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막추적]진화한 조폭에 놀아난 주식시장

2011.01.04 10:34:17 호수 0호

유망 벤처기업 깡통 만든 조폭 개미들 ‘엉~엉’


상장사를 인수한 뒤 회사 돈을 빼돌리고 주가를 조작한 조직폭력배 일당이 검찰에 기소됐다. 조폭이라고 하면 ‘주먹’을 먼저 떠올렸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 조폭들의 활동무대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초창기 유흥업소의 뒤를 봐주며 보호비를 챙겼다면, 2000년대에는 건설관련 이권사업에 개입, 무력을 사용했고, 최근에는 기업사냥꾼·사채업자 등과 결탁해 증권시장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것. 유망한 벤처기업을 한 순간에 깡통으로 만들어버린 3세대 조폭에 대해 취재했다.

유흥업⇒ 부동산⇒ 금융시장 조폭 진화 3단계
똑똑한 조폭, 벤처 집어삼키고 횡령·주가조작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김희준)는 지난 12월27일 코스닥 상장업체인 C사를 인수한 뒤 회삿돈 77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기업사냥꾼 김모(44)씨와 ‘김제읍내파’ 두목 이모(46)씨 등 2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한 노모(46)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주주 등에게 폭력을 행사한 ‘광주콜박스파’ 조직원 장모(41)씨 등 3명은 지명수배했다.



벤처기업 ‘꿀꺽’

2001년 ‘대한민국 벤처기업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02년 코스닥 상장 이후 꾸준히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던 C사가 조폭 개입으로 망가진 과정을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조폭 개입 이후, 1년마다 사주가 두 차례나 바뀌고 조폭이 부회장 자리에 앉았음에도 금융당국과 외부감사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산업용 필터와 공기청정기 제조사인 C사는 2006년까지만 해도 전도유망한 중소기업에 포함됐다. 그런 C사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이다. 당시 사주가 사업확장을 위해 사채를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사채업을 하던 김제읍내파 두목 이씨는 기업사냥꾼 김씨와 손잡고 C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들은 2008년 회사자금 77억원을 빼돌린 뒤 팔아버렸다. 그 뒤 C사는 2008년 4월 노씨와 2009년 2월 윤모(43)씨에게 차례로 넘어갔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 역시 각각 69억원과 160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노씨는 주가조작 세력에 110억원을 주고 주가조작을 의뢰했지만 뜻대로 주가가 오르지 않자 광주콜박스파 조직원 염모씨와 장모씨를 각각 부사장과 부회장 자리에 앉힌 뒤 광주콜박스파를 시켜 주가조작에 실패한 이들을 감금, 폭행했고 이 방법으로 20억원을 되돌려 받았다.

윤씨 역시 지난해 회사 주가가 떨어지자 광주콜박스파 조직원으로 행세하면서 주식 대량 매도자를 감금, 폭행했고, 매도자를 위협해 C사 주식 300만 주(15억원)를 다시 사들이게 했다.

이들은 또 C사 주식을 대향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린 주주 A씨를 골프우산 등으로 수십 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씨 등 C사를 거쳐 간 3명의 사주는 주식대금을 사채로 냈다가 다시 인출해 빚을 갚는 가장납입 수법을 사용했고, 사채를 회사 자산으로 넣는 분식회계로 이 같은 사실을 감춰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들 3명의 사주가 차례로 빼돌린 회삿돈은 총 306억원에 달한다. 특히, 이들은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하면서도 회삿돈을 빼내 사채를 갚거나 유흥비, 해외여행 경비 등에 쓰는 등 호화생활을 해왔다.

실제 회사 소유 자기앞수표 5000만원권이 강남의 ‘텐프로’ 룸살롱 마담의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고, 사주가 세 차례 바뀌는 동안 C사의 매출은 급감했다. 결국 C사는 올 3월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돼 현재 공장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또 이들의 머니게임에 개미 투자자들은 600억원대의 손실을 봤다.


이와 관련 검찰 측 관계자는 “조폭들이 주류도매상이나 유흥업소를 갈취하는 전통영역에서 건설시행사 등 부동산영역으로 침투했고, 이제는 금융시장까지 파고들었다”면서 “금융시장 교란행위는 불특정 다수의 개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민생침해범죄로 피해 정도와 범위가 광범위해 집중단속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전국구 폭력조직들이 관리하는 주식 종목이 70여 개에 이른다”면서 “조폭들의 금융시장 교란행위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폭의 진화 과정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가 긴장해야 할 사안은 화이트컬러 범죄의 조폭 개입 사례가 수년전부터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양은이파’ 부두목과 ‘서방파’ 부두목 2명은 2004년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기업사냥꾼으로부터 수억원을 갈취하고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고, 2006년에는 ‘벌교파’ 두목 등 2명이 주식투자 손실금을 물어내라며 주가조작 전문가로부터 거액을 뜯어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금 드러난 C사와 같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지금 어디에선가 서구 마피아와 같은 조직이 본격적으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세계적 카지노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가 사막 한가운데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1946년 마피아 두목 벤저민 벅시 시걸이 카지노 호텔 플라밍고를 세우면서부터다.

일본의 조폭 야쿠자들도 생존을 위해 공연기획, 영화제작 등 연예사업과 제조업, 병원업 등에 진출하면서 주먹보다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화 하고 있다. 국내 조폭은 ‘주먹’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가 벌인 ‘범죄와의 전쟁’ 이후에는 조직끼리 싸우는 것을 자제하고, 넓어진 돈벌이 시장에서 서로 영역 침범 없이 공생하는 데 주력했다.

이로 인해 2000년 이전까지의 1세대 조폭들은 유흥업소, 주류도매상 등 전통적 영역에 머물렀고, 2000~2006년까지의 2세대 조폭은 건설시행사, 아파트 및 상가 분양시장 등 부동산 영역에 진출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조폭의 양상은 3세대에 해당한다. 2006년 이후 부동산 경기 불황과 금융시장 활성화를 타고 조폭들이 무자본 M&A, 회사 자금 횡령, 주가 조작 등 금융시장으로 파고든 것.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고 사회·경제적 질서와 법치주의를 어지럽히는 사회악이라는 점에서 1세대 조폭이나 3세대 조폭은 다를 바 없다. 범죄수법이 고도화된 조폭들의 경제범죄를 발본색원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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