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경계령’…“아무도 믿지마”

2010.07.20 09:49:19 호수 0호

미성년 성추행 끊이지 않는 이유

전국민을 경악에 빠뜨렸던 김수철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성년자 성폭행 뉴스가 TV를 통해 흘러나오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 게시판은 방송되지 않은 여러 사건으로 도배됐다. 결국 경찰은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국회는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 성폭행범에게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 성추행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 곳곳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펑펑’…과제는?
경찰, 아동 성범죄와 ‘전쟁 선포’ 근본적 대안 절실

영등포 김수철 사건 이후 대한민국 부모들은 불안함에 ‘벌벌’ 떨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혹시 우리 아이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김수철 사건 이후 전국 곳곳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펑펑‘ 터졌다.

10대부터 70대까지 가해자의 연령대는 물론 목사, 회사원, 삼촌, 동네 오빠 등 다양한 직업의 남성들이 노린 것은 하나같이 어린 아동과 청소년이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 군포경찰서는 지난 15일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남녀 중학생을 상습 성폭행한 목사 강모(64)씨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강씨는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교회에서 중학생인 A(15·여)양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고, A양의 남동생과 고등학교 1학년인 B(17·여)양 등 세 명을 상습 성추행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 달에 두 세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해온 A양은 용기를 내 관할 지구대에 신고했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 파렴치한 강씨의 범행은 종지부를 찍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조사에서 강씨는 “A양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는 70대 노인이 귀가하던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부산 동래경찰서는 지난 1일 오모(70)씨를 검거,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오씨는 지난 6월30일 낮 12시30분께 부산 동래구 모 약국 앞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13세 C양에게 접근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등 친근함을 보인 뒤 인근 야산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C양은 어릴 때 홍역을 앓은 후유증으로 판단력이 다소 떨어져 오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C양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다음날 바로 오씨를 검거했고, 경찰 조사 결과 오씨는 2007년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9월 출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10대 청소년도 자신보다 어린 초등학생을 유인해 성폭행했다. 성모(19)군과 윤모(17)군은 12세 여자아이 2명을 데리고 찜질방을 찾아 찜질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꼬여 성폭행했다.

성군은 이후에도 빌라 계단 등 인적이 드문 곳에 여자 아이들을 데려가 4차례에 걸쳐 3명을 성폭행했다. 윤군 역시 동네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에게 ‘사귀자’고 꾀어내는 방법으로 10대 소녀 2명을 5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대한민국 경찰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경찰은 뭐하고 있느냐”는 지적이 높아질수록 초조해진 경찰은 드디어 아동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청은 지난 5일 강희락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를 개최하고 ‘원스톱 기동수사대’를 경찰 최고 수사력을 갖춘 전문인력으로 보강해 ‘성폭력 전담수사대’로 확대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또 아동 성폭행 실적점수를 대폭 상향해 아동 성폭행범 검거와 범행예방을 독려하기로 했다.


아동 성폭행 사건은 어떤 업무보다 우선해서 처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실적점수를 대폭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아동 성폭행범 관련 검문검색이나 신고출동 점수는 일반 강간 사건의 두 배의 점수가 부여된다.

그런가 하면 국회는 더욱 강력한 대안을 내놨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킨 것.

지난달 29일 해당 법률안이 통과됨에 따라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을 성폭행한 범죄자에게는 일명 ‘화학적 거세’가 실시되게 된다. 아동 성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아 기존 범죄자를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재범을 상당부분 억제할 수 있다는 특징으로 볼 때 ‘화학적 거세’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아동, 미성년 성폭행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전자발찌를 채우는 등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성폭력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다면서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 예방의 근원적 해답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와의 전쟁 선포

아동 성범죄자는 구속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실무운영하고,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무엇보다 아이들의 인권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서 피해자인 아이들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중 삼중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언론에서 너무 자극적인 사건만 다루다보니 아동 성범죄 사건이 더욱 부각된다는 지적도 있다.

5세 딸아이를 둔 오모(37)씨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는 있지만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이것도 하나의 냄비근성(?)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번 아동 성범죄가 부각되고 나니 여러 언론매체에서 너도 나도 아동 성범죄만 취재, 보도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오씨의 말마따나 예나 지금이나 아동 성범죄는 꾸준히 발생해왔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사건의 잔혹성이 심각해 언론에 집중포화를 받으면서 이슈화되자 타 언론매체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발굴(?) 취재하려는 움직임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언론에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보도하다보니 대한민국 남성들의 호의는 경계심으로 바뀌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신경이 예민해졌다. 실제 김수철 사건 이후 부모들은 아이를 직접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 과정에서 씁쓸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으면 어머니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경계한다는 것.


언론의 집중포화도 문제

나아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은 물론 각종 성폭력 범죄의 주범이 ‘아저씨’들이다보니 친근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경계의 대상이 돼버렸다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아저씨들은 괜한 오해를 받을까봐 어린이들이나 여학생들에게 작은 친절도 베풀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택시기사는 “여학생을 태우면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신 전화를 하고, 자신이 모르는 길로 가면 정색을 하며 맞게 가는 것이냐고 묻는다”면서 “오해를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지만 요즘 하도 험한 사건이 많아 이해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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