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 정치권 화두 ‘토끼를 잡아라’

2011.01.04 09:20:30 호수 0호

상대 텃밭에 구애 펼치는 정치권 엿보기

한나라 ‘개혁적 중도보수’ 민주 ‘새로운 진보’
집토끼는 묶어두고, 산토끼·들토끼에 손짓



판소리 <수궁가>에서 본 토끼는 총명하고 날쌘 현실적 동물로 위기 극복을 잘하고 지혜롭다. 총명함과 지혜로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동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는 게으른 동물로 묘사된다. 한편 집에만 눌러앉은 토끼를 ‘집토끼’라 하고 여기저기 들락거리는 토끼를 ‘들토끼’라 하며 저 멀리 산에 있는 토끼를 ‘산토끼’라 한다. 신묘년 새해를 맞이해 토끼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토끼 관리’는 어떤지 살펴보자.

‘복지’ 최근 정치권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이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고 삶의 질 또한 나아진 게 없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다. 복지는 주로 민주당이 재미를 본 카드였다. 민주당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천안함 후폭풍을 잠재우고 보편적 복지의 한 수단인 ‘무상급식’ 슬로건으로 수도권 전역 구청장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박근혜, 산토끼에 ‘손짓’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한국적 복지’를 대선 관련 핵심 아젠다로 설정해 민주당은 졸지에 텃밭 공격을 받게 됐다. 박 전 대표의 ‘경제 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기존 복지는 일회성 현금 지급 형태라 효율성이 떨어진다. 선진국 수준의 복지를 위해 생애주기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하나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18대 상반기 국회에서 보건복지위 소속이었다. 하지만 후반기 국회에서 기획재정위 소속으로 옮겼다. 박 전 대표가 보건복지위를 거쳐 기재위를 택한 것은 복지 담론을 뒷받침할 재정정책까지 포괄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상임위 변화를 통해 복지 관련 아이디어를 선점하고 재원 확보 여부도 익혀 나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박 전 대표의 치밀한 대비책이다.

사회 운동가 출신 예비 대권 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도 얼마전 무상 급식과 관련해 경기도의회와 정면충돌을 피하고, 400억원에 달하는 친환경급식 예산편성으로 타협을 이뤄냈다. 줄 것(돈)은 주고, 받을 것(명분)은 받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또한 김 지사는 수요자 중심의 ‘현장 맞춤형 복지’를 표방하고 있다. 경기도가 실시중인 위기가정 지원책 ‘무한돌봄 사업’이 대표적이다. 성장보다 복지에 중점을 두며 산토끼·들토끼 잡기에 고심 중이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복지 포퓰리즘에 반대하며 다른 대권 예비주자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 시장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복지관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선택적 무상급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산토끼’ 사냥보다 오히려 ‘집토끼’ 단속에 방점을 찍고 있는 중이다. 무상급식 관련 그의 강한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 전 대표와 비슷한 행보보다 선명한 반대가 오히려 차기 주자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좌향좌’

한나라당은 집토끼 단속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안보 정국 관련 보수 색채를 잃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안보와 남북대화 병행 추진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기존 대북정책 기조 및 원칙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통해 ‘안정된 스탠스’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중이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12월3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대북정책의 기본 틀이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만 놓고 ‘강경책’이라고 할 수 없다. 앉아서 뺨 맞고 웃는 것은 코미디”라고 말했다. 연평도 사격 훈련 관련해 국민 여론은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연평도 사격훈련 관련 여론조사 결과 ‘사격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이 66.6%로, ‘사격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 26.2%보다 40%가량 높게 나타났다. 전략 자체로 봤을 때 ‘복지’로 들토끼와 산토끼를 잡고 ‘안보’로 집토끼를 묶어두려는 한나라당의 시도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한편 민주당의 공식적 복지노선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보편적 복지’다. 이 정책기조에 따라 민주당은 현재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을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구체적 정책을 다듬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집토끼’인 복지 정책만 정교히 다듬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집토끼 보다는 들토끼와 산토끼의 개체수가 3배나 되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한나라당 지지도는 40.2%고 민주당 지지도는 24.5%다. 여전히 한나라당 지지도가 많이 앞선다.

민주당의 주요 인물군마다 복지의 원칙과 색채는 조금씩 달라 보인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 공동체’ 정동영 최고위원의 ‘역동적 복지국가’ 천정배 최고위원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등이 있다. 손학규 대표는 “집권 없는 진보는 의미 없다”면서 ‘유능한 진보’ ‘새로운 진보’를 내세웠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손 대표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고, 경기도지사 직무도 수행했다. 복지 담론에 대한 실탄과, 이를 뒷받침할 행정 기반도 닦은 것이다. 그러나 손 대표는 현재 장외 집회 등으로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기존의 시혜적 복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내세운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지난 당 대표 경선을 거치며 “부유세를 신설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부유세는 순자산가치로 따질 때 30억원 이상 가진 5만 명의 부유층에게 과세해 조성하며 이렇게 모인 재원을 가지고 노후연금에 사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당권 도전 슬로건인 ‘담대한 진보론’의 핵심 내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조세 정의에 어긋나는 주장’이라며 당 밖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도 ‘좌향좌?’

민주당은 ‘복지’로 집토끼를 달래면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통해 들토끼(충청권)에 살며시 접근하고자 노력중이다.

변재일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은 지난 12월30일 70여명 의원이 참석한 정책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은 세종시 기능과 자족능력을 갖추기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연계해 인구 50만 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거짓공약이 되지 않도록 당 차원에서 충청권 조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과학벨트의 입지는 세종시와 주변 인프라를 갖춘 충청권(대전, 충북, 충남)으로 명시했다”라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의 당론 추진을 제안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 사실상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입지에 동의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행보는 들토끼인 충청권 표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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