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사법개혁 아이콘' 정의당 서기호 의원

2014.04.14 11:32:30 호수 0호

"황제노역, 국민뿐 아니라 판사 눈높이에도 맞지 않아"

[일요시사=정치팀] '법 앞에 만인 평등'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원칙이다.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불신의 싹만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수준은 어떨까. 범죄 혐의자의 지위고하에 따라 천차만별의 수사와 판결이 여전하고, 언론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마디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일당 5억원 황제노역 판결, 검찰·국정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수사 등을 보면 공정해야 할 법의 잣대가 기울어진 채 적용되고 있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현 사법부에 대한 조롱이자 슬픈 현실의 반영이다.

"60년간 안 바뀐 노역제도, 시대 변한만큼 개선해야"

이런 상황에서 판사 출신의 서기호 의원은 최근 법조계 현장을 분주하게 누비며 산적한 현안들과 조율이 필요한 법조계 갈등을 직접 듣고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또 다른 황제노역 방지를 위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19대 국회 '사법개혁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의당 서기호 의원을 만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부 행태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봤다.
다음은 서 의원과의 일문일답.

- 허재호 전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에 대해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 국민의 눈높이뿐만 아니라 판사의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판결이다.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배울 때(1998년) 벌금 2000만원 미만은 노역 1일에 2만원, 그 이상 벌금은 벌금액의 1000분의 1로 노역금액을 정해야 한다고 배웠다.


실제로 법에는 판사의 재량을 무한하게 허용하지만 이렇게 하면 허재호씨 사례처럼 사회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어 연수원에서 나름의 기준을 잡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식을 가진 국민도, 판사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 또 다른 황제노역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난 1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내용과 취지를 간략히 설명한다면.
▲ 허재호 황제노역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현행법상 노역 일당 환산액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역 일당의 상한선을 정하고, 최장 노역기간인 3년 초과부분에 대해선 벌금 납부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상한선으로 일단 100만원을 정했는데, 이 기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조율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노역일수를 초과한 벌금에 대해선 반드시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

- 노역제도는 벌금 납부 능력이 없는 이들이 몸으로 때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인데, 노역 3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벌금을 내게 한다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 노역제도는 지난 1953년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법이다. 당시에는 고액벌금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의 벌금 탕감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 사정이 많이 바뀌었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는 죄질이 중한 고액 벌금자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

-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판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해법으로 '지역법관'을 점차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법관 인사의 구조적 특성상 여전히 지방에서 오래 일하는 판사는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향판과 지역법관의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 지역법관은 2004년에 도입됐고, 그 이전에 일정한 지역에서만 근무했던 재판관을 향판이라고 한다. 즉 지역법관의 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판의 폐지가 본질이다. 법원 행정처가 의도적으로 향판의 부작용을 희석시키고 있다.

또 이 사건은 학연, 지연으로 얽힌 지역 토호와의 유착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출신지역에서 법관으로 오래 근무할 수 없도록 하는 상피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특검 도입 필요"
"국정원 불법수사 눈감은 검찰, 역할 포기한 것"

- 국정원·검찰의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씨)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이 사회·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 탈북자들에 대한 국정원 합동심문센터 수사과정의 문제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이미 있어왔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유우성씨가 서울시 공무원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유씨가 1심에서 간첩으로 판결이 났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책임론으로도 이어졌을 것이다.

최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간첩 조작사건이 아니라 간첩혐의 사건"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법무부 장관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깨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확인, 검찰 수사 등에서 드러난 바대로 이 사건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다.

- 검찰 수사에서도 이미 확인된 만큼 누군가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검찰은 단순한 문서위조로 몰아가고 있다.
▲ 간첩 증거조작이라는 본질을 숨기려는 의도다.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검찰에게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최소화하려는 것인데, 국가보안법상 무고 및 날조 혐의를 적용할 경우 이들에게는 똑같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적용된다. 이것은 국정원·검찰뿐 아니라 청와대도 원치 않는 결과이기 때문에 모해증거위조와 인멸, 사문서위조 등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 사안의 중대함에 비해 기소된 인사는 국정원 직원 1명과 협력자 1명 등 2명뿐이다.
▲ 윗선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됐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보도만 보더라도 국정원의 증거조작은 실무진 위로 보고서가 올라갔다. 또 협력자와 돈이 오간 것도 윗선의 결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첫 간첩 사건이라는 점에서 남재준 국정원장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몰랐다'고만 하는데 공식 경로가 아니라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 입수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정에서는 외교라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입수한 문건이라고 7차례 이상 주장을 했다. 검찰이 재판부를 속인 것이다. 검찰이 자기 식구인 검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검사의 도입이 필요하다.

- 유우성씨 사건에 대해 덧붙일 말이 있다면.
▲ 검찰과 국정원의 관계를 이번 기회에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검찰 공안부 검사들은 국정원의 불법적인 수사에 대해서 눈감아 왔다. 수사 협조자라는 이유로 국정원의 위법행위를 눈감아 왔는데, 이는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자기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19대 국회가 어느덧 절반가량 지났다. 그간의 의정활동에 대한 소감과 향후 활동계획이 궁금하다.
▲ 국회의원이 된 이후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고 합리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판사 출신의 전문성을 살려 사법제도 개혁에 앞장서기 위해 노력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전문성을 살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인 사법제도 개선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개선방안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난 3월 법정녹음 의무화를 집중적으로 요구했는데, 법원 행정처도 받아들이는 등 가시적 성과도 있었다. 나아가 신청이 있을 경우 영상녹화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조만간 발의 할 예정이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서기호 의원 프로필>

▲ 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 제주지방법원 판사
▲ 전국 가톨릭 대학생 협의회 회장
▲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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