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수십명 성추행한 명문대 남학생 행각

2010.02.02 09:48:40 호수 0호

“선배니까 괜찮아”… 새내기(여대생)들 줄줄이 ‘피해자’

해마다 이맘때면 대부분의 대학교에선 예비대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마련된다. 신입생 환영회나 오리엔테이션이 그것. 선배와 후배 간 친목을 도모하고 입학 전 대학생활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명목의 행사에서는 각종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신입생에게 술을 억지로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거나 학교 전통을 앞세워 구타를 일삼는 등의 행각이다. 최근엔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열린 신입생 환영회에서 여학생 20여 명이 한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한 명문대 대학생, 선후배 모임에서 입학생 수십명 성추행
한 여학생의 폭로로 나머지 20여 명 피해 여학생 추가폭로  


지난달 23일 밤, 서울 소재 한 대학교 인터넷사이트에 익명의 네티즌이 쓴 글 하나가 올라왔다. ‘용기 있는 10학번의 글’이란 제목의 이 글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아직 정식 입학하지 않은 10학번 여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온 국민이 명문대라 칭하는 OO대에 정말 실망입니다”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최근 선배들과 입학생들의 비공식모임에 참석했다는 이 여학생은 술에 취한 자신을 상대로 선배 A씨가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선배라서 믿었는데…”
만취 여학생 상대 몹쓸짓



글에서 여학생은 “술에 많이 취해서 바람을 쐬고 있는 나에게 한 선배분이 다가오셨는데 뽀뽀를 하고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서슴없이 행했다”며 “이런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을 처음 겪은 나로서는 그저 멍할 수밖에 없었다. 술에 많이 취해있었기 때문에 뿌리쳐내도 남자 선배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고 작정하고 달려든 사람을 무슨 힘으로 이기겠는가”라고 말했다.

여학생은 이어 “내가 만약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인사불성된 뒤 성추행을 당했다면 물론 내 잘못이지만 여긴 10학번과 선배의 교류를 위한 정식모임이었고 나는 이제 곧 입학할 학생으로 선배님들을 믿고 참여한 자리였다”며 “그런 자리에서 선배라는 직위로 이런 행위를 저지른 그분 잘못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처럼 남자 선배가 입학도 하기 전인 후배를 상대로 파렴치한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의 글은 사이트 곳곳에 일파만파 번졌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학생이 저지른 성추행이란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같은 대학의 또 다른 여자 신입생들도 해당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 무려 20여 명의 여학생들이 너도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댓글을 달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학생들은 “멀티방에서 스킨십이 점점 심해지길래 하지 말라고 했더니 ‘너도 즐기면서 왜’라고 했다” “술을 마시면 어깨동무하고 키스를 한다. 스킨십이 심하다” “집에 데려다준다고 하고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졌다” “남자화장실 입구 앞에서 많이 취했냐며 뒤에서 껴안았다”는 등의 내용을 댓글에 달았다.

이 같은 여학생들의 폭로는 사이트에서 사이트로 급속히 번졌다. 해당 대학교 게시판은 방문자들의 폭주로 마비가 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비난도 거셌다. 이들은 선배라는 지위를 내세워 20살도 되지 않은 여학생들을 농락한 남학생의 행각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남학생 A씨를 향한 분노는 곧 신상정보 공개로 이어졌다. A씨의 이름과 전공, 사진까지 온갖 신상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것. 미니홈피 역시 공개돼 수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A씨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대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A씨는 사과문을 통해 “작은 스킨십부터 시작해서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행해진 모든 제 행실이 정말 원망스럽고 죄송스럽습니다”라며 “저로 인해 받게 되신 정신적인 충격에 대해 제가 어찌 감히 용서를 구하겠느냐마는 염치없이 사죄의 말씀을 올려봅니다”라고 말했다.

선배란 이름의 가해자들
가혹행위들은 비일비재

이어 A씨는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와 자숙의 의미로 최소한 2년 이상을 휴학하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과문을 본 네티즌들은 “2년 이상 휴학하겠다는 건 군대 다녀오겠다는 것 아닌가. 어차피 갈 군대 가는 걸로 면피하려 하지 말아라” “복학해서 또 그럴지도 모르는데 퇴학을 시켜야 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을 했으면 명백한 청소년법 위반행위인데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학교 측도 진상조사에 나섰다. 먼저 해당학교 총여학생회는 지난달 24일 “사건을 접하고 사건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앞으로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처리해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지난달 27일에는 학교 측의 입장도 밝혀졌다. 관계자는 “학생처가 진상 조사를 시작했으며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대로 교수들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한 남학생의 성추행 사건은 파장을 낳으며 인터넷을 달궜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이 이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해마다 1월에서 3월 사이 벌어지는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불미스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이번 사건이 보여준 ‘성(性)’과 관련된 사건이다. 대부분 술에 약한 여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들이다.

