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면식범죄 ‘천태만상’

2010.11.16 10:22:53 호수 0호

“나는 네가 내 집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최근 면식이 있는 사람들의 절도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이웃 주민부터 친한 친구,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절도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경제난 초기 동네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등 생계형 범죄가 판을 치더니 최근에는 아는 사람의 현금이나 귀중품을 훔치는 면식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경기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아직도 몇 해 전 ‘겨울’에 멈춰있다. 최근 부쩍 늘어난 면식범죄 ‘천태만상’을 들여다봤다.

경제난 등 여파로 면식범죄 ‘우후죽순’
친구·가족 할 것 없이 남의 물건 손 대

친구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금품을 훔치는 면식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이나 내부사정을 잘 아는 곳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절도범들이 늘고 있는 것.
그 중에서도 이웃주민이나 몇 사람을 건너건너 아는 정도의 지인이 절도를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 8월 대구에서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사망하자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느라 집을 비운 사이 50대 여성 간병인이 초상집을 턴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라! 당신이 왜?”

A(55·여)씨는 가정 방문 간병인으로 환자가 있는 집을 직접 찾아 4개월간 80대 환자를 간병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초 자신이 간병하던 환자가 숨지자 유족들이 장례를 준비하면서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초상집에 침입해 장롱 등에 있던 2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다.
A씨는 장례를 끝내고 집안을 정리하던 유족들이 금품 일부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덜미가 잡혔고, 지난 3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부산에서는 일부러 장애인과 인연을 만들어 친분을 쌓은 뒤 집을 턴 30대 남성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강모(35)씨는 지난 8월부터 사회복지센터 등에서 알게 된 장애인 김모(42)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이후 강씨는 김씨의 귀가를 2~3차례 도와주면서 김씨 집 현관문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지난달 8일 범행을 저질렀다.

강씨는 이날 오후 10시께 김씨의 집에 전화를 걸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김씨의 집에 몰래 침입해 465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다.
경찰 조사 결과 강씨는 김씨의 부인이 장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물건을 훔치기 위해 언어 및 하반신 장애가 있는 김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가 하면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금품을 훔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지난 8일 친구집에서 팔찌와 반지 등을 훔친 김모(18·여)양을 절도 혐의로 붙잡았다. 김양은 지난 1월23일 오후 3시께 광주 서구 화정동 모 아파트에 거주하는 친구집에 들어가 시가 44만원 상당의 팔찌와 반지 등 금품을 훔쳤다.

같은 날 광주 남부경찰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친 오모(29·여)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지난달 17일 오후 6시께 광주 남구 주월동 모 아파트에서 친구 채모(29·여)씨가 집을 비운 사이 열려 있던 현관문으로 침입해 목걸이 등 시가 17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달 대구에서는 변심한 여자친구의 집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훔친 2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대구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B(29)씨는 지난달 27일 밤 10시께 대구 북구 노원동에 위치한 여자친구 C(28·여)씨의 아파트에 침입해 보석 등 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조사 과정을 거친 경찰은 “B씨가 여자친구가 변심한데 앙심을 품고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멀리 제주도에서는 친구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친구의 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친구의 집에서 금품을 훔친 이모(39)씨가 붙잡혔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중순께 제주 서귀포 시내에 위치한 친구 아버지 D(70)씨의 집에서 D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친구의 아버지가 술을 사러 잠시 나간 틈을 이용, 현금 145만원을 비롯해 총 195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한편, 올해 초에는 동거자금을 마련하려고 어머니 패물을 훔친 철부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동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몇 달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장롱 안에 놔둔 패물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 김씨는 고가의 패물이 연달아 사라지자 경찰에 “도둑을 잡아 달라”고 신고했다.

김씨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외부에서 범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고, 깔끔하게 정리된 장롱 안에서 패물만 사라진 점을 들어 가족이나 면식범의 소행이라고 판단했다.
주변 인물 조사를 하기 시작하자 김씨의 아들 김모(21)씨가 4개월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잠복 며칠 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집 근처에서 김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애인과의 동거자금을 마련하려고 어머니의 패물을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경남 김해에서는 채무 변제를 위해 처남집에 몰래 들어가 돈을 훔친 ‘못난 매형’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남 김해서부경찰서는 지난 9월3일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처가를 턴 혐의(절도)로 정모(3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변변한 직업이 없던 정씨는 지난 8월9일 낮 12시께 식당을 운영하는 처남 최모(26)씨의 집 안방 항아리에서 200만원을 훔치는 등 2회에 걸쳐 현금 700만원을 훔쳤다. 평소 처남인 최씨의 아파트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가족 돈은 내 돈?

하지만 경찰은 이 점을 수상히 여겼다. 도둑이 들었지만 집안을 뒤진 흔적이 없었고, 귀금속은 그대로 둔 채 항아리 속의 현금만 없어졌다는 것은 항아리 안에 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면식범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것.
또 경찰은 정씨가 최근 채무 변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가족들의 진술을 확보한 뒤 범행시간대 아파트 출입구 CCTV에 정씨의 모습이 찍힌 것을 확인, 정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사실 CCTV로 면식범을 잡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면식범의 경우, CCTV에 찍혔다 하더라도 지인, 친구 혹은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CCTV에 찍힌 것만으로 용의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씨의 경우, 최근 빚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을 가족들의 진술로 파악했고, 이를 토대로 집중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면식범죄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경제난 등의 여파로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면서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나쁘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너무 신뢰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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