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으로 본 아동성폭력 실태

2009.10.13 09:32:20 호수 0호

‘벗기고 만지고’… 여아들 ‘만신창이’

피해자 상처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네티즌 비난 거세
초등 교사가 아고라에 올린 ‘은지사건’으로 또 한번 경악



8세 여자아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해 영구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고 있다. 피해자의 씻을 수 없는 상처에 비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것에 대한 공분이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죄인처럼 숨어 살아야했던 또 다른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도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 아동 성폭력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화학적 거세나 평생 전자 발찌 착용 등의 조치를 내놓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루 평균 2.7명, 평균연령 9.4세, 2007년 한 해 1081건 발생. 이 숫자는 국내 아동 성폭력의 현황을 말해주는 수치다. 지난해에는 3.5시간 당 한 명 꼴로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미성년자들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심신미약 참작?
“말도 안 돼!”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아동 성폭력문제의 실태와 심각성이 대두된 것은 ‘조두순 사건’이 터진 뒤부터다. 이 사건은 지난 9월22일 방영된 KBS 1TV <시사기획 쌈>을 통해 알려졌다. 전자발찌 시행 1주년을 맞아 아동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한 이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나영이(가명) 사건’이 등장해 아동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범인 조두순은 등굣길에 나영이를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성폭행을 당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항문과 대장, 생식기의 80%가 영구적으로 소실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참극을 당한 것.


반면 범인에게 내려진 처벌은 피해자가 평생 겪어야 할 아픔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웠다. 재판부는 당시 조두순이 만취 상태인 ‘심신미약’이란 점을 감안해 12년 형을 선고했다.

조두순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결국 12년형을 선고했다. 출소 이후에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해야 하고 5년간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처벌을 받았지만 이 판결에 수긍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많은 네티즌들은 끔찍한 아동성폭력을 저질러 한 아이의 일생을 짓밟은 범인에게 내려진 죗값으로는 타당하지 않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은 성폭행 사건이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며 판결을 내린 법원과 사건을 집행한 검찰에 비난을 퍼부었다. 또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법정 최고형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이 벌어졌고 촛불집회를 열어 판결의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이와 함께 아동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과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주변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피해사실을 알리면서 파문은 날로 커졌다.

포항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고발한 ‘은지 사건’도 이 중 하나다. 지난달 30일, 김태선 교사는 ‘성폭행 당한 제자 돕다 지쳐 있는 초등교사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 올렸다.

김 교사는 성폭행을 당해 고통받고 있는 은지(가명·12)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그러다 조두순 사건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아고라에 은지의 사연을 알렸다.

2008년 KBS <추적 60분-어느 선생님의 절규, 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를 통해 이미 알려진 ‘은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포항 인근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던 은지는 지난 2006년부터 2년 동안 동네 남자 5~6명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한 버스 운전기사는 은지는 물론 은지의 어머니까지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 교사는 “성폭행 당한 학생을 돕다가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무관심에 절망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도 잃었다”며 “은지를 도우려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돕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교사는 또 “내 경험으로 보면 이번 나영이 사건은 불행 중 다행으로 증거가 남아 있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기에 12년형이라도 받은 것이다. 범인을 잡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고 바다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처럼 많은 성범죄 사건이 피해자만 울리고 없었던 일로 사라지는 여러 사례들을 보아 왔다”며 아동 성폭력을 없애기 위한 적절한 대책 마련과 시스템 구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속속 드러나는 진실
“나도 사실은…”

조두순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네티즌들은 김 교사의 글을 접한 뒤 또 한 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성폭력 실태에 경악했다. 네티즌들은 은지 사건의 재수사 촉구를 요청하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김 교사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아동성폭력 실태를 알린 것은 김 교사뿐만 아니다. 숨어 지내던 피해자들이 과거에 당했던 끔찍한 경험을 알리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다음 아고라에 ‘나영이 사건으로 인해 처음으로 고백했습니다’란 글을 올린 아이디 brain****는 “나영이 사건을 보고나서 다음날 여성 성폭행 상담 센터에 전화를 해서 벌써 17년 전에 제가 당한 강간 사건을 고백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글에 따르면 이 여성은 10살 때 동네에 살던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일로 인해 몸속에 자갈 등의 이물질이 들어가 상처가 났고 몇 해가 지난 뒤에야 산부인과에 가서 이물질을 제거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궁에 생긴 염증과 상처가 아물지 않아 지금까지도 병원을 다닌다고 한다.

끔찍한 범행을 당했지만 부모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 여성은 4번의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상처가 깊었다. 피해자이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17년을 살았던 이 여성은 조두순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야 비로소 어머니에게 성폭행 사실을 고백했다고 한다.

이 여성은 “나영이 사건을 보면서 내가 그 당시에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면 파렴치한 아동 성폭행범을 한 명이라도 잡아서 다른 아이들이 나와 같은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겨우 12년 동안만 감옥에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더 무서워졌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신고했어도 아마 10년 이하의 형량을 받았겠죠. 그럼 다시 나와서 저를 죽일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면서 자신의 쾌락을 채울 수도 있었겠죠”라고 써 범인 조두순에게 내려진 형량이 부당하다는 것을 성토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뒤 평생 응어리를 안고 살아온 이들의 사연이 인터넷에 줄을 이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동성폭력의 실상을 가늠케 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아동성폭력에 비해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가벼운데다 이들의 관리에 허점이 많아 더 많은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12세 이하 성폭행 피해자는 2005년 116명, 2007년 136명, 2007년 180명, 2008년 255명 등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6세 이하 피해자도 2005년 23명, 2006년 31명, 2007년 24명, 2008년 31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아동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받은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형이 확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1839건 중 무려 42.1%인 774건이 벌금형, 30.5%인 562건이 집행유예에 그쳤다. 또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강간범 중 23.2%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13세 미만 강제추행은 집행유예 판결이 48.4%에 달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동 성범죄자들의 경우 재범률이 다른 범죄자들에 비해 매우 높은데도 이들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30대 주부는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당한 끔찍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조차 불안하다”며 “옆집 아저씨조차도 경계해야 한다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아동성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극에 달하자 정치권 등에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은 아동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아동성범죄자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상정보 공개 정도를 높여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전자발찌 연장
대책마련 분주한 정치권

이 대통령은 또 “아동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면서 “피해 아동에 대한 법적 보호와 의료지원 등은 여성부가 주관하고 총리실,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지역병원이 동참해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예방·단속 체제를 구축해 달라”고 지시했다.

여권을 중심으로 아동성범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기 위한 형법 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법무부도 13세 미만 아동 대상 강간상해 및 치상죄의 기준형량을 높여 달라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공식 건의했다.

아동성범죄자에게 보다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이 중 하나는 성폭행범에게 약물을 정기적으로 투여해 성욕을 없애는 ‘화학적 거세’의 추진이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조두순 사건의 범인처럼 극악무도한 이런 사람들은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 캐나다도 하고 있고 복지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안은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 등의 전자발찌 착용 기간을 현행 최대 10년에서 더 연장하되, 무기한으로 늘리는 방안도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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