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41) 송별식

2016.07.11 11:54:57 호수 0호

시시각각 다가오는 운명의 날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일단 부장께 맡겨두고 일을 성사시킨 후에 그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석원의 결기 가득 찬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어 호룡이 카드를 소중하게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석원 군의 충정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아울러 내일 비행기로 남조선에 입국하여 거사에 대비하기로 한 만큼 몇 가지 주문하도록 하겠어요.”

영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모두의 얼굴 역시 결연해 보였다.


“먼저 거사가 성공하기 전까지 문석원이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일본인 아베 고타로가 되는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즉 거사가 성공할 경우 석원 군은 곧바로 이름과 국적을 회복하고 이 민족의 영웅으로 우뚝 거듭날 것입니다. 다만.”

다만, 이라는 소리에 모두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내용은 거사가 실패한 경우를 대비한 행동인데. 석원 군이 실패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혹여 만분의 일이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석원 군은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그리고 이 거사는 석원 군의 영웅적인 단독 행동이었음을 밝혀야 합니다.”

“거사가 성공하면 우리들의 공은 어찌 되는 겁니까?”

호룡이 볼멘소리를 하며 석원을 주시했다.

“이 부장!”

순간 영란의 차가운 시선이 호룡에게 쏟아졌다.

“말씀 주십시오, 지도위원 동무!”


“지금 동무는 석원 군의 영웅적 행위에 잿밥을 뿌리겠다는 이야기요!”

“왜 사람이 그렇게 경박한가!”

영란의 뒤를 이어 주선이 마땅치 않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만 뭔가?”

“지도위원 동무와 중앙위원님의 노고가….”

“이 사람이 정신없는 소리는. 우리의 운명은 철저하게 석원 군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가!”

주선의 재차에 걸친 호통에 호룡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을 터이니 차후에는 그런 소리 말게!”

주선이 서둘러 마무리했다.

“아울러 석원 군의 남조선 일정에는 남조선에서 암약하고 있는 북조선 정치지도위원인 고정간첩이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 역시 일본인으로 신분을 위장할 것입니다.”

“초청장 역시 그쪽에서 해결되는 겁니까?”

“당연히 고정간첩에 의해 처리될 겁니다. 아울러 일단 석원 군이 남조선에 입국하면 보안 문제 상 우리와는 완벽하게 차단될 것입니다. 남조선에서의 일정은 현지 지도위원의 지시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말을 마친 영란이 석원을 주시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의 지시에 따라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리 될 겁니다. 그리고 뭐 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주선이 영란을 주시했다. 영란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가볍게 자신의 무릎을 쳤다.

“물론 암살에 필요한 총기 역시 고정간첩이 전해줄 겁니다.”

“저 그런데….”

석원이 막상 입을 열고는 머뭇거렸다.

“말해봐요.”

남조선서 고정간첩과 접선 예정
눈물의 이별…이후 가족들 볼모?

“고정간첩이라는 사람이 누구고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바로 그 이야기하려던 차에요. 석원 군이 남조선에 입국하여 호텔에 투숙하는 날 저녁 무렵 한 중년 남자가 나카소네라 이름을 밝히며 방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호룡이 가볍게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뭐가요?”

“석원 군의 영웅적 행위도 그렇지만 그를 준비하는 북조선의 대응이 조금도 허술함이 없어 보입니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일인데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지요.”

영란의 확신에 찬 소리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실 말씀 다하셨으면 이제….”

호룡이 시선을 술과 음식에 주었다. 의미를 알아챈 영란이 병을 들어 모두의 잔을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잔 역시 채웠다.

“지도원 동무께서 한 말씀 주시지요.”

호룡이 급했는지 잔을 들었다.

그를 바라보던 영란이 곁에 있던 종이 박스 두 개를 석원에게 건넸다.

“하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고 다른 하나는 케이크에요.”

석원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호룡을 주시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철저하게 일본인 행세를 하라는, 그러니 항상 일본 방송을 청취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용도에 대해서는 남조선 내 고정간첩이 일러줄 터이니 그리 알도록 해요. 그리고 이 케이크는 석원 군이 잠시 일본을 떠나 있는 동안 우리가 석원 군의 가족을 돌보겠다는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니 이따 귀가할 때 가지고 가서 가족과 함께 들도록 해요.”

“집에 술 좀 있어?”

“지금도 과음한 듯 보이는데, 더 마실 수 있겠어.”

“꼭 더 마신다기보다도 잠시지만 당신과 신일 그리고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마음의 부담감을 덜어보려 그래.”

“그러니까 우리끼리 조촐하게 송별식하자 이 이야기네.”

석원이 송별식을 되뇌며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그 케이크를 바라보자 잠시 전 지도위원이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순간 북조선이 자신의 가족을 볼모로 잡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맞아, 비록 잠시지만 헤어지는 건 헤어지는 거니까.”

아내가 석원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러나는 아내를 바라보다 이내 신일을 위로 들어 올려 방긋거리는 모습을 살폈다.

이상하게도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 뜨거운 기운이 흡사 눈가로 몰려드는 듯했다.

“그런데 당신, 많이 변한 듯 보여.”

대충 주안상을 마련해서 돌아온 아내가 술을 따르며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글쎄, 상당히 가정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그게 잘못된 건가?”

“아니지. 진작 그리 했어야지. 그런데 그동안 당신은 그저 밖으로만 맴돌려 했었잖아.”

석원이 즉답을 피하고 신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게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내의 이어지는 말에 석원이 술 잔 대신 슬그머니 아내의 손을 잡았다.

“미안했어, 여보. 나 용서해줄 거지.”

아내와 신일을 번갈아 바라보는 석원의 눈에 미세하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가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석원 씨, 우리 잠시의 이별 그리고 새로 태어난 당신을 위해 건배해.”

아내의 제안에 석원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