨가 통합 단체로 복직할 가능성에 대해 “현재 비리와 관련돼 있거나 비리 의혹으로 분쟁 상태에 있는 인물은 연맹에 들어올 수 없다”면서 “B씨를 둘러싼 일이 다 정리되지 않는 이상 연맹으로 복직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의혹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 다른 연맹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서 인준한 임원 현황에 B씨와 관련된 인물이 몇몇 있다”고 주장했다. 남 회장은 “임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비리에 관계된 인물들은 모두 제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남 회장 주변의 암초는 외부 소문뿐만이 아니다. 남 회장은 오는 29일부터 내달 4일까지 구리시체육관서 열리는 ‘2016 구리 세계 3쿠션 월드컵’에서 조직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후 10월 제97회 전국체육대회, 2016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당구대회 등 치러야 할 대회가 줄지어 있다. 하지만 내부 직원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연맹은 통합되기 전부터 내부에서 임원 및 사무국(처) 직원들의 비리 의혹이 연이어 불거져 나왔다. 이에 문체부는 두 단체 모두를 비리단체로 지정했고, 2분기와 3분기 지원금을 모두 삭감하는 초강수를 뒀다.

문체부가 지난 2월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대한당구연맹의 전현직 임원들은 허위 계약서로 대행사 지급 비용을 정산하거나 비용을 부풀려 지급한 후 아내의 계좌로 되돌려 받는 등의 방법으로 4억7000여만원 상당의 금액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몇몇은 문체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현재 수사 중에 있다. 게다가 사무국 직원들의 급식비, 연구수당과 관련한 부적정한 회계 처리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대한당구연맹 비리 관련 조사 결과 통보’ 자료에 따르면 연맹 사무국 직원들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에 걸쳐 1인당 매월 17만5000원∼22만원씩 총 7000여만원을 급식비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문체부는 관련 규정 어디에도 매월 정기적으로 급식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면서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수당 역시 마찬가지다. 사무국 직원들은 2009년부터 2015년 10월까지 연구수당 명목으로 10만원씩을 지급받았다. 7년간 연맹이 사무국 직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총 3700여만원이다. 이 역시 관련 규정에 근거가 없다고 문체부는 문제 삼았으며, 횡령으로 의심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사무국 직원들이 급식비와 연구수당 명목으로 7년간 지급받은 돈은 약 1억원이 넘는다.

4분기 예산 삭감 위기
관리단체 지정될 수도


이 문제에 연루된 연맹 N 사무과장은 “급식비, 연구수당 등의 지급은 관행이다”며 “다른 단체들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 체육정책과 관계자에게 N씨의 주장대로 관행 여부를 묻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다른 단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조사해서 징계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무국 직원들에 대한 징계 조치가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 급식비, 연구수당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문체부는 사무국장 K씨와 사무과장 N씨에게 중징계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연맹 규정상 직원의 중징계는 정직·강등·해임·파면 조치다. 하지만 3월에 열린 법제상벌위원회에서 K씨와 N씨는 경징계에 해당하는 감봉 3개월 조치를 받았다.

이에 문체부는 지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라며 이들에게 재징계를 지시했다. 하지만 K씨의 징계는 정직 3개월로 결정됐고, N씨는 그대로 감봉 3개월 조치를 받았다.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징계가 결정되면 당사자에게 통지를 하고, 대한체육회에 보고하면 징계 효력이 생기는 구조다. 하지만 K씨와 N씨에 대한 징계는 아직 당사자 통지가 이뤄지지 않아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N씨는 징계 처리 절차상의 하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징계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N씨는 “직원의 징계 문제는 인사위원회서 처리돼야 하는데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논의됐기 때문에 무효”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새 집행부가 구성되면 인사위원회가 열릴 것이고 그 때 징계가 결정되면 따를 것”이라고 했다.

남 회장은 “비리와 관련된 사람들은 임원, 직원을 불문하고 전부 업무에서 배제할 생각”이라면서 “구리 3쿠션 월드컵 이후에 그들에 대한 엄격한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신임 회장의 단호한 일성에도 불구하고 문체부나 대한체육회서 연맹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문체부 관계자는 “연맹 내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4분기 지원금도 깎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대한체육회 관계자 역시 “우리는 가맹된 종목 단체를 지도, 감독할 책임이 있다”면서 “내분이 있거나 선수, 지도자 선발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등 조직 운영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사실관계 확인 후 이사회에 안건을 올려 관리단체로 지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갑갑한 상황

관리단체로 지정되면 그날부로 임원진은 모두 해임되고, 대한체육회서 직접 단체를 운영한다. 기업이 회생불가 상태에 접어들면 채권단 혹은 법원이 관리를 맡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통합 이후에도 여전히 내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연맹의 항해가 순항할지 좌초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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