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판결> 트랜스젠더 살인 사건 ‘무기징역’

2011.01.04 10:08:20 호수 0호

애인이 남자로 밝혀져 살해했다더니…결국은 ‘돈이 문제’

사귀던 트랜스젠더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20대 남성에게 항소심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이는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보다 형량이 높아진 것으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당초 피의자는 사귀던 피해자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살인사건의 바탕에는 ‘돈 문제’와 ‘자존심’, 순간적인 ‘분노’가 깔려 있었다. 판결문을 바탕으로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을 되짚어봤다.

트랜스젠더인지 몰랐다더니 3차례 성관계 들통
폭행, 강도 사실 들킬까 인적 드문 곳에서 살해

부모의 이혼 등으로 보호시설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박모(24)씨는 성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범죄로 법원을 드나들었다. 형의 집행을 종료하고 사회에 나온 박씨는 입에 풀칠이라도 할 생각으로 3~4년 전 포항의 한 PC방에 종업원으로 취직했다.

PC방에서 일할 당시 박씨는 우연히 손님으로 찾아온 트랜스젠더 김모(24)씨를 알게됐고, 두 사람은 이내 교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두 사람은 교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뒤 한동안 연락없이 지낸 것.

잘못된 만남


그러던 지난해 5월, 김씨는 박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연락을 시작했다.

급기야 두 사람은 5월23일 김씨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대구 모 유흥업소 근처에서 오랜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은 바로 김씨가 거주하는 대구 남구 모 여관으로 향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거사를 마친 두 사람은 대구 시가지로 나와 함께 식사를 마친 뒤 주유소로 향했다.

수중에 돈이 넉넉지 않았던 박씨는 김씨에게 기름값을 대신 내 달라고 요구했지만 김씨는 거절한 뒤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혼자 가 버렸다. 김씨의 이 같은 태도에 순간적으로 화가 난 박씨는 이날 오후 5시께 김씨가 거주하는 여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이미 흥분상태였던 박씨는 김씨의 여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돈이 있나 없나 보자”고 소리를 지르며 김씨의 가방을 빼앗아 열어보려 했고, 이에 놀란 김씨가 저항하면서 거부하자 폭행을 시작했다.

생물적인 성별은 남성이었지만 여성으로 삶을 살아온 김씨는 일반 남성보다 저항 능력이 현저히 부족했고, 흥분상태인 박씨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김씨는 박씨에게 얼굴 부위를 수차례 폭행당한 뒤 실신했다.

박씨는 실신한 김씨를 두고 돈이 될만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디지털카메라 등이 들어있는 김씨의 가방을 챙긴 박씨는 여관방을 나서려다 순간 멈칫했다. 유흥업소로 출근하는 김씨의 동료가 출근시간 쯤 찾아오기로 한 사실이 떠오른 이유에서다.

박씨는 자신이 이대로 도주할 경우, 김씨의 동료에 의해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운 나머지 김씨를 여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인적 드문 장소에서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박씨는 그 길로 김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인적이 드문 곳을 찾다가 경산시 압량면 신촌리에 위치한 대산농장 뒤편 오목천 둑길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도 김씨는 실신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실신한 김씨를 차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눕힌 다음, 김씨의 목을 왼손으로 강하게 누르면서 수십 회에 걸쳐 김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1시간 동안 김씨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박씨는 김씨의 사체를 강둑 아래에 던져버렸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동거녀와 함께 대구, 경주, 마산, 통영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김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박씨는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형사책임을 가볍게 할 목적으로 죽은 김씨에게 책임을 돌리는가 하면 오히려 김씨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원심은 박씨가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고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박씨가 범행을 은폐할 목적으로 실신한 피해자를 업고 나와 차량에 싣고 인적 드문 곳에서 살해한 것은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또 재판부는 “피해자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인 트랜스젠더인데, 피고인은 일반 남성보다 현저히 저항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를 상대로 단지 금품을 빼앗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점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견디기 힘든 슬픔을 안겨줬음에도 아직까지 그들에게 어떠한 피해 회복도 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의 경제적 능력 등에 비추어 봐도 앞으로도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의자는 자신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등 이 사건 범행을 진정으로 반성하는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인명경시 풍조에 대한 일반예방, 사회방위의 필요성까지 고려한다면, 피고인에 대해 징역 15년형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참회와 교화의 기회를 가지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우발적 범행?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동거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와 성관계를 갖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른 박씨는 결국 24세 젊은 나이에 차가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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