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8)역할 분담

2016.04.12 10:02:10 호수 0호

마지막 만찬을 즐기다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호룡이 석원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저 자네만 믿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며 가기를 잠시 석원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그야말로 화려한 음식점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이어 음식점 종업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차문을 열고 맞이하자 뒤따라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안내 받아 도착한 룸에 들어서자 차주선이 반갑게 맞이했다. 석원이 급히 다가가 허리를 90도 가량 꺾어 인사했다.

“오늘 퇴원했다지.”

“위원님 덕분입니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활하느라 상당히 노고 많았네. 그래서 특별히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석원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하자 차주선이 봉투를 내밀었다.

“그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느라 마음고생 심했을 터인데 이번에 함께 여행이라도 다녀오도록 하게나. 그렇다고 긴장은 풀지 말고.”

두툼한 봉투를 앞에 두고 석원이 호룡의 눈치를 살피며 망설였다. 그를 살핀 호룡이 차주선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석원이 다시 고개 숙이고 조신하게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말이야.”

차주선이 석원을 은근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이 자리가 파한 다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리 알고 이 자리에서는 그저 마음껏 들도록 하게나.”

“위원님, 무슨 선물인지 말해주실 수 없습니까?”


“이보게, 이 부장. 문 군에게 주는 선물인데 왜 자네가 알려 하는가. 여하튼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 일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저 한 달 간의 피로를 쭉 풀어내는 자리가 되도록 하세.”

차주선의 힐책 아닌 힐책에 호룡이 표정을 머쓱하게 위장하고는 부러운 시선으로 석원을 주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후 본격적으로 음식이 들어오고 이어 미모가 출중한 아가씨들이 들어왔다.

술잔이 오고가고 오래지 않아 술기운으로 인해 분위기가 질펀하게 변해갔다. 한순간 차주선이 자리 파할 것을 암시하자 이호룡은 물론 문석원의 표정에 아쉬운 감이 역력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은 차주선이 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가자 고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문 군 타게나.”

석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선물 준비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일단 타게.”

선물이라는 소리에 잠시 전 상황이 생각났는지 석원이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고 차에 자리 잡았다. 이어 차가 미끄러지듯이 음식점을 빠져나가 도쿄 중심가의 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기사가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물론 한 룸의 번호였다. 호기심에 한껏 들떠 자꾸만 메모지를 살피며 가기를 잠시 후 메모지에 기재된 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동안 마신 술이 만만치 않건만 자꾸 마음이 움츠려들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배에 힘을 주고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석원의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어진 듯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석원 군. 내 차 위원께 신신당부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였어요.”

석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물거리자 여인이 석원의 팔을 잡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지도원 동‥‥‥.”

영웅인가 테러리스트인가
'거사' 위한 준비 착착


석원이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와 말을 한다고는 했는데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늘 밤은 그냥 영란이라 불러줘요.”

여인, 영란의 손에 이끌려 룸에 들자 테이블 위에 샴페인과 함께 간단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석원의 술기운이 송두리째 사라진 듯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공들였는지 아세요?”

“너무 과분합니다, 지도원 동무.”

이번에는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를 살피며 영란이 천천히 글라스에 술을 따라 석원에게 건네고 저 역시 한 잔 들어 침대로 이동했다.

“우리 민족의 영웅이 이렇게 소심할 줄이야.”

마치 조롱하듯이 웃으며 내뱉은 영란이 손을 뻗었다. 더 이상 수세에 몰려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석원이 잔을 들고 영란이 안내하는 침대로 다가가 바로 곁에 자리 잡았다.

“석원 씨, 한동안 제대로 사람 생활 못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우리 모든 거 잊고 마셔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가볍게 잔을 부딪친 영란이 슬그머니 석원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순간 잠시 동안 사라졌던 술기운이 급격하게 밀려오는지 석원의 가운데에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석원이 급히 잔을 비워내자 마시는 시늉만 했던 영란이 자신의 잔과 석원의 잔을 침대 한구석에 내려놓고 한 손으로 석원의 목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꿈틀거리기 시작한 석원의 가운데를 슬그머니 만졌다.

영란의 행동에 석원의 코에서 정체 모를 뜨거운 기운이 영란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영란이 그를 느끼며 자세를 낮추자 석원의 바지가 뚫어질 듯한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부분을 슬쩍 손으로 비벼대던 영란이 몸을 일으켜 석원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벗어나 석원의 빈 잔을 채워 가져왔다.

“오늘 밤 내내 석원 군의 사랑을 받고 싶어.”

촉촉이 젖어든 영란의 목소리에 석원의 어깨도 가운데처럼 한껏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의식하며 잔을 건네는 영란의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이어 잔을 치우고 품에 들어온 영란을 으스러져라 껴안으며 거친 숨을 뿜어냈다.

“가만히 있어봐.”

영란이 가볍게 석원을 밀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석원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면서 목젖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전라로 변한 영란이 이번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석원의 옷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석원이 순간을 참을 수 없었던지 혹은 영란의 행위를 도와주기라도 함인지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전라의 모습으로 바뀌자 석원이 야수의 본능을 드러내 영란을 안아 들어 침대에 가지런히 눕혔다.

“석원 씨, 가만.”

영란이 자신의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석원의 어깨를 살며시 밀치며 석원의 몸 위에 자리했다.

“가만히 있어. 내가 석원 씨를 가질 테니.”

영란이 그윽한 시선으로 석원의 얼굴을 주시하기를 잠시 석원의 귀를 시작으로 혀로 아울러 입술로 말하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석원의 몸이 움찔움찔거렸다.

“어땠어, 석원 씨.”

짧지 않은 시간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던 석원의 귀에 달콤한 음악이 들려왔다.

“지도원 동무,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순간 영란이 얼굴을 찡그리며 석원의 가운데를 힘차게 감아쥐었다. 석원의 입에서 자연스레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도원 동무라 부르지 말고 영란이라 부르라 했잖아.”

“정말 그래도‥‥‥.”

영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치워 놓은 잔을 가져와 석원에게 건네고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그런데 정말 좋았어?”

“그걸 말씀이라고 해요. 태어나서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나도 이런 기분 처음이야. 사랑을 나누는 일이 이렇게 좋은 건지 지금까지 정말 몰랐어.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석원이 차마 답을 못하자 영란이 고개 숙인 석원의 가운데를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영란의 기교 혹은 석원의 마음속에 있던 영란에 대한 호기심 탓인지 오래지 않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서서히 기지개켜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웅과 함께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더욱 흥분되고 그래서 더욱 맛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석원이 차마 대답을 못하자 영란이 손 대신 입을 그곳으로 가져갔다. 이어 입과 이빨로 공략하자 석원의 귀에 그저 영웅이라는 단어만 윙윙거렸다.

동일이 사무실에서 시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자신 또래의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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