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브로커 4인이 털어놓은 ‘검은 세계’

2010.01.12 09:19:36 호수 0호

“똑똑하다 자만하는 자가 좋은 먹잇감이었다”



부동산 브로커“소위 이빨 잘 들어가는 상대 만나면 덥썩”
경매 브로커 “먹잇감을 찍으면 진드기처럼 달라붙었다”

경인년 새해벽두부터 ‘검은 브로커’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법원경매시장을 필두로 대출브로커, 정치브로커 등 각종 브로커들이 새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분위기다. 문제는 브로커들이 만드는 각종 폐해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장이 어지럽게 얽히는가 하면 온갖 게이트로 비화돼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브로커들의 활동에는 권력과 돈, 성(性)이 결합돼 겉잡을 수 없는 사회적 파장으로 비화되기 일쑤다. <일요시사>에선 전직 검은 브로커들을 만나 그들만의 세계를 엿봤다.



“부동산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는 기본이다. 법률적인 지식도 섭렵하고 있다. 경제 전반에 대해선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상식은 필수다. 이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조직을 갖추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 브로커들이다. 때로는 투기를 조장하기도 하고 개발 시나리오도 만들어내면서 시장을 교란시킨 뒤 이익을 챙기는 수법이 기본이다.”

2009년 12월28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A(44)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부동산브로커로서 그의 경력은 14년. 그는 14년 동안 겪었던 온갖 산전수전을 천천히 떠올렸다. 계획했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때는 천하를 얻은 듯했지만 일이 꼬여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을 땐 세상을 버리고도 싶었단다.

대출금 알선 해주고
대출금의 1~3% 꿀꺽

“사실 부동산시장만큼 수많은 브로커들이 설치는 곳도 드물다. 면밀히 따지면 각자 전공분야는 따로 있다. 대출브로커, 인허가브로커, 물건브로커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세 분야 모두 뛰었지만 전공은 대출이었다.”

A씨가 말하는 그들만의 수법은 기상천외했다. 대출브로커의 경우 사냥 상대는 개인이나 시행사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개발금융제도가 아직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출브로커를 통한 사업부지 매입자금이나 개발비용의 조달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허점을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개인이나 기업이 보유한 땅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알선해주고 대출금의 1∼3%를 커미션으로 챙겼다. 개인 땅은 규모가 적어 발품 값밖에 되지 않지만 기업 땅의 경우 규모가 큰 만큼 이익금도 많았다. 예컨대 100억원짜리 땅을 성사시키고 3%만 받아도 3억원이 수중에 떨어지는 식이다.”

A씨는 한때 사업부지 일부를 매입해주겠다고 말하며 관련 공부서류를 제시하고 표적이 될 만한 사람들을 물색하고 다니기도 했다. 일명 ‘물건브로커’로 활동했던 것.

“물건브로커는 가만히 살펴보면 특징이 있다. 관련 서류와 함께 그럴듯한 사업수지분석 등과 같은 자료를 제시하며 먹잇감을 사냥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다 허점이 많은 매수희망자를 만나면 가계약을 치르자며 가계약금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다. 한때는 시행사·시공사·부동산 신탁회사 등만 만나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지주와 매수희망자 사이에 거래를 성사시키고 매매 당사자들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다.

“우리는 대부분 관련 공무원과 손이 닿아 있다. 물건브로커로 활동할 때는 부동산 디벨로퍼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들은 좋은 땅을 먼저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와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간혹 아주 좋은 물건이 굴러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노다지를 캔 결과를 얻기도 했다.”

