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장난에 수억 날린 부모들 사연

2016.05.30 11:29:42 호수 0호

자식 불장난…쫄딱 망하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10대 청소년의 불장난에 외제차 등 4대가 불탔다. 장난삼아 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후폭풍은 거셌다. 법적인 처벌은 둘째 치고서라도 차량 수리비용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그대로 떠안았다.



수천만원의 차값을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된 것. 사실 이런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고급외제차에 소화기를 뿌려 억대의 차 값을 물어줘야 했던 사건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야기다. 자식의 장난으로 억대의 빚을 지게 된 부모들. 그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지난 20일 고등학생 김모(16)군이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김군은 지난 18일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길에 일회용 라이터를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긴 김군은 작동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길 옆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에 라이터를 켜고 불을 붙였다. 하지만 김군은 불을 끄는 것을 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법정 의무자 책임

결국 김군이 붙인 불씨는 쓰레기봉투 주변 마른 덤불과 잡목으로 퍼졌고, 급기야 주변에 주차된 외제차와 승합차 등 4대에 옮겨붙었다. 불은 119 소방차량까지 출동하고서야 진화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성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피해 정도가 커 입건했다”며 “호기심에 의한 사소한 불장난이 이 같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수천만원의 차 값을 물어주게 된 김군 부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시가 수억원에 달하는 외제 승용차량에 소화기를 뿌린 사건도 있었다.


한 중고차 사이트에는 초등학생들이 람보르기니 차량을 파손해 수리비만 1억6000만원이 나왔고, 차량이 폐차 직전이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당시 광주 광산경찰서는 람보르기니 차량을 파손한 초등학교 4학년 A(10)군 등 4명을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했다.

외제차에 소화기 뿌려 차값 물어줘
장난삼아 불질렀다 전액 배상 판결

주차장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결과,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B(30)씨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연두색 차량에 초등학교 4학년 A군 등 4명이 소화기를 뿌리고 차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는 등 차량을 훼손하는 행위가 영상에 담겨있었다.

A군 등은 “차 모양이 장난감처럼 보여서 호기심이 생겨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수리 견적으로 6600만원이 나왔다”며 “가해자들이 초등학생인만큼 처벌을 원치 않고 있어 학생들의 부모와 합의를 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피해 차량은 광주 지역에서 한대밖에 없는 람보르기니로 신차의 경우 시가가 5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수리비에 대한 추측들도 난무했다. 네티즌들은 “아이들 장난에 부모만 죽어난다” “부모가 무슨 죄”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C군은 1학년 때부터 작은 체구 탓에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체격이 커지며 괴롭힘은 다소 줄었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반에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몇 년째 앓던 조울증은 점차 심해졌고, 자살 충동을 자주 느끼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2013년 8월18일 오후. C군은 자신이 살던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개학일인 다음날 학교에 가도 예전처럼 친구들을 잘 사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허리춤에는 집 주방에 있던 과도가 꽂혀 있었다. 마침 같은 빌라에 사는 아주머니 D(53)씨도 널어놓은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빌라 4층에 살던 C군은 3층에 사는 D씨 가족과 10년 넘게 알고 지낸 이웃 사이였다. C군은 흉기를 옥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휘둘렀다. “혼자 죽으면 너무 무섭고 아는 누군가와 같이 죽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왼쪽 어깨를 한 차례 찔린 아주머니가 쓰러지자 C군은 “아줌마 죄송해요. (저 지금) 폭발할 것 같아요”라고 소리쳤다. C군은 피를 흘린 채 도망가던 아주머니를 뒤쫓아 여러 군데를 찔렀다. D씨는 목 부위 동맥이 절단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비명을 듣고 나온 이웃 주민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 빠른 응급조치로 다행히 생명은 건졌다. 경찰에 붙잡힌 C군은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사건 당시 만 14세 미만인 점이 고려돼 형사 처분 대신 소년부 송치 결정을 받았다. D씨는 형사재판과 별도로 C군과 그의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법 민사10단독 정원석 판사는 C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대신 부모에게 4318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D씨의 흉터 성형 등 치료비 432만원 중 C군 측이 이미 D씨에게 준 114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치료비 318만원과 D씨가 청구한 위자료 4000만원을 모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판사는 “원고로서는 가장 안전하다고 여길 주거지에서 아무런 까닭이나 영문도 없이 이웃으로부터 무차별적인 칼부림을 당했다”며 “동맥 출혈 등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했고 현재까지도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권자이면서 아들을 보호하고 교양할 법정 의무자인 부모가 그 의무를 충실히 다하지 못했다”며 “이것과 사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민법은 성년의 기준은 만 19세로 두고 있다. 즉, 엄마의 모체에서 태어나서 성년자가 되는 만 19세 미만의 사람은 모두 대한민국 법제상 미성년자다. 책임 능력이라는 것은 법률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이되는데, 미성년자라도 4살 어린이와 18살 고등학생의 책임 능력을 동일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민법도 미성년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그 행위의 책임을 분별할 지능이 없는 때’에는 배상의 책임이 없다고 규정해, 책임 능력 유무의 기준을 행위의 책임을 변제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지의 여부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미성년자의 책임 능력 유무는 구체적 사례에서 개별적으로 판단될 문제다. 책임 능력 없는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경우 해당 미성년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미성년자를 보호, 감독하는 부모가 대신해서 책임지도록 규정되어 있다. 해당 미성년자의 감독자인 부모는 감독의무 위반이 있고,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미성년자와 연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대다수 미성년범 부모들은 부모의 책임임을 통감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약속하고, 자식의 행위에 선처를 구한다.

안 해줄 수도 없고…
“왜 물어줘” 버티기도

그러나 간혹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면서 피해자에 대해 배상을 거부하고, 자식이 잘못한 걸 왜 자기에게 따지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부모들도 있다. 그런 황당한 반응은 언뜻 냉정하지만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도의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이고, 법적으로도 잘못된 말”이라며 “민법 제755조 제1항에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미성년자가 그 책임을 분별할 능력이 없을 만큼 어려서 그의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때에도 그 부모가 대신 배상책 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판례를 살펴보면 미성년자가 독립적으로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에도 그 부모는 미성년 자식에 대한 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므로 직접 피해자에게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순간 패가망신


결국, 미성년의 자녀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부모는 도의적인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또 그는 “미성년자 범죄 발생의 원인이 된 가정의 해체에 그들 부모의 책임이 크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며 “문제에 대해 법적인 접근에 앞서 가족 전체에 대한 힐링 처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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