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묘’도굴범의 기막힌 인생 스토리

2010.04.27 09:13:36 호수 0호

회장님만 상대한 간 큰 도둑 “먼 길 떠났다”

재벌그룹 일가의 묘를 파헤쳐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도굴범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포항교도소는 최근 태광그룹 창업주의 묘를 도굴해 유골을 훔치고 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체포된 A씨가 수감 중 목을 매 숨졌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0여 년간 재벌가의 묘만을 노려 도굴을 일삼아 범행 때마다 재계를 긴장시켰던 인물이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그의 세 차례 범행은 금세 꼬리가 잡혔고 A씨는 어김없이 교도소로 향했다. 교도소 수감과 출소를 반복했던 그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를 따라가 봤다.


태광그룹 창업주 묘 도굴범 교도소서 자살
롯데·한화 가족묘지 도굴…10년간 세 차례



A(49)씨가 처음 경찰서에 드나든 것은 1979년, 당시 17살 때였다. 어린 시절 절도와 횡령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던 그는 1983년 대구에서 특수강도 행각을 벌이다 검거되는 등 이후 10여차례에 걸쳐 수감과 출소를 반복했다.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A씨는 1992년엔 특수절도 혐의로 검거,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출소만하면 “땅 팠다”

1994년 출소한 그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전에서 다방을 운영하다 이후엔 야채 중간도매상으로 전업했다. 하지만 사업은 성과 없이 수천만원의 빚만 남겼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는 다시 범죄를 도모했다. 이번에는 재벌가의 묘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A씨는 당시 서점에 판매 중이던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신격호의 비밀’이란 책을 통해 신 회장 부친의 묘소 위치를 확인했다.

1999년 3월 초,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충골산에 위치한 신 회장 부친의 묘소를 도굴한 A씨는 유골의 일부를 가져간 뒤 회장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유골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8억원을 요구했다. A씨가 재벌그룹 전문 도굴범으로 이름을 날린 첫 사건인 것이다. 당시 그의 범행은 회사측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에 덜미가 잡혀 단 4일 만에 끝났다. 이후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그는 2003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출소했다.

출소 후 A씨는 다시 재벌가의 도굴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조부모 묘소였다. 2004년 10월, A씨는 김 회장의 조부모 묘를 파헤치고 두개골과 팔, 엉덩이 뼈 등을 빼돌린 뒤 회사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A씨는 김 회장이 출장 중인 관계로 특정 금액을 요구하지는 못했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또 다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지난해 11월 출소한 그는 이번에는 좀 더 치밀하게 도굴 계획을 세웠다. 수감 중 풍수지리학을 공부했던 그는 출소 후 국내 30여 개 대기업의 가족사를 연구, 일일이 사전 답사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수차례의 사전 답사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장소는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이었다. 이곳엔 고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자의 묘지가 들어서있다. A씨는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태광그룹 창업자의 묘지가 도굴범행에 이로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1월26일 오후 7시~9시경 공범 4명과 함께 묘를 파헤쳐 유골의 머리 부분을 훔쳤다. 그는 다음 날 오전 태광그룹 본사로 전화를 걸어 유골을 훔친 사실을 알리고 이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했다. A씨는 자신이 과거 재벌가의 묘를 도굴한 주인공인 점을 밝히는가 하면 용건만 말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등 치밀하고 대범했다.

하지만 그의 범행은 금세 꼬리가 잡혔다. 태광그룹 관계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A씨의 렌터카와 휴대전화, CCTV 등을 추적해 28일 오후 2시경 대전시 동구에서 그를 검거했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이번 범행을 결심한 동기에 대해 생활고 때문이라고 밝혔다. 출소 직전 부인이 숨지고 어린 나이의 자녀 2명이 힘들게 생활하자 생활비 구하기조차 어려웠던 그가 돈 때문에 다시 범행을 계획한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미 두 차례의 도굴 혐의로 10여 년이란 긴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냈던 A씨는 결국 출소 2개월 만에 다시 교도소로 향했다. 일명 ‘재벌그룹 전문 도굴범’이었던 A씨의 등장은 때마다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특히 재계는 그의 범죄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회장 일가 묘지를 지키기 위해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범죄는 이제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게 됐다.

기업 가족사 꿰 뚫어

지난달 19일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A씨가 교도소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 후 포항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A씨는 이 날 새벽 1시5분경 교도소 내 의료사동 화장실에서 목을 매 의식을 잃은 채로 교도관에 의해 발견됐다.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A씨는 오전 11시10분경 끝내 숨을 거뒀다.

A씨는 5일 전 쯤 배가 아프다고 호소, 교도소 내 의료사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발견 당시 A씨는 자신의 옷으로 만든 끈으로 창살에 매달려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교도소측은 현재 정확한 자살 경위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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