A씨는 의외로 인허가브로커로 활동할 때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시간도 많이 투자하고 발품도 많이 팔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특정 부지를 매입해주겠다고 접근해 업무 추진비를 챙기거나 소개료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수입은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같은 날 저녁 7시. 전직 경매대출브로커 출신 B(50)씨를 서울 영등포에서 만났다. 16년간 브로커로 활동했다는 B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세파에 잔뜩 찌든 모습이었다.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말문을 연 그는 경매브로커의 세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경매브로커를 시작한 것은 경매입찰에 실패하고 난 뒤였다. 그때 입찰장 주변에서 한 대출브로커 선배를 만나 그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후 경매가 있는 날이면 미리 입찰장 주변에서 경매지도 팔고 명함도 돌리면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B씨가 돌린 명함에는 몇몇 시중은행 로고와 함께 ‘최적의 대출조건을 찾아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찍혀있었다고 한다. 명함 뒤쪽에는 ‘연 금리 6%대로 낙찰가의 70~90% 대출’ 등의 내용도 잊지 않고 적어뒀다고.

“시기마다 다르지만 제1금융권은 낙찰가의 50%까지, 캐피탈 같은 곳은 80%까지 대출해준다. 문제는 고객확보다. 낙찰자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법정을 빠져나오는 순간 달라붙어 명함도 주고 감언이설로 설득했다. 낙찰자 손에 가득한 명함들을 보면 승부욕이 불타곤 했다. 그럴 땐 집요하게 전화번호를 캐묻기도 하고 심할 때는 낙찰자가 법원 건물을 나갈 때까지 따라 붙었다.”


경매대출브로커의 목적은 오로지 커미션이다. 이들은 대출자가 대출금을 갚느냐 못 갚느냐 여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물건을 다시 경매로 내놓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았을 때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닥쳤을 때다. 입찰자가 없는 날이 많아질수록 우리도 허탕을 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여파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어쩌다 생기는 수입도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때 많은 동료들이 손을 떼기도 했다.”

B씨는 동료들의 충격적인 수법도 공개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예고등기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낙찰가를 조작하는 수법. 하지만 이 수법은 경매 집행에 따른 근저당 설정권자 등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양심상 자신은 참여한 적이 없다고.

“경매를 부칠 때 경매물건에 대해 소유권보존등기말소청구소송 등을 제기, 법원이 부동산에 대해 다툼이 있다는 내용을 등기부상에 표시토록 하는 예고등기제도가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수법이다. 예컨대 예고등기 후에는 은행 대출이 제한되고 유찰이 반복된다. 이때 경매가가 계속 내려가게 한 후 저가에 물건을 낙찰 받는 것이다.”

그가 이 수법을 피한 이유는 범법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수법은 낙찰가를 조작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브로커는 이때 1차적으로 감정가의 5%를 챙긴다고.

그러다가 최저가까지 떨어지면 직접 낙찰을 받은 후 되팔아 수익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낙찰가를 조작할 경우 그 피해는 건물에 대한 1순위 근저당 설정권자보다 2, 3순위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알선 수수료 5% 챙기고
조작으로 거저 낙찰받고

B씨는 “경매브로커들 중에는 낙찰금액에 비례한 보수 액수 때문에 경매의뢰인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나도 낙찰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적정한 가격을 초과하는 무리한 낙찰을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입찰자들은 정확한 분석으로 입찰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고 조언했다.

다음 날인 29일 오전 11시. 서울 방배동 한 카페에서 작전브로커로 10년간 활동했던 C(41)씨를 만났다. 숨을 돌린 그는 기자에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속아 넘어간다”고 귀띔했다.


“브로커에도 전공이 있다. 내 담당은 주포였다. 주포는 작전 시나리오의 총괄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멤버는 5명을 넘기지 않는 상태에서 구성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다른 조직이나 눈치 빠른 기관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면 무조건 실패다. 같은 조직의 누군가가 배신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C씨가 말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5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1단계는 소리 소문 없이 매집하는 과정이다. 이때는 투자자금(총알)의 30%를 사들인다고 한다. 2단계 역시 매집단계다. 하지만 방식이 다르다. 투자자금의 30%를 추가적으로 매수하는데 이때는 정보를 본격적으로 유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총알의 60%를 매집했으면 준비단계는 마쳤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주가를 띄우는 것이다. 물량을 서로 넘겨받으면서 주가를 부양시킨다. 이때 자금은 남아있는 투자자금 40%를 모두 활용한다.”

