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로또에 당첨된 황모씨. 외제차를 타고, 애인과 동거할 집을 사는 등 호화로운 삶을 누리던 황씨는 불과 20개월 만에 모든 돈을 탕진하고 범법자가 됐다. 이제는 30대가 된 황씨. 붙잡힌 그의 지갑에선 로또복권이 나왔다. 하지만 요행은 그를 두 번 찾아오지 않았다.
무직인 황모(34)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1억300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 등을 상습 절취한 혐의로 지명수배된 황씨는 1개월마다 대포폰과 대포차량을 새로 뽑으며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운 좋은 사나이
오피스텔과 모텔 등을 근거지로 하여 은신하고 있던 황씨. 그는 만나는 사람에게 문신을 내보이며 조직폭력배 행세를 했다. 또 조직폭력배를 빙자하여 뺏은 휴대폰은 장물범에게 팔아 도피자금을 마련했다. 황씨의 범죄행각은 수배 중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황씨의 도피행각은 3개월 만에 끝을 맺었다. 황씨의 이동경로를 끈질기게 추적한 경찰이 그를 붙잡은 것이다. 지난 5일 경남 진주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절도) 위반 혐의로 황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구속된 황씨의 지갑에선 로또복권과 스포츠토토 등 복권 10여장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황씨는 도피생활 중에도 로또 당첨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황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나이였다.
지난 2005년 7월 황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경남 일대를 전전하던 중 복권가게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또복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행운이 황씨에게 찾아왔다. 6개 숫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된 것이다. 당첨금액은 17억여원, 이중 세금을 제외한 14억여원이 황씨의 몫으로 계좌에 입금됐다.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 더구나 미혼이었던 황씨는 갑자기 굴러온 횡재를 주체하지 못했다.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황씨. 그에게 로또 당첨은 결국 악재가 됐다.
처음 황씨는 외제승용차를 뽑고, 애인과 동거할 집을 마련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이 과정에서 수억원을 들여 호프집까지 열었지만 영업이 부진해 곧 문을 닫았다고 한다.
황씨는 남은 돈을 싸들고 강원랜드로 갔다. 한탕 크게 벌 생각으로 도박을 했지만 하루 동안 수억원을 날렸다. 평정심을 잃은 황씨는 노래방이나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여자를 상대로 돈을 흥청망청 뿌렸다. 황씨가 받은 당첨금은 2007년 4월께 바닥을 드러냈다. 당첨으로부터 탕진까지 불과 20개월 만의 일이다. 경찰 조사에서 황씨는 "돈을 수억원씩 잃다 보니 14억원이 쓸 게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다 떨어진 황씨는 2010년 4월 무렵부터 내리막을 걸었다. 절도와 사기 혐의 등으로 지명수배와 복역을 반복한 것.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서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가 하면 금품을 훔치다가 적발돼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렇듯 2차례 수감된 황씨지만 출소 후에도 그의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일 오후 5시께 진주시 한 휴대폰 할인매장을 찾은 황씨는 최신 스마트폰 2대를 구매하는 척하며 종업원에게 접근했다. 이어 "건너편에 내 사무실이 있는데 계약서와 스마트폰을 들고 그쪽으로 가자"며 종업원을 밖으로 유인한 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스마트폰을 가지고 도망쳤다. 이때 황씨가 훔친 스마트폰 2대의 시가는 300만원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또 황씨는 같은해 12월20일 진주시 한 등산복 매장에서 "내가 점장과 친구인데 잠시 통화를 하겠다"고 한 뒤 종업원(20)의 휴대전화를 빌려 도망치는 수법으로 휴대전화를 절취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황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영남지역 휴대전화 할인매장, 식당, 의류매장 등지에서 모두 135차례에 걸쳐 1억300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훔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절취한 스마트폰은 대당 15만∼100만원 사이에 거래됐다. 황씨는 이렇게 챙긴 돈 대부분을 복권 구매에 사용했다고 한다. 황씨는 경찰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로또 당첨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아픈 기억인데 이야기하지 마라. 우울증 때문에 약까지 먹는다"며 일체의 진술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거듭된 추궁이 이어지자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로또 때문에 수배됐고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고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첨금 17억원 20개월 만에 탕진
돈 떨어지자 사기·절도로 철창행
로또 1등 당첨자의 수난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7월에는 광주 한 목욕탕 안에서 A(43)씨가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는 2007년 초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18억여원을 수령했다가 4년도 못 가서 받은 당첨금 모두를 탕진했다.
최초 A씨는 당첨금으로 사업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는 등 벼랑 끝에 몰렸다. 빚더미에 오른 A씨는 가족과 분가해 홀로 지내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비슷한 시기 인천에서는 자신 몰래 로또 당첨금을 인출한 부인을 때린 혐의로 B(42)씨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B씨는 2011년 10월 말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당첨금으로 19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B씨는 황씨의 경우처럼 불과 1년여 만에 당첨금을 모두 썼다. 이후 B씨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폭행하고 담뱃불로 신체를 지지며 자살을 종용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도박·유흥에 빠져
지난해에는 로또 1등을 꿈꾸던 C(32·여)씨가 당첨을 위해 시댁에 불을 지르는 황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C씨는 '로또가 되려면 아는 사람 집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미신을 믿고 시댁에 불을 지른 뒤 곧장 로또를 구입했다. 하지만 6개의 숫자는 끝내 C씨를 외면했다.
814만5000분의 1. 벼락을 맞을 확률이지만 황씨는 또 한 번 로또 1등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요행은 그를 두 번 찾지 않았다. 안 되느니 못한 대박의 꿈은 씁쓸한 쪽박으로 끝을 맺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고 로또명당 어디?
1등만 무려 20번…주말 1만명 북적
서울 지하철 마들역에서 노원역 방면으로 400M를 걸어가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로또명당이 있다. 1등만 무려 20번이 당첨된 이 가게는 주말이면 대박을 쫓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로또명당에는 주말 기준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이 로또명당은 편의점이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뒤 지금은 '복권 판매 전문점(?)'으로 변신했다. 2002년부터 지금껏 해당 가게는 전국 로또복권 판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가게 주인은 로또를 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또 1등은 못해도 판매 1등을 했으니 그걸로 된 것"이라며 머쓱해했다.
기자가 찾은 명당은 가게 앞 횡단보도까지 사람이 몰려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최고 당첨액은 106억원(394회), 최소 당첨액은 4억원(546회), 평균 당첨액은 29억여원이라고 알려졌다. 로또를 구입한 한 시민은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그만큼 당첨 확률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냐"며 "로또를 사기 위해 타지에서 올라온 사람도 꽤 많다"고 말했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