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이병헌

2013.11.12 10:23:36 호수 0호

관객 홀리는 여체의 선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4일 서양화가 이병헌 작가의 36번째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그의 누드화는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자태로 관객을 만났다. 한국 누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 작가를 <일요시사>가 만났다.






여성의 속살이 내비치는 신비로움과 매혹적인 선의 만남. 생동감 있는 묘사와 매끄러운 터치는 그림 안의 모델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착각을 안겼다.

누드화의 장인

이 작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모델을 마주한 채로 부끄러움 없는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그의 손을 통해 표현되는 여체는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둥근 가슴과 매끄러운 피부, 가감 없이 그려진 체모는 사실 그대로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전시 마지막 날임에도 이 작가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은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더러는 그의 세밀한 묘사에 감탄했고, 더러는 팔짱을 푼 채 그림 안으로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누드화는 서양이 더 발달했기 때문에 주로 외국 작품집을 보는 편이에요. 남들이 찍거나 그리지 않았던 포즈를 발굴하는 데 흥미를 느끼죠.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평소 생각했던 포즈를 모델에게 취하게 하고 5분 내로 모든 걸 스케치합니다. 크로키만 놓고 보면 저보다 빨리 인체를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아마 없을 거예요."


누드화는 고정된 정물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델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도 그림이지만 모델과의 호흡 또한 중요하다. 이 작가는 "일반인도 작가와의 교류가 있으면 섭외에 응한다”고 말했다. 또 반드시 여자 모델만 그리는 건 아니란 설명도 곁들였다.

생동감 있는 묘사와 매끄러운 터치 눈길
50세에 프랑스 유학…매일 3시간 드로잉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조형적으로 봤을 때 여자의 신체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도 근육이 잘 발달한 훌륭한 모델이 있어요. 로마의 다비드상 같은 몸을 보면 '정말 아름답구나'란 생각을 하죠. 그런데 한 번은 남자 그림과 여자 그림을 같이 전시해보니까 남자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경제 논리에 따라 전시를 하면 여자 그림만 걸고 있습니다(웃음)."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모델들에게 좀 더 포스티브(적극적인)한 포즈를 주문했다고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감추는 것이 아닌 과감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잡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 작가의 누드화들은 '회화와 사진의 중간 지점'이란 인상을 준다. 정적인 회화의 특성과 동적인 사진의 특성이 혼재돼 있는 까닭이다.

"보시다시피 제 그림은 극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슈퍼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특정 '이즘'에 갇히는 건 싫어서 인상주의의 장점도 일부 차용하고 있습니다. 근육의 미세한 떨림, 눈·코·입의 움직임 등 인간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다는 건 정말 수많은 연습을 필요로 해요. 좋은 작품을 계속 보고, 그리고…. 뻔한 말 같지만 저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이 작가는 50번째 생일을 맞은 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자신의 그림이 정체돼 있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난 것. 그곳에서 그가 그린 그림은 무려 3000여점에 달했다.

"매일 3시간씩 누드 드로잉을 했어요. 우리나라보다는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이어서 전문 모델이 아닌 사람들과도 종종 작업했죠. 일요일이면 박물관을 찾아 다니면서 선배 작가들의 그림을 익혔어요. 한 번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갔는데 덕분에 자극을 많이 받았죠."

"인생은 도전"

이 작가는 자신의 대표 누드화 50점을 웹북 형태로 제작하고 있다. 이 웹북에는 누드화 제작과정 또한 담길 예정. 이 작가는 "나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웹북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세계 시장에서 제 그림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부족한 건 채우면서 예술가이기 때문에 끝없는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해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병헌 작가는?]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36회(서울·대구·부산·일본)
▲2009년 SOAF(COEX)·말레이시아 아트페어·프랑스 오슈 부스전
▲2008년 아트대구·대구아트페어·북경아트사롱
▲1996년 올해의 한국미술 선정작가(한국문예진흥원)
▲대구·광주·정수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역임
▲성산·무등미술대전 등 운영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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