주가가 급상승하면 개미(일반투자자)들이 따라 붙는데 이때가 매도시기라고 한다. 분할매도를 하다가(4단계) 개미들이 모두 몰렸다고 판단하는 순간 대량거래를 일으키며 남아있던 물량 모두를 내던진다(5단계). 이것을 은어로 ‘설거지’라고 한다고.

C씨는 피 말리는 긴장감이 작전을 수행하며 겪는 가장 큰 고충이라고 털어놨다. 잠깐 하는 사이 ‘삐끗’해 실패해버리면 엄청난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완벽한 시나리오를 진행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다.

“브로커에도
전공이 있다”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은 자금 확보. 그는 자금을 서울 명동에서 확보했다고 말했다. 명동의 사채자금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연 이자가 50%에 달하는데다 3개월 내에 갚지 못하면 투자금의 배 가까이를 물어줘야 하지만 많은 돈을 빠르게 빌리는 데는 명동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작전세력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명동이라고 한다. 이때 주식계좌의 명의는 사채권자들이 갖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다.

“관건은 주가를 어떻게 띄우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론을 최대한 활용했다. 언론을 제대로 타기만 하면 단기간에 주가를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파는 시점과 수요 조절이 작전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기 때문에 언론몰이는 자주 쓰는 수법 중 하나였다.”

이 밖에도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한다. 필요하면 주가 부양 시 기업 경영진을 포섭하거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를 끌어들이기도 한다고. 경우에 따라선 증권사 직원과 짜고 주식을 띄운 후 시세차익을 분배했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예인이나 재벌 2세를 얼굴마담으로 동원하기도 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작전브로커 “시나리오 5단계로 구성, 개미 몰리면 털어”
정치브로커 “청탁자와 정치인 오가며 부당이익 챙겼다”

하지만 C씨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인 과거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개운치 않단다. C씨는 “몇 번의 작전으로 주머니 돈을 챙기긴 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 개인 투자자들의 귀에 들어가는 작전에 대한 정보는 뜬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작전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거나 정보를 얻었을 땐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물량을 털어내는 단계나 실패한 작전주이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지난 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에서 전직 정치브로커 D(55)씨를 만났다. D씨는 지난 20년간 정치판에 뛰어들어 각종 부정한 검은돈을 실어 날랐다고 털어놨다.

“내가 하는 일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각종 청탁과 민원을 하려는 사람들과 정치인사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정한 검은돈이 오가게 만들고 커미션을 챙기는 것이 정치브로커들의 일이다.”

D씨는 커넥션이나 거래의 한가운데서 불법행위들이 소리없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정치브로커들이라고 설명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게이트에 브로커들이 항상 등장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한다.

D씨는 브로커 생활을 하면서 권력과 성을 연결해주는 일도 수없이 해왔다고 고백했다. 권력자에게는 정치판에 편입되길 원하는 사람이나 여자를 연결시켜주고 중간에서 부당이득을 챙기는 방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폰서를 찾아주고 커미션을 얻을 때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브로커들에게 정치판은 매력적인 시장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돈과 권력이 상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돈 냄새가 난다면 어디든 개입해 비리를 저지르고 불법을 자행하는 게 정치브로커란 지적이다.

“돈과 권력 상생하는 정치판
우리들에게는 매력적 시장”

그는 인허가브로커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는 공무원에게 부탁해 아파트단지 건설사업 승인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면서 금품을 받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때 대가로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이 넘는 거금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대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모한 공무원 등을 통해 현금을 받게 하고 이를 분배해 또 다른 부당이익을 챙기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억원 이상의 이익을 가로채기도 했다고. 

D씨는 “20년간 생활해보니까 우리나라 정치를 퇴보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게 나 같은 정치브로커란 것을 깨달았다. 공천장이나 선거 등 안 다녀본 곳이 없지만 지금은 후회가 된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최근 추세를 보면 전문직 종사자들의 범죄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이들 집단의 범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통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방지 차원에서 보다 엄격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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