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11살 때부터 기술 배운 시계수리 장인 김동선

2014.10.06 12:19:32 호수 0호

“50년간 시계골목 지켰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태엽구동으로 이뤄지는 오토매틱에 비해 오차가 적고 저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시계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다. 배터리 하나에 시계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면 오토매틱 시계는 관리만 잘해주면 백년도 멀쩡하다. 시계 잘 고치기로 소문난 장인 김동선씨에게 시계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0년대 청계천변 상인들이 종로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종로 ‘시계골목’은 70∼80년대 전성기를 맞았지만, 90대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의 등장과 함께 명품예물시계 상권이 백화점으로 옮기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 시계골목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시계수리장이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49년 경력 달인
 
시계골목의 전성기는 지났지만 수십 년 노하우가 쌓인 장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빛나고 있다. 종로에서 소문난 경민사 시계수리장이 김동선(60)씨가 대표적이다. 그의 주특기는 ‘분해수리’ 흔히 ‘오버홀’이라고 부른다. 오토매틱 시계 무브먼트 전체를 분해한 뒤 작은 조각 하나하나를 청소하고 뻑뻑한 부분에 오일을 칠한다. 마모된 부분은 새 부품으로 교체해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이렇게 멈춘 무브먼트는 그의 손을 거쳐 다시 되살아난다. 3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다.
 
김씨는 11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대구 대신동에서 수년간 시계수리기술을 연마한 뒤 종로에 터를 잡았다. 12월17일이면 시계수리경력 49년째다. 청춘을 시계에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업실은 3평 남짓한 아담한 규모지만 그 의미는 공간을 초월한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대못 하나 던져주곤 부품도 만들고 수리도 하라고 했어요. 지금보다 힘들었죠. 그래도 어디 가서 ‘시계기술자’라고 하면 알아줬어요. 동경의 대상이었죠. 먹고 살기 어려울 때라 장점이 많았어요.”
 

김씨는 생계를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지만 후회는 없다. 시계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실력은 작업량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루에 20∼30개의 시계가 수리를 기다린다. 굳이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아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입소문을 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평 남짓한 공간서 닦고 조이고
입소문 타고 하루 20∼30개 뚝딱
 
“인터넷은 할 줄도 몰라요. 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 거 안 해도 올 손님은 다 찾아와요. 전화기만 있으면 충분하죠. 제주도에서 시계를 보내는 손님도 있고, 심지어 호주에서도 시계를 보내요. 요즘에는 택배가 잘 돼 있으니까요.”
 
사실 오버홀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명품시계의 경우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A/S가 가능하다. 오버홀 한 번에 수십만원은 기본이다. 그러나 시계를 좀 아는 사람은 굳이 명품매장을 찾지 않는다. 진짜 장인들이 있는 종로 시계골목으로 향한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갑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버홀에 특정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그때그때 다른 견적비용을 제시한다.
 
“A/S는 사후관리를 뜻하는데 너무 큰 금액을 요구하면 안 되죠. 오버홀 가격에 기준은 없어요. 받고 싶은 대로 받는 거죠. 명품시계 구분 없이 5만원 받을 때도 있고, 10만원 받을 때도 있고, 손님에 따라서는 안 받을 때도 있어요.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네요.” 
 
김씨의 작업량 자체만 보면 수입이 꽤 될 것 같지만 조금 손봐서 될 정도면 수리를 해주고도 돈을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 고수입은 먼 이야기란다. 김씨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시계의 생명이다. 아픈 시계를 치료할 때 진정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시계에도 심장이 있어요. 인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말은 못하지만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알 수 있고요. 뜯지 않고 만져만 봐도 증상이 느껴져요. 의사가 사람생명 살리듯, 시계기술자는 시계의 생명을 살려요. 돈보다 중요한 게 생명이잖아요. 그저 시계를 고치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에요.”

소문난 수리공
 
인터뷰 내내 숨죽이며 명품시계 오버홀 작업에 매진하던 김씨는 작업을 완료한 뒤 시계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따다닥 따다닥’ 규칙적으로 끊기는 기계음이 퍼지는 한 기계에 시계를 올려놓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계 초음파라고 보면 되요. 오버홀이 제대로 됐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거죠. 이걸 거쳐야 시계수리작업이 끝나요.”
 
그런데 한국 시계기술자 맥이 끊기게 생겼다. 김씨는 “시계기술자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다”며 시계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김씨에게 시계를 맡기는 건 어쩌면 영광일지도 모른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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