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소년 범죄에 관대한 대한민국

2010.11.16 10:29:53 호수 0호

강간·살인해도 ‘소년은 벌 받지 않는다’

대한민국 만 10~14세 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법률상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이유에서다. 촉법소년은 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당초 만 12세 이상 14세 미만이었던 촉법소년 나이를 지난 2008년 현재와 같이 낮췄다. 형법 제9조에 따라 촉법소년은 형사미성년자로 소년형사사건이 아닌 ‘소년보호사건’으로 분류된다. 형사처벌 대신 교정을 받는 것. 하지만 최근 촉법소년의 흉포한 범죄가 잇따르자 전문가 사이에서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법률상 ‘촉법소년’ 범죄 저질러도 형사처벌 못해
촉법소년 흉포 범죄 잇따라 형사처벌 필요성 대두


우리나라 촉법소년 범죄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보호처분을 받은 14세 미만의 소년범은 2006년 3175명에서 2007년 4104명으로 늘어났고, 2008년에는 4486명, 지난해에는 5299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3년간 서울 가정법원에 접수된 2만7816건의 소년보호 사건 중 촉법소년 사건은 7897건으로 전체의 28.4%를 차지한다.

촉법소년 범죄 ‘심각’
 
더욱 큰 문제는 촉법소년의 범죄 중 강도, 강간, 방화, 상해 등 강력 범죄비율이 전체의 13.1%에 이르는 등 죄질 또한 나날이 흉포화 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달 21일 새벽 서울 도심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 일가족 4명이 사망한 사건은 이 같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집에 불을 지른 것은 이 집의 장남 이모(13)군. 아버지와의 불화로 감정이 생긴 이군은 아버지를 살해할 목적으로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 가족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안방, 부엌,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일가족을 사망케 했다.

자신 때문에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군은 이웃 주민들에게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취재 기자들을 향해 자신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담담한 모습을 보여 충격을 줬다.
지난 8월에는 경기 안양에서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A(13)군이 같은 학교 B(13)군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15일에는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C(12)군이 흉기로 동급생 D군을 수차례 찌르고 둔기로 때려 상처를 입혔다.
이같이 어린 소년들의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무너지는 가정과 점점 흉포해지는 청소년 범죄의 한 극단을 목격했지만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법률상 ‘촉법소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은 이군을 검찰 대신 서울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고, 가정법원은 판결에 앞서 이군을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했다. 이군은 이곳에 머물면서 가정과 학교 환경에 대해 조사받고, 학교 생활기록부, 심리·적성검사와 건강상태, 행동관찰 등을 분석받아 비행원인과 재비행 가능성 정도를 파악, 지도 지침을 마련하게 된다.

이어 A군도 현재 소년분류심사원에 머물면서 법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고, C군은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2년 처분을 받은 상태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되면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2개월에 한 번씩 보호관찰관에게 1~3시간의 상담을 받을 뿐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촉법소년에 대해서도 범죄 형태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들은 소년법 32조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보호처분 방법에는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위탁, 수강명령, 보호관찰, 소년보호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촉법소년은 보호자 등에게 위탁하는 1호 처분을 받고 있다.

최근 3년간 서울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 중 1호 처분의 비율은 절반을 넘은 51.8%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소년원으로 송치되는 ‘9호 처분’과 ‘10호 처분’을 받은 촉법소년의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가정법원 측에서는 “나이만 보고 처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중범죄를 저질렀거나, 수차례 범행을 저지른 촉법소년은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를 결정한다”고 말했지만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보호관찰을 받는 인원 중 촉법소년의 비율은 매우 적다”면서 “판사들이 나이가 어린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유한 판결을 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보호관찰관의 인력 부족도 촉법소년을 관리하는데 문제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보호관찰관 1인당 관찰대상자 수는 지난해 223명으로 2008년 202명, 2007년 180명에서 더욱 늘어난 수치다. 이는 선진국의 보호관찰관 1인당 관찰대상자 수(영국 23명, 호주 53명, 미국75명, 일본 70명)의 많게는 10배에 이른다.

선진국에서는 최근 죄질이 나쁜 소년범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아닌 범죄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있는 것.
영국의 경우 범죄가 중한 경우 형사지방법원이나 일반치안판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중한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성인범죄자의 형기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구금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에 대한 처벌강화 현상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독일 역시 소년범죄 증가에 따라 소년의 형사책임범위와 처벌 연령에 대한 조정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처벌 강도 낮아 어쩌나

소년범을 처벌할 것이냐 교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법조계에서도 오랜 논란거리였다. 교화를 원하는 측은 어린나이에 미숙한 판단을 내린 것을 두고 낙인을 찍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인다. 범죄를 저지른 환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교정·교화를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처벌을 해야 한다는 측은 ‘피해를 준 자는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날로 흉포화해지는 촉법소년 범죄를 두고 ‘처벌이냐, 교화냐’는 논란 속에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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