현재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B(22·여)씨도 3년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선배, 동기와 함께 강원도의 한 펜션으로 떠난 MT에서 B씨는 내내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시작은 술자리에서부터였다. 몇몇 짓궂은 남자 선배들이 짙은 성적 농담을 했던 것. 이어진 게임에선 고의적인 신체 접촉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배 하나가 B씨에게 고의로 술을 먹이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고교시절 ‘100일주’로 맥주 한 캔을 마신 이후 처음 술을 접해 술이 약했던 B씨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폭탄주를 마셔야만 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B씨는 선배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전 억지로 술을 먹였던 선배가 따라 나와 B씨의 어깨를 감싸며 “많이 취했느냐”고 물으며 스킨십을 시도했다.

권위의식 앞세운 선배들의  행각에 대학생활 출발  새내기들 눈물바람  
성희롱, 폭음, 폭행 등 신입생 환영회에서 일어나는 문제 도마 위로


술에 취해 기운이 없는데다 선배의 손길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B씨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술이 오른 선배가 방으로 들어가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는 B씨. 그녀는 “당시에는 성추행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요즘 일어난 사건을 보니 나도 피해자였다는 걸 알았다”며 “다른 친구들도 신입생 환영회 당시 남자 선배로부터 당한 불쾌한 기억은 하나씩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문제는 선배가 후배에게 폭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전통처럼 이어져온 이 술 문화는 여전히 많은 대학교에 고질병으로 남아있다. 특히 선배와 후배가 처음 만나는 환영회 자리에서는 강제로 술을 먹이는 일이 더욱 잦다. 이때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처음 술을 접해 자신의 주량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매해 학기 초만 되면 과음으로 사망한 대학교 새내기의 사고사건이 일어나곤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대학생 두 명이 잇달아 숨져 충격을 줬다. 지난해 3월4일 강원 강릉시에 있는 모 대학 기숙사 앞에서 신입생 박모(당시 19세)군이 피를 흘린 채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박군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마신 뒤 기숙사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있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2월28일에는 강원도 한 콘도에서 신입생 환영회 행사에 참석한 인천 모 대학 신입생이 밤새 술을 마신 뒤 실족사 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처럼 신입생들이 잇달아 술로 인해 목숨을 잃자 정부차원에서 대학 내 음주사고 예방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전국 348개 대학 총학생회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학내 음주사고 예방을 위한 활동을 벌여줄 것을 당부했다.

전 장관은 서한에서 “신입생 환영회, MT, 축제 등에서 폭음과 그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반복됨에도 이를 억눌린 것을 푸는 자유, 젊음, 필연적 통과의례로 당연시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대학생의 음주 폐해는 희생자나 일부 문제 음주 학생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총학생회가 앞장서서 건전한 음주 문화가 정착되는 데 선구자 역할을 맡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도 억지로 술을 먹이는 풍토는 많은 대학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학생 정모(23)씨는 “요즘은 직장에서도 부하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는 분위기는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대학 안에서만큼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며 “사실 나조차도 술자리에선 후배들에게 술을 강요하는 버릇이 남아있어 각성하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문제는 폭행이다. 아직도 일부 대학교에선 신입생의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신입생들을 상대로 기합을 주거나 구타를 일삼고 있다. 일부 체육대 등에만 국한된 문제인 줄 알았던 선배들의 폭행은 알려진 것보다 많은 학과에서 은밀히 일어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음주사고에
나라까지 나선 대학 음주

이처럼 성범죄와 폭음, 폭행에 신음하는 신입생 환영회는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과 우려를 받고 있다. 한 대학생은 “신입생을 상대로 한 가혹행위의 대부분은 자신이 선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권위의식에서 비롯된다”며 “그런 일을 당한 학생이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더욱 가혹할 수 있어 고질적인 대학교의 그릇된 문화는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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