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김정은 '아바타협상' 손익계산서

2015.08.31 09:54:50 호수 0호

남북은 적대적 공생관계? "둘 다 정권안보용으로 썼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북한의 지뢰 도발로 준전시상태로까지 치달았던 남북의 대치 상황이 극적인 타협을 통해 마무리됐다. 특히 이번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전 형식으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남북협상의 극적 타결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각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두 사람의 손익계산서를 <일요시사>가 따져봤다.



북한의 지뢰 도발로 준전시상태로까지 치달았던 남북의 대치상황이 지난 25일 새벽 극적인 타협을 통해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남북협상에는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북한 측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비서가 참석해 무려 43시간 동안 전대미문의 마라톤 끝장협상을 벌였다. 양측 대표단은 고령의 나이에도 무박4일 동안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며 협상을 이어나갔다. 

무박4일 협상
아바타 협상?

특히 이번 협상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리전 형식으로 치러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협상진행 과정을 CCTV로 지켜보면서 실시간으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협상의 극적 타결로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각각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우선 박 대통령은 이번 협상 타결이 향후 국정운영에 큰 호재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세월호 사고, 정윤회 비선개입 의혹,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형 악재가 끊이질 않았다. 당연히 그동안 제대로 국정운영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5일에는 박근혜정부가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맞았지만 야당에서는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박근혜정부 내부에서도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자조 섞인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대로라면 임기 후반기 국정 장악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조기 레임덕까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였다.

원칙주의 통했나? 박근혜 지지율 급상승
임기 반환점 돌아, 레임덕 걱정은 끝?


하지만 임기 반환점에 터진 대북변수로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느새 50%에 육박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이끌어냄으로써 박 대통령의 대북 원칙주의가 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북한이 그동안 합의문에 북한 주체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사과를 고집하기보단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던 야당으로서는 무척 머쓱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향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여당인 새누리당도 청와대에 이전보다 더 협조적인 태도로 나올 공산이 크다. 때문에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남북협상이 타결된 후 “국정 개혁의 최대 호기를 맞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혁 최대 호기
지지율 급상승

이번 회담을 통해 단순히 군사적 긴장완화만 이뤄낸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남북은 합의문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 개최와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추진, 민간교류 활성화 등의 합의를 이뤄냈다.

박근혜정부 내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던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으면서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나 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도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 중국 외교성과도 빛났다는 평가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힘썼다. 남북 긴장이 고조되자 중국은 남북한 모두 자제하라며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물밑에서는 북한을 상당히 압박했다는 후문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24일 남북 군사긴장이 고조된 것과 관련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전쟁승리 70주년 기념행사로 열릴) 열병식에 (북한이) 실질적인 간섭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중국은 무관심할 수 없다”며 북한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다음달 2~4일 중국을 방문해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잃은 것도 많다. 우선 여권 내에서도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해 진정한 사과로 볼 수 있느냐는 비판론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벌써부터 딴소리를 하고 있다. 남북 고위급 접촉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황병서 국장은 지난 25일 “이번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있어서는 안 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전문가도 언론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준 것은 박근혜정부의 실수”라며 “북한이 유감을 표시한 것은 쉽게 말해 ‘자신들과 관련은 없지만 어찌됐든 사람이 다쳐 유감’이라는 뜻이다. 자기들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유감 표명을 받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천안함 폭침 때도 북한은 자신들은 폭침과 전혀 관계없지만 무고한 군인이 사망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현하겠다고 했다”며 “이명박정부 때는 그런 유감 표명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 박근혜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면죄부?
굴욕적 합의?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의 합의가 굴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또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재발 방지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으나 정작 합의문엔 ‘재발 방지’라는 표현도 나와 있지 않아 논란거리다. 다만 정부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문구가 사실상의 재발 방지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북한의 동의 없이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수단이다. 또 북한이 도발을 해올 때마다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새로 마련된 재발 방지책은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다. 비정상적인 사태라는 표현도 너무 모호하다.

일례로 북한이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경우 이를 비정상적인 사태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고작 두 달 만에 합의를 번복하고 도발을 재개할 경우 박근혜정부는 심각한 역풍을 맞게 될 우려도 있다.

회담결과 내부 결속용으로 대대적 홍보
흔들리던 북한체제 안정, 김정은 노림수?

반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밑질 것 없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다. 북한으로서는 아무런 피해없이 눈엣가시 같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켰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체제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남한에 대한 목함지뢰 도발을 하고도 아무런 피해 없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 시켰으니 이것만으로도 북한은 큰 성과를 얻어낸 셈이다.

또 북한은 우리 측에 유감 표명을 하긴 했지만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원론적인 유감 표명에 불과해 이를 김정은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북한의 <조선신보>는 남북협상이 타결된 이후 “43시간의 마라톤협상의 결과 도출된 북남합의는 우연히 나오지 않았다. 무쇠와 같은 담력을 지닌 영도자의 지략과 영군술의 결실”이라며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은 이번 협상 타결을 대남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하며 선군절 5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은 흔들리던 내부 체제 결속용으로 더없이 좋은 카드를 얻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경제적 실리까지 챙겼다. 남북은 합의문 제6항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는데 사실상 천안함 사태 이후 민간 교류를 금지한 5·24조치의 부분적인 해제라는 평가가 많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남북교류의 물꼬를 틔우며 향후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까지 논의할 수 있게 됐다.

체면 구겼지만
경제실리 챙겨

또 북한으로서는 이번 도발과 합의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대중 외교에서 최근 북한이 우리나라에게 밀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이 본격적인 북한 관리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도 다음 달 중국 전승절 행사에 최룡해 노동당비서를 파견하기로 하면서 북중 간 관계 정상화에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김 위원장으로서도 다소 손해를 본 부분은 있다. 지뢰 도발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가 며칠 만에 유감 표명을 한 것은 확실히 체면을 구긴 것이라는 평가다. 또 국제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신뢰할 수 없는 국가’ ‘골칫덩이 국가’로 굳어진 것도 스스로 아쉬운 점일 것이다. 특히 국내에선 이번 회담의 성과를 박 대통령이 응징과 원칙을 강조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는 만큼 향후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이 더욱 강경일변도로 변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으로선 뼈아픈 패착일 수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남북의 극한 대립 끝에 결국은 양쪽 지도자가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어냈다”며 “북한과 우리나라의 역대 보수정권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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