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vs 안상수 앙숙대결 내막

2015.08.31 10:08:13 호수 0호

"고개 숙이느니 행정 마비 시키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일개 창원시장이!” “정신이 나가도 분수가 있지!” 지난달 홍준표 경남지사가 예고도 없이 도청 기자실을 찾아와 안상수 창원시장을 겨냥해 쏟아낸 막말들이다. 도지사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도 소속 특정 지자체장을 겨냥해 막말을 쏟아낸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두 사람 사이엔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내막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2년 동안 참고 참았다. (중략) 정치놀음 하지 말고 창원시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지, 일개 창원시장이 되지도 않을 광역시 가지고 그런 식으로 관권을 동원해서. (중략) 행정 내용도 모르면서 사사건건 시비 걸고 상급기관을 무시하고 정신이 나가도 분수가 있지.”

견원지간

지난달 22일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마디 예고도 없이 불쑥 도청 기자실에 찾아와 안상수 창원시장을 겨냥해 위와 같은 막말들을 쏟아냈다. 이날 홍 지사의 이례적인 격정토로는 그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정치권에선 이미 유명한 앙숙관계인 두 사람은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사람은 모두 스타검사 출신이다. 홍 지사는 슬롯머신사건 수사로 유명세를 탔고 노태우정부 시절 정권의 실세인 박철언 전 장관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홍 지사보다 7기수 선배인 안 시장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담당검사로 유명하다. 

안 시장은 정권의 압박에도 결국 진실을 파헤쳤고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다. 이후 두 사람은 15대 총선에서 나란히 정계에 입문해 18대까지 내리 4선을 했다. 두 사람 모두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당대표를 거쳤고,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경남에서 지자체장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까지 똑같다. 


이쯤 되면 친할 법도 한데 이상한 일이다. 법조계는 사법시험 기수에 따라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홍 지사는 안 시장보다 7기수나 아래면서도 안 시장에게 제대로 선배대접을 하지 않았고, 안 시장도 홍 지사를 버릇없는 후배쯤으로 여기며 서로 무시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고향이 경남이라는 공통점까지 있었지만 정치 입문 후 각종 현안마다 사사건건 부딪혔다. 특히 지난 2010년 당대표 경선을 치루는 과정에서는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당시 홍 지사가 “개 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며 이웃을 상대로 소송을 냈던 사실을 폭로하며 안 시장을 향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 지사는 “자기 지역구 옆집 사람과도 개소리 때문에 화합 못 하는 분이 어떻게 당내 화합, 국민 통합을 하겠냐”며 안 시장을 비판했다.

안 시장이 대표로 당선된 이후에도 안 시장이 측근을 당대변인으로 임명하려 하자 최고위원이던 홍 지사가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등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는 안 시장이 “지난 2012년엔 내가 경남지사보궐선거를 양보했으니 이번엔 홍 지사가 양보할 차례”라며 홍 지사에게 도지사 공천을 양보할 것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홍 지사가 “도지사는 나눠먹기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발끈하는 일도 있었다.

"우린 남이다" 경남-창원 불안한 동거
두 사람 자존심 대결에 주민들만 피해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 모두 각각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대립은 어쩌면 예고된 것이었다. 홍 지사 측은 마산 성매매 집결지 폐지, 마산 명품 야시장 조성사업, 마산 로봇랜드 조성사업 등 경남도가 마산 살리기 차원에서 추진한 사업이 번번이 창원시의 방해로 중단됐다고 주장한다. 마산로봇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과 국가 산단 구조고도화 사업, 글로벌테마파크 사업도 창원시가 도와주기는커녕 훼방만 놓는 바람에 창원시의 도움 없이 경남도가 독자적으로 추진해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시장이 창원시의 광역시 승격까지 추진하자 홍 지사의 속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창원은 경남의 핵심 산업도시다. 창원이 광역시로 빠져나가면 경남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는 신세다.

일각에선 안 시장이 자신보다 사시기수가 7기수나 아래인 홍 지사의 지휘를 받는 게 싫어 광역시 승격에 목을 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광역시 승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원시가 관권을 동원해 서명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 지사는 안 시장이 시정에는 힘을 쏟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한다.


급기야 홍 지사는 안 시장이 각종 현안마다 딴지를 걸고 있다며 마산 로봇랜드 조성사업에서 손을 떼고 앞으로 창원시와는 공동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다. 홍 지사는 “가출하려는 자식에게 생활비 대주는 부모는 없다”며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는 창원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로봇랜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 114만 8000㎡에 7000억원(국비 560억, 도비 1000억, 시비 1100억, 민간자본 4340억)을 들여 조성될 예정이다. 당초에는 2014년까지 완공하는 것이 목표였다. 현재까지 국비와 지방비만 744억원이 들어갔다. 경남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국책사업이 고작 두 개인 간의 감정싸움 때문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안 시장은 지난 25일엔 난데없이 대권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안 시장은 그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정치무대에 복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2년 후에 치러질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경선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중앙정치 할 때 지방정치가 이렇게 제약이 많고 권한이 없는 줄 몰랐다”며 “재정, 인사권 등에서 중앙의 통제를 심하게 받는 지금의 지방자치는 반쪽자치다. 내가 경선에 참여해 광역시 승격을 주장하면 새누리당 대선공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안 시장은 “경선 참여 선언이 아니고 경선에 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말했을 뿐”이라며 해명했지만 발언 자체를 아예 부인하지는 않았다.

주민이 볼모?

경남도는 창원시의 상급기관이고 창원시는 경남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대표도시다. 최근  경남도와 갈등을 빚어온 안 시장이 책임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면서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섰지만 남은 임기동안 두 사람이 제대로 화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두 사람이 사사건건 대립하니 경남도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한 야권 정치인은 “두 사람이 개인적 자존심 싸움을 벌이기 위해 경남을 볼모로 삼고 있는 상황”이라며 “도민들을 우롱하는 행태이고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