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9)손몽필 한미건업 대표

2015.06.22 11:41:30 호수 0호

미국인 명의로…수상한 부동산 매입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9화는 584억1100만원을 체납한 손몽필 한미건업 대표다.


지난 17일 오후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도심을 달궜다. 메르스의 여파에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골목은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시장 골목과 연결된 샛길로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한옥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인도 좌우로는 옛날식 가옥이 빽빽했다. 듬성듬성 큰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구는 낡고 초라했다. 한눈에도 평범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그곳엔 '회장님'이 있었다. 올해 나이 78살의 손몽필씨다.

이제는 서민?



손씨는 매년 고액체납자 명단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5년 언론에 첫 등장했을 당시 체납액수(국세)를 기준으로 전체 7위를 차지했다. 현재도 손씨는 국세청 명단에서 14위를 지키고 있다.

한미건업의 대표이사로 소개된 손씨는 1998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3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확인된 체납액은 398억2200만원이다. 2001년 3월까지가 납부기한이었지만 15년째 체납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손씨보다 체납액이 많은 체납자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그의 아들인 보근씨, 한근씨 또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이른바 '재계 거물'이다. 그런데 손씨는 무슨 이유인지 이들과 '세금 안내기'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손씨의 체납 사유로는 '한미산업개발㈜로부터 파생된 인정상여 자료 등 과세'가 명시됐다.

세법상 인정상여는 종합소득세와 관련 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회계장부상 10억원을 매출로 기재했고, 실제 매출액은 11억원인 경우 남은 1억원에 대해 대표자 명의로 세금을 물릴 수 있다. 실제 대표자가 1억원을 유용(또는 은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축소신고(또는 누락)의 책임을 물어 '상여금'을 썼다고 인정하자는 취지다.

한미산업개발㈜의 대표로 알려진 손씨는 부동산 개발로 챙긴 이익금을 사업 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됐다. 또 국세청이 그의 직장으로 적시한 한미건업과 한미산업개발㈜은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파악됐다. 이들 가운데 주력회사였던 한미건업은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 법인 명단에 등재돼 있다.


한미건업은 1996년부터 법인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52억2900만원이다. 납부기한은 2003년 2월이었지만 손씨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 손씨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올라있다. 1994년 7월부터 주민세 등 17건의 지방세를 내지 않았다. 체납액은 33억6000만원이다.

한미건업의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회사 설립일은 1984년 2월9일이다. 자본금은 7억원, 등록 주소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한 빌딩으로 나와 있다. 부동산의 매매 및 임대업, 주택 건설업을 사업 목적으로 신고한 한미건업은 1998년 3월 임원들이 줄사퇴하며 사실상 폐업수순을 밟았다. 상법에 따라 2006년 12월 해산됐고, 2009년 12월에는 청산종결됐다.

회사가 문 닫을 때까지 대표이사는 줄곧 손씨였다. 등기상 대표이사 자리에선 1998년 3월 물러났다. 한미건업은 이보다 앞선 1995년 여름부터 위기를 맞았다. 한미건업의 당좌거래 및 손씨 개인의 당좌거래 모두 같은 해 6월 정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무렵 손씨는 서울 서초구 소재 한 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회사 부도와 함께 손씨가 주택을 떠나자 해당 토지와 건물은 경매를 거쳐 A씨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서울시 33억6000만원
국세청 550억5100만원
사람 사는데 번번이 수취인불명

손씨의 새 거주지는 서울 서초구 방배2동의 다가구주택에 마련됐다. 해당 건물의 소유자는 강모씨였다. 등기상 강씨는 손씨와 같은 집에 살았다. 손씨 명의의 차명 재산이라면 압류가 가능했지만 강씨는 관련 소유권을 1980년부터 갖고 있었다. 즉 손씨는 이 기간 전세나 월세 형태로 자택에 거주한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손씨는 다시 한 번 거주지를 옮겼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있는 목조기와 주택이 손씨의 세 번째 주소지가 됐다. 하지만 종로 소재 부동산 역시 손씨 소유는 아니었다. 2002년 9월 김모(1961년생)씨는 전임 소유자 B씨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입자 김씨는 한미건업의 이사로 등기됐던 또 다른 김모(1960년생)씨와 혈연관계로 알려졌다.
 

또 정황상 김씨는 손씨와 친인척관계 내지는 그에 준하는 사이로 추정됐다. 만약 손씨(또는 아내)가 가옥의 실거주자라면 증여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직원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언급을 꺼렸다.

손씨 자택의 문을 두세 번 두드리자 그의 아내로 보이는 70대 노인이 문을 열었다. 그는 '손몽필씨를 만날 수 있겠느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다"라며 문을 닫았다. 이어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 계속 있으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방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만 들렸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문제의 부동산과 관련해 미국 국적을 가진 C씨(1958년생)의 존재가 흥미롭다. 재미동포인 C씨는 지난 2010년 10월20일 김씨로부터 해당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C씨는 한국인 김씨와 혈연관계로 의심됐다.

상식선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C씨가 시장 골목에 있는 허름한 기와집을 사야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김씨는 C씨로 소유권이 넘어간 시점인 2010년 12월15일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에 근저당을 설정했다. 채권 최고액은 2억1600만원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C씨는 종로구 저택을 점유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유권 행사마저 자신의 전임자에게 위임했다. 추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남 신안군 출신으로 알려진 손씨는 1990년대까지 재경 향우회에서 활동했다. 대학교수부터 판사까지 두루두루 어울렸다. 당시 향우회가 쓰던 서초동 사무실은 세입자가 없는 상태다. 손씨의 행방을 아는 이는 찾기 어려웠다. 손씨 앞으로 보내진 우편물은 모두 수취인불명으로 처리됐다.

과거 손씨는 비교적 명망 있는 사업가였다. 중소주택사업자협회에서 임원을 역임할 정도로 업계의 신임을 받았다. 본사는 서울이었지만 인천에서도 D빌딩 등에 진출해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영자로서 손씨는 실패했다. 그에게 남은 건 거액의 세금이다. 인천시 지자체는 건축물에 대한 재산세 명목으로 손씨에게 2100만원의 세금을 별도 부과했다. 손씨는 이 또한 내지 않고 있다.

곳곳에 체납

과세 당국은 "받을 방법이 없다"라며 사실상 손을 놓은 모습이다. 국세청은 단 한 차례도 체납자와 관련한 정보를 갱신하지 않았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조사관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나머지는 개인 신상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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