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LIG그룹' 재편 시나리오

2013.11.25 13:23:02 호수 0호

매출 12조 공룡 뼈다귀만 남는다

[일요시사=경제1팀] 50여 년째 손해보험 경영을 해 오던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일가가 결국 LIG손해보험을 떼어내기로 했다. 모태기업인데다 알짜 계열사였던 만큼 안고 갈 것이라는 안팎의 예측은 빗나갔다. 가업을 내던져야 했던 LIG그룹 일가의 숨은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더불어 향후 LIG그룹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순리대로 흐르던 제 인생의 강물이 바다에 다다르는 마지막 길목에서 예기치 않게 큰 웅덩이를 만났다. 결코, 비켜 흐를 수도 없고, 이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종합금융그룹
오너경영 엔딩

구자원 LIG 회장이 지난 19일 LIG손해보험(손보) 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하면서 LIG손보 임직원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이다. 

LI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은 자신과 가족들이 보유한 LIG손보 주식 1257만 4500주(지분율 20.96%) 전량을 매각키로 했다. 구 회장 일가의 LIG손보 지분율은 1대 주주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6.78%, 구본엽 LIG엔설팅 고문 3.60%, 구본욱 LIG손보 상무 2.82%, 구자훈 LIG문화재단 이사장 2.49% 등이다.

구 회장의 지분율은 0.24%에 불과하지만 평생 키워온 종합금융그룹의 꿈을 접는 일인 만큼 매각 결정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LIG손보는 손보업계 4위의 대형 보험사로, 자산 18조원 규모의 그룹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12조원)의 8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절대적이다. 이렇게 알짜 계열사를 매물로 내놓은 것은 LIG건설의 사기성 기업어음(CP) 투자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구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LIG손보는 저와 임직원의 피땀이 어려 있는 만큼, 영원히 함께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면서도 “투자자들의 피해 회복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신용이 중요한 보험사 성장을 위해서는 지분매각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회한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원 회장 옥중 서신…16명 지분 일괄 매각
“CP 피해 연내 꼭 보상”50년 키운 ‘금융’ 접어

최근 구 회장은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가 확정돼 장남인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나란히 복역 중이다. 구 부회장은 징역 8년을, 구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구 회장은 LIG손보를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던 중 지난 2006년 건영을 인수해 건설업에 진출했다. 2009년에는 한보건설을 인수하면서 ‘LIG건설’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인수 과정에서 생겨난 부채(3800억원)와 건설경기 침체의 여파로 2011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2010년 발행한 사기성 CP가 문제가 됐다.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부자는 법정에 섰고,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계획을 알고도 CP를 발행해 부도처리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LIG건설 CP 투자자는 700명으로 피해액도 2100억원에 달했다. 구 회장이 지난해 사재출연을 통해 730억원을 보상조치를 이행했지만, 아직도 1300여억원을 보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고뇌 끝에 LIG손보 통매각카드를 들고 나왔다. 업계에서는 1300여억원의 피해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출 9조원의 모기업을 팔기로 한 그의 선택은 놀라울 정도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50년 가업 포기
진짜 이유는? 

이는 그룹 내 유교적 가풍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LIG그룹은 장자 승계 방식을 통해 경영권을 이어왔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은 생전에 4남을 두었다.


첫째는 구자원 회장, 둘째는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작고), 셋째는 구자훈 전 LIG손보 회장, 넷째는 구자준 전 LIG손보 회장 등이다. 경영은 돌아가며 했지만 지분은 구 회장과 두 아들(구본상, 구본엽)이 가장 많이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 부자가 모두 법정 구속되자 이런 전통이 깨지게 됐다. 실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또 투자자들 피해 보상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구 회장 부자의 지분을 팔아 재원을 마련해야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미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지분이 많은데다가 두 부자가 지분을 매각하면 구 회장 일가의 전체 지분은 약 21%선에서 약 10% 남짓으로 줄어 경영권을 위협받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에 가족회의를 통해 아예 통매각을 해 사기성 CP 발행에 대해 확실한 면죄부를 받는데에 가족들이 모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LIG 일가는 또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넥스원 매각도 고려했으나 방위산업체여서 매각하려면 정부와 협의도 해야 하고, 매각 작업에도 시간이 걸려 지분을 직접 가지고 있는 손보사 지분을 매각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알짜 통매각…금융 대주주 부적격·숨은 빚 원인
방산 중심 자산 1조대 ‘미니그룹’으로 재구성

이 외에 숨겨놓은 빚도 통매각을 결정하게 된 이유로 떠올랐다. 외부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LIG의 경우 2011년말 LIG건설의 대주주였던 티에이에스(TAS)와 합병하며 LIG건설이 지고 있던 빚을 떠안았다.

업계에 따르면 LIG그룹 일가는 올해 중반 LIG넥스원 지분 일부를 매각해 급한 불을 껐지만 여전히 상환해야 할 빚이 상당하다. 구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개인적으로 받은 빚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LIG손보 지분 매각이 성공하면 LIG그룹 오너 일가는 CP 피해 보상액(1300억원)을 지급하고도 남을 것으로 분석된다. 주식 전량 매각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할 경우 시장에서는 실제 매각 규모가 대략 5000억∼6000억원대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 자금을 ㈜LIG 및 개인 빚 청산에 투입해 무기 생산 업체인 LIG넥스원의 경영권을 안정화시켜 가문을 추스르는데 사용한다는 관측이다.


금융부문이 떨어져 나가면 LIG그룹은 넥스원을 중심으로 한 총자산 1조원대 ‘미니 그룹’이 될 전망이다. 옛 LG그룹에서 분가한 LIG는 크게 세 사업 부문을 갖고 있었다. LIG손보를 중심으로 한 금융,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한 방산, LIG건설을 중심으로 한 건설이다.

재계 관계자는 “매각 이후 LIG는 외형은 크게 줄지만 방산 전문 중심 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윤리경영과 내실경영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매력적인 매물
여기저기서 눈독

LIG손보가 M&A시장에 나오자 손보 업계는 요동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지주와 NH금융지주가 뛰어든 우리투자증권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존 손보사 가운데 업계 5위인 메리츠화재가 4위인 LIG손보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성공할 경우 일약 업계 2위로 떠오를 수 있어 보험업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현재 손해보험업계는 삼성화재(매출액 16조5000억원), 현대해상(10조1500억원), 동부화재(9조6900억원), LIG손보(8조9000억원) 등 4강 구도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위권 손보업체가 LIG손보를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2위권 업체로 도약할 수 있다.

LIG손보 측은 매각 주관사를 선정해 매각 작업에 들어가면, 6개월∼1년 사이에 매각 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시도했던 KB금융과 보험사를 갖고 있는 신한금융, NH농협금융 등 금융지주사 등을 LIG손보 지분 인수 후보군으로 꼽는다. 또 LG그룹과 국내외 사모펀드(PEF)들도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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