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물아비 신세 전락한 ‘대도’ 조세형

2010.05.18 10:00:00 호수 0호

생활고에 발목 잡힌 ‘대도’의 몰락


‘현대판 홍길동’이라 불렸던 대도(大盜) 조세형이 장물아비신세로 전락했다. 교도소 동기가 훔친 금품을 대신 팔아주고 수고비를 챙기다 덜미를 잡힌 것.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의 말년치고는 초라한 모습이다. 1970, 80년대 부유층의 집을 털어 일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 대도라는 별칭이 붙었던 인물이기에 씁쓸함은 더해가고 있다.


강도범이 훔친 귀금속 팔아주다 덜미 잡힌 왕년의 대도
새 인생의 희망 번번이 도벽에 발목 잡혀 초라한 말년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조세형(72). 그가 잡범으로 전락해 모습을 드러냈다. 70대의 노인이 되어 다시 한번 나타난 조세형은 장물알선 혐의로 철창 신세를 앞두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훔친 물건을 팔아주고 돈을 챙긴 조세형 등 3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장물알선 혐의로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초라한 말년에 씁쓸



경찰에 따르면 조세형은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방을 함께 쓴 노모(58)씨가 훔친 귀금속을 처분해주다 덜미를 잡혔다. 노씨를 포함한 4인조 강도는 지난해 4월15일 광주 남구 한 금은방에 침입해 현금과 보석 3억원 어치를 훔쳤다. 조세형은 노씨 등이 훔친 귀금속 가운데 1000여 돈(시가 1억1000만원)을 서울 종로구 귀금속 상가에 팔아주고 수고비 1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조세형이 장물아비를 자처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경찰에서 그는 “내연녀와 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궁핍한 생활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찰에 붙잡힐 당시에도 조세형은 내연녀와 함께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은신처에 살고 있었다. 조세형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다리미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

70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는 것이 경찰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초라하게 등장한 조세형의 말로는 많은 이들에게 씁쓸함을 전해주고 있다. 절도범일 뿐인 그에게 대도라는 별칭이 붙은 데는 그의 활약상이 사회에 남긴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세형은 1963년 특수절도 혐의로 전과자 신세가 된 이후 70년대까지 절도혐의로 10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한 절도범에 지나지 않았던 조세형은 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찰에 검거된 82년까지 조세형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저택을 찾아다니며 수십억원 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다. 피해자 중에는 전직 경제부 총리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그가 고관대작의 집에서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또 절도 피해자이면서도 피해 사실을 극구 숨기려드는 권력층들의 행태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세형이 또 한번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탈주사건이다. 83년 4월 절도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조세형은 서울형사지법에서 결심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채운 채로 환풍기를 뜯고 탈주를 했다. 이 같은 대담한 탈주행각은 당시 권력층의 부정부패에 신물이 났던 국민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줬다.

탈주 후에도 조세형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국에 지명 수배가 내려진 지 5일 만에 경찰관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혀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았다. 98년 11월 청송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한 조세형은 기독교에 귀의해 독실한 종교생활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16살 연하의 아내를 맞아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99년에는 한 경비업체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범죄예방 전문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조세형은 ‘범죄예방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면서 범죄자의 이미지를 지우려 노력했다. 종로에 선교회를 열고 대학에서 범죄관련 특강을 하는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하지만 몸에 밴 도벽은 끊을 수 없었다. 2001년 11월 일본 선교를 위해 일본에 간 조세형은 도쿄의 부촌을 돌며 라디오와 손목시계 등 13만 엔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당시 그는 출동한 일본 경찰관이 쏜 총에 맞고 체포돼 3년6개월 동안 일본 고부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처럼 일본에서까지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던 조세형은 2004년 3월 극비리에 귀국해 두문불출했다. 그랬던 그는 또 다시 절도행각으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200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단독주택에 침입해 165만원어치의 손목시계 6개를 훔치려다 사설경비업체의 전자감식장치에 걸렸다.

번번이 발동한 ‘도벽’

당시 조씨는 옆집 담을 넘으며 달아났으나 경찰이 쏜 가스총에 맞아 덜미를 잡혔다. 검거 직후 40대 노숙자 ‘박성규’라고 거짓 진술한 조세형은 경찰의 지문감식과 잇따른 추궁에 결국 신분을 밝히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벌였다. 이 범행으로 경찰서에 온 조세형은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급주택을 털 계획을 짰다고 진술했다.

가정불화와 반복되는 사업실패는 결국 그를 좀도둑으로 돌이켜 놓은 것이었다. 이 범행으로 조세형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총 21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 후 종적을 감췄던 조세형은 이번 장물아비사건으로 대도란 이름에 또 한번 먹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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