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 유업계 복마전

2015.12.14 10:18:31 호수 0호

‘어렵다면서…’ 뭉칫돈 빼돌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갑질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유업계가 또 한 번 광풍에 휩싸였다. 우유 소비 감소와 실적 악화 등 산재한 악재를 처리하기도 벅찬 마당에 이번에는 도덕성마저 의심받는 양상이다. 모럴헤저드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과 함께 유업계 전체가 심각한 이미지 훼손에 직면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분유 재고량은 올 9월 기준으로 전년동기대비 약 40% 증가한 26만2659톤에 이른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3월(2만2309톤)에 비해 재고량은 줄었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1인당 우유 소비량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린 까닭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를 대표하는 수위권 업체 내부에서는 여전히 뱃속 채우기가 자행되고 있다. 협력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거나 경영진이 두 집 살림을 하는 등 사례는 조금씩 다르지만 논란이 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윳값이?

지난 6일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조재빈 부장검사)는 이동영(62) 서울우유 전 상임이사와 김정석(56) 매일유업 전 부회장 등 2개 업체 임직원 12명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횡령·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에게 뇌물 4억1000만원을 건네고 회삿돈 2억4700만원을 빼돌린 혐의(뇌물공여 및 업무상 횡령 등)로 우유용기 제조·납품업체 H사의 최모(62)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우유업계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한 것은 1999년 서울우유 납품비리 사건이래 16년 만이다.


서울우유의 사실상 최고경영자인 이 전 상임이사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납품 계약 유지를 돕는 대가로 최 대표에게서 현금과 수표 85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상임이사는 지난달 초 검찰이 자신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하자 사직했다. 2011년부터 4년간 H사로부터 2200만원을 받은 송모(46) 경영전략팀장과 최 대표에게 현금과 수표를 받은 본부장 및 팀장급 직원 5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매일유업 창업주의 차남이자 김정완 회장 동생인 김정석 전 부회장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검찰로부터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김 전 부회장은 매일유업의 납품 중개·운송·광고업체 등 별도법인의 대주주나 경영주로 활동하면서 2008년부터 회사 수익금 48억원 상당을 빼돌려 32억원을 생활비·유흥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납품업체로부터 납품 대금의 3% 수수료로 내도록 하고 이를 유령계좌를 통해 가져가는 일종의 ‘통행세’를 거둔 셈이다. 

대표 유업체 수십억 비리 수사
오너일가·최고임원 뒷돈 챙겨

횡령을 공모한 이 회사의 노모(53) 전 부장도 불구속 기소됐다. H사의 최 대표로부터 납품 단가 유지 및 물량 확대 청탁과 함께 3000만원 상당의 승용차 등 1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받은 팀장과 과장 2명은 구속됐다. 1000만원을 받은 직원 2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재발방지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개인 비리쯤으로 치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검찰 수사에 따라 서울우유와 매일유업에서 드러난 납품 비리 의혹과 비슷한 사례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진을 비롯해 다수가 연루된 사안을 내부에서 전혀 몰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계속된다.

실제로 검찰은 김 전 부회장의 횡령 비리를 오너 일가나 다른 경영진이 알면서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추가로 비리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업계에 만연한 임직원 비리가 유제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조사 중이다. H사는 납품단가를 산정할 때 로비 비용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크고 매일유업 김 전 부회장은 유통과정에 개입해 제품 가격 형성에 직·간접으로 관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문경영인과 오너 일가까지 장기간 금품을 수수할 만큼 우유 업계에는 ‘갑을관계’에 따른 비리가 만연했다”며 “비리는 유제품 가격 상승 등 국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므로 지속적으로 적발해 엄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우유, 매일유업 등 수위권 업체의 경영진이 비슷한 시기에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자 유업계는 자칫 유제품 매출 하락으로 연결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출산율 저하와 불황으로 인한 소비 위축, 대체 음료 등으로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 마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주에게 주문도 하지 않은 제품을 떠넘기며 판매를 강요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불거진 이후 심각한 이미지 손상 및 매출 하락을 경험한 바 있다.

힘들어 죽겠다더니…


유업계 관계자는 “우유 소비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할인 판매 등 특단의 조치에 나섰지만 대다수 유업체는 수익성 저하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가뜩이나 우윳값 비싸다는 눈총을 받는 요즘 분위기에서 이번 사태가 악영향을 줄까봐 우려스럽다”고 언급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상공인 보호법’ 뿔난 소상공인 왜?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남양유업방지법이 정작 소상공인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지난 9일 소상공인연합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소상공인 보호 대책이 빠진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남양유업방지법)을 규탄하고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대기업과 소상공인간의 상생경영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현행 남양유업방지법에 대리점사업자 단체결성권과 단체협상권 보장과 계약갱신요구권을 10년 보장, 대리점지역본부에 대한 책임과 본사 연대책임 규정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영채 소상공인연합회 이사는 “법안내에 소상공인 대리점주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권리를 제외했다는 것은 소상공인과의 상생경영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남양유업방지법이 진정으로 소상공인을 위한 법이 될 수 있도록 재개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여야 원내지도부가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남양유업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대리점 거래 관계에서 불거진 '갑을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이 법안은 물량 밀어내기·대리점거래 계약서 작성 의무화·일방적 영업비용 전가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지하고자 마련됐다. 기업이 해당법을 위반해 대리점에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의 3배 이내에서 배상을 책임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포함돼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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