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최고 명당' 공개

2016.05.02 11:43:04 호수 0호

대통령이 썼던 방 ‘와∼’ 머물다 구속된 방 ‘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총선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당선인들 앞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는 방을 둘러싼 이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된다. 전쟁이라고 말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이유는 4년간의 의정활동이 대부분 이 방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원에게는 내집 마련만큼 중요한 내 방 찾기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곧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될 겁니다. 의원실에도 명당이 있거든요.” 한 의원실 관계자는 곧 있을 방 경쟁에 대해 이같이 예고했다. 새로운 국회가 개원하기 전 당에서는 의원실 배정을 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 의원실을 옮길 수 있는 기회는 이시기밖에 없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장관 등이 거쳐 간 곳은 사전 물밑작업이 벌어질 정도로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중앙광장 뷰
‘518호’ 치열

국회 의원회관은 지난 1989년에 준공된 구관에 2012년 신관이 증축되면서 지금의 ‘ㅂ’ 자 형태를 갖추게 됐다. 전체 10층으로 총 300명의 국회의원에 각 의원 당 '9명의 식솔'까지 더하면 3000여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지낸다(국회 사무처 직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의원실을 갖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프로세스는 대략 다음과 같다. 본회의장 좌석배치처럼 국회 사무처가 의원회관의 일정 구역을 나눠 각 당에 배분한다. 각 당은 새로운 원내 구성이 마무리되면 배분된 방을 기준으로 관련 의견을 모은다. 보통 의견 수렴은 원내대표실 또는 원내 행정국이 담당한다. 선수가 높을수록 의견이 반영될 확률이 높다. 조정이 마무리되면 정당 대표가 국회 사무처에 통보하게 된다. 무소속의 경우 선수·연령 등을 고려해 국회의장이 결정한다.

각 당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식적인 의견 수렴 기간을 두는 건 아니다. 혹 의원실에서 지금 자리가 싫거나 사전에 염두에 둔 곳이 있으면 담당부서에 먼저 요청하는 식이다.


내집 마련 만큼 중요한 내 방 찾기
금배지 ‘취향저격’ 사무실은 어디?

유형은 크게 ▲명당선호형 ▲전망선호형 ▲의미부여형 ▲방문자우선형 ▲은둔형 ▲현상태유지형 등으로 나뉜다.

역사와 전통이 쌓이다 보니 의원회관에는 소위 명당이라는 곳이 생겼다. 명당선호형은 그 방에서 대통령, 국회의장, 장관 같은 국가 지도자급 내지 각 정당의 대표나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인물이 배출된 곳을 선호한다. 일례로 지난 19대 국회에서 노무현·이명박 등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현역으로 있었던 시절 사용한 방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마치 ‘절대반지’처럼 방을 차지한 사람은 ‘대통령의 정기’를 받는다는 미신에 기인한 행동이다. 19대 국회 개원 당시 박 대통령이 사용했던 545호의 주인이 됐던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생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썼던 312호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던 638호의 방주인이었던 나성린 의원과 임수경 의원은 재선에 실패해 희비가 엇갈렸다.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기는 문화 때문에 4층은 오랫동안 기피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통해 4층을 썼던 의원들이 다수 생환해 재조명 받고 있다. 37명 중 24명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새누리당 김기선(410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희상(454호) 의원실이 대표적이다. 특히 문 의원의 경우 중간에 당 공관위로부터 컷오프 대상에 올랐다가 가까스로 구제돼 7선에 오르는 반전을 보여줬다.

전망선호형은 최근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대략 7∼8층을 선호한다. 더 높은 층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낮은 층은 햇볕과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로얄층’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한강 또는 국회 중앙잔디광장의 분수대가 내려다보여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19대를 기준으로 하면 7층에는 새누리당 강창희(744호) 김무성(706호) 심재철(714호) 의원실, 더민주 정세균(718호) 최규성(707호) 의원실, 국민의당 김동철(726호) 박주선(708호) 의원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8층에는 정의화 국회의장(844호)을 비롯해 새누리당의 이병석(846호) 이재오(818호) 이주영(819) 정병국(828호) 황우여(848호) 의원실, 더민주 박병석(804호) 원혜영(816호) 이석현(813호) 전병헌(810호) 의원실 등이 있다. 이재오·정의화·황우여 등 해당 층을 사용하던 중진급 의원실이 매물로 나와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 예상된다.

이러한 성향은 과거 2012년 신관이 들어서기 이전과 대비된다. 그때는 계단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낮은 층을 선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의원실은 218호(구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원실은 328호(구관)였다. 각 호실 주위에는 ‘상도동계’ ‘동교동계’ 등 같은 정파가 모여 세를 과시함과 동시에 수장을 보좌했다.

“정기를 받아…”대통령 배출지 인기
햇볕 없는 저층 구석의 비례대표 설움


의미부여형은 층보다 숫자의 의미를 중시 여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정계에 발을 들인 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518호를 줄곧 사용해왔다. 최근 원내대표로 취임한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00년에 있었던 ‘6·15남북공동선언’을 의미하는 615호를 고수해왔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325호를 쓰는데, 이를 거꾸로 하면 523이 된다. 5월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날이다.

방문자우선형은 층과 호실보다 엘리베이터와의 접근성을 중시한다. 대표적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의원실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위치했다. ‘ㅂ’자로 복잡하게 변한 의원회관에서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복잡한 구조 탓에 초행길이라면 건물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은둔형은 구석을 좋아한다.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의원실 취향이 적극 반영된 경우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은)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복도에서 들리는 소음이 심하다”며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구석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현상태유지형은 처음 여의도에 발을 들인 곳을 떠나지 않으려는 유형이다. 재선에 성공한 대부분의 의원실이 이에 해당된다. 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 방의 기운도 좋다는 의미 아니겠나”라며 “익숙한 면도 있고 특별히 좋은 방이 나온 게 아니라면 그냥 그곳에 머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열 높을 수록…
자리싸움 날판

반면 선택권이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전적으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3∼4층의 건물 안쪽 의원실이 이들의 몫이다. 19대 때 초선의원실에 있었던 관계자는 “비례대표는 선택권이 없다”며 “주어진 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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