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현대미술가 이화백

2013.11.06 09:31:08 호수 0호

고혹적인 색감으로 감각 무력화

[일요시사=사회팀] 미술계의 ‘이단아’이자 ‘저명한 비주류’인 이화백(본명 이기섭)이 3년 만에 개인전으로 돌아왔다. 고혹적인 색감으로 감각을 무력화시키는 ‘형식의 마술사’ 이화백을 <일요시사>가 만났다.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맥주가 세팅돼 있었다. 맞은 편 스피커에선 고급스러운 비밥이 흘러나왔다. 내심 여기자와의 핑크빛 인터뷰를 기대했던 이화백은 기자를 보자 대뜸 담배부터 물었다. “여기자(?)가 아니라 섭섭하다”는 이화백식 유머는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미술계 이단아

“일 그만두고 1년 동안 딱 2점 그렸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요. 많이 벌 때는 몇 천씩 벌고 그랬는데 (돈은 없어도) 그림은 지금이 더 나아요. 문제는 요즘도 (그림이) 잘 팔릴 때처럼 돈을 쓴다는 거죠. 그래서 가끔이지만 ‘갤러리에서 돈 줄 때가 좋았구나’란 생각을 해요.”

이화백은 러시아 국립예술대학 역사상 최연소 동양인 졸업자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영국 등 해외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친 이화백은 오랜 타국살이를 마치고 지난 2002년 한국에 정착했다. 국내서 영향력 있는 갤러리로 손꼽히는 A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일했던 이화백. 그러나 ‘스타작가’였던 이화백은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회사원이었다”고 자평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작업하고 자고, 또 작업하고 자고. 내가 나를 복제하는 기분? 내 그림이 복제되는 기분? 쉽게 말하면 납품업체였죠. 그런데 납품 기일을 자꾸 못 맞추니까 ‘대기업’ 입장에선 얼마나 짜증났겠어요. 그리고 제가 인사성도 없어요. 큰 갤러리 관장님들은 인사 받는 걸 좋아하는데 (그 사람들이) 대통령도 아니고 왜 (내가) 허리를 숙여요? 이런 말하면 또 ‘싸가지 없다’고 미술계 사람들이 날 욕할 텐데 그 사람들에게도 ‘좋은 그림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행복한 콧물’(2008, 이하 콧물)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역작(?)이다. 무엇보다 콧물은 컬렉터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전판이 솔드아웃됐다. 그러나 팝 스타일을 차용한 그의 그림은 평단에서 종종 팝아트란 오해를 사기도 했다.

“팝아트의 단점이 뭐냐. 팝아트 작가로 한 번 낙인찍히잖아요? 그럼 팝이라는 틀 안에 제가 갇혀요. 이건 영화배우가 코믹연기 한 번 하면 시나리오가 코믹물만 들어오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이젠 패러디물은 안 하려고요. 유행 타는 그림은 솔직히 돈은 되는데 그때가 지나면 못써요.”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모나리자가 양주를 들고 있는 그림, 마리아가 텔레토비를 안고 있는 그림 등 고전을 재치 있게 해석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이젤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독특한 문양의 건축물들이 나열된 세련된 풍경화가 걸려있다. 얼핏 보면 고전과 도시라는 전혀 다른 소재지만 이화백의 그림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형식미를 극대화한 ‘시각적 쾌감’이 그것이다.

러시아 국립대 출신 유학파 예술가
3년만에 복귀전…시각적 쾌감 극대화

“전 테크닉이 곧 철학이라고 봐요. 영화를 보면 스탠리 큐브릭도 장르가 아닌 테크닉으로 인정받았잖아요. 내 작품에는 팝아트가 있고, 사회주의미술이 있고, 장식미술이 있고, 모든 장르가 혼재돼있어요. 이걸 줄여서 뭐라고 하냐. ‘그림’. 그림이 그냥 그림이지 서양화는 이렇고, 동양화는 이렇고, 이게 무슨 소용이에요. 보기에 아름다운 게 그림이지.”

이화백의 그림은 고전에 원형을 두고 있다.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촘촘한 구성과 세밀한 묘사는 이화백이 왜 ‘그림쟁이’인지를 잘 대변한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대체하면서 그림쟁이들의 ‘오리지널리티’는 약화되고 있다.

“전 컴퓨터를 할 줄 몰라요. MP3도 모르고. 전화기도 폴더폰을 써요. 아날로그적인 생활방식이 좋아서 요즘은 일부러 거꾸로 가고 있어요. 그런데 MP3 있잖아요. 그건 실재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파일로 존재하는 거죠. 지우면 끝이잖아요. 형체도 없고. e북도 마찬가지죠. 책이 있어야 나중에 라면 먹을 때 받침으로라도 쓰죠. 요즘은 미술계에도 3D작업처럼 디지털 바람이 부는데요. 회화의 오리지널리티가 희박해지는 건 문제라고 봐요.”

“아날로그가 좋아”

이화백은 의사들이 입는 초록색 가운을 작업복으로 쓰고 있다. 의사들이 수술 도중 가운으로 피가 튀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는 것처럼 이화백도 작업복에 물감이 튀면 ‘무엇이 잘못 그려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릴 때 수술하듯 큐레이터를 보조로 놓고 작업해요. ‘매스 대신 붓 아니 1호붓 말고 2호붓, 급해 급해’ 이렇게 말하고, 마지막엔 ‘오늘은 어려운 수술이었네’ 하면서 등을 두드리죠. 재밌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전시는 재미없어요. 전시를 위한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아요. 한 번은 포르노를 그리려고 했는데 못 그리게 했어요. 사람들이 체면을 차리기 때문에 안 사간다고. 그런데 자기가 야한 그림을 좋아하면 집에 걸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기보단 내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이화백의 이번 개인전은 대학로 갤러리192에서 만날 수 있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이화백은?]

▲영국 서리대학교 예술대학 석사
▲수리코프 모스크바 국립미술대학 석사
▲2005년 Retrospective展(인데코갤러리,서울) 외 개인전 6회
▲진실한 그림(세종문화회관), easy art(서울옥션) 등 국내 그룹전 다수
▲4 Nations(arthouse gallery, 영국) 등 해외 그룹전 다수
▲2013년 Reload(갤러리192, 서울)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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