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사태 배후세력 '추적'

2013.09.30 14:02:57 호수 0호

혼외자 진실게임 2라운드…'포스트 총장' 청와대와 스킨십?

[일요시사=사회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불법 행위에 대한 야권의 공세는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 싸움 뒤편에서 조용히 검찰 장악을 준비하는 세력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채동욱 죽이기'에 어디까지 가담했던 것일까.






지난 4월 채동욱(사법연수원 14기) 전 검찰총장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자신의 취임식에서 "깨끗하지 못한 칼이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없듯 청렴하지 못한 자는 국민이 납득하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5개월 뒤 채 전 총장은 혼외아들 의혹에 휩싸였다. 그가 강조했던 도덕적 청렴함은 땅에 떨어졌다. 많은 국민은 채 전 총장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했고, 일부는 채 전 총장의 '두 집 살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은 결백을 주장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필귀정'을 언급했다. 마침내 그가 칼을 빼들었다.

곳곳에서
진검승부

지난 24일 채 전 총장은 자신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채 전 총장의 변호인인 신상규(11기) 변호사는 "오늘 오전 소장을 접수했다"며 "입증서류와 유전자 감식을 신청한다는 내용의 서류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혼외아들의 유무를 놓고 채 전 총장과 <조선일보>는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앞두게 됐다.


지나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채 전 총장의 정정보도 청구소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부장판사 배호근)에 배당됐다. 첫 변론준비기일은 10월16일. 세기의 재판을 앞두고 양측은 유전자 감식 절차와 방법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률상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사안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따라서 재판부는 늦어도 올해 말까지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앞서 채 전 총장은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황교안(13기)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떨어지자 사의를 표명했다. 현직 검찰총장을 향한 법무부의 공개 감찰 지시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흔들기 막후조종 '보이지 않는 손' 존재
정권 차원 광범위한 정보 수집 정황 포착

이미 3개월여 전부터 검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채 총장이 현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곧 쫓겨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오갔다. 채 전 총장 스스로도 본인의 운명을 예견한 듯한 발언을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지난 6월3일 여야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대검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의 상견례 자리에서 "지켜봐주십시오. 예전에도 밝혔듯이 국민이 원하는 검찰을 만들겠습니다. 제 임기가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했다.

당시 채 전 총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놓고 황 장관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 현 정권이 져야할 부담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원 수사'를 밀어붙였고 이 때문에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을 '눈엣가시'로 여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국정원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채 총장의 옷을 벗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안과 특수
검찰의 두집살림

이 같은 배경으로 혼외아들의 유무 못지않게 청와대가 실제로 채 전 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은 '청와대 외압설'의 배후로 지목된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를 받아 쓴 <조선일보> 기자 2명, 개인정보 유출에 관여한 성명불상인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두 단체는 검찰에 낸 고발장에서 "<조선일보>는 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임모(54·여)씨와 채모(11)군의 가족관계등록부·학교기록·출입국·거주지·아파트입주자 정보를 무단 열람했다"며 "총장을 음해할 목적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제공받은 증명서를 기사작성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곽 전 수석은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의심받고 있는 임씨와 아들 채군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고발 사건이 어디로 배당될지 현재로선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온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권력기관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인 정보를 불법 취득해 언론에 흘렸다는 불법사찰 의혹인데다 검찰 수장이 직접 연루된 사건인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채 전 총장이 '특수통' 출신이란 것을 감안하면 이 사건은 특수부의 명예와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곽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청와대를 겨눈 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 특수부 투입이 채 총장을 위시한 현 검찰조직의 항명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은 특수부 배당의 걸림돌이다. 이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 '6월 회동'은 꽤 의미심장하다.

당시 상견례에는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 13명이 참석했다. 법사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에선 이춘석, 박범계, 서영교 의원 등이 참석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간사직을 맡고 있는 권성동 의원 등이 참석했다. 불참한 의원은 3명(민주당 2명, 새누리당 1명)이었고 이들은 모두 일정상의 이유를 댔다.

대검에서는 채 전 총장과 길태기 차장이 참석했다. 또 형사부장, 강력부장 등 8명이 동석했다. 그런데 부장검사 중 유독 공안부장만이 불참했다. '국정원 댓글 수사'에 따른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특수부와 공안부 간의 갈등설을 조심스레 제기했다. 특수부와 공안부는 검찰 내 오랜 앙숙으로 통한다.

복수 검찰 관계자는 "채 총장을 흔드는 세력 중 검찰 내부의 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안 출신 검사라고 꼭 집어 얘기하진 않았다. 다만 채 전 총장 퇴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래도 16기 공안 검사들이 자리에 오르지 않겠냐"고 언급할 뿐이었다.

현재 검찰에는 채 전 총장의 동기가 남아있지 않다.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검찰총장과 같은 기수의 검사들은 모두 사임했다. 채 전 총장 다음 기수인 15기로는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길 차장과 지난 검찰총장 인선 때 채 전 총장과 마지막까지 경합한 소병철 법무연수원장 등 2명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최근 채 전 총장은 "검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청와대는 지난 주말 채 전 총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이에 따라 차기 총장 후보군은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만약 청와대나 법무부가 직접 나서서 검찰총장 후보군을 추린다면 '채동욱 죽이기'를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김기춘·홍경식
검찰과 통했나

이와 관련해 한 법사위 관계자는 "이미 후임 총장 후보군은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사람'의 이름이 언론에서 밝혀진다면 채 총장을 흔든 세력으로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일보> 보도에 협조한 지검장급 검사들은 외부로부터 "청와대와 사전 스킨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황 장관과 국민수(16기) 법무부 차관 등이 혼외아들 보도 전부터 채 전 총장의 자진사퇴를 유도했다는 정황을 볼 때 '차기 총장 내정설'은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내정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A 지검장은 이른바 '공안라인'으로 분류된다.

반면 일각에선 외부 수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김진태(14기) 전 대검차장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 그러나 변수가 있다. 바로 김기춘(고등고시 12회)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김'이다.

올 2월 초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는 김 전 차장과 채 전 총장(당시 서울고검장), 소 원장(당시 대구고검장) 등 3명을 총장 후보로 법무부에 추천했다. 검찰 독립성을 위해 검찰 내부에서 추천된 인사를 법무부가 인선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의 속내는 달랐다. 안창호(14기)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학의(14기) 당시 대전고검장이 총장 후보로 고려됐다. 이들은 정권과 말이 통하는 친여 성향의 인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총추위는 두 사람 모두 탈락시켰다.

김기춘·홍경식 검찰에 외압?
특수부·공안부 갈등설 모락
후임총장 16기 공안출신 유력

세 후보 중 최종 후보가 된 건 채 전 총장이었다. 당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 등 인사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청와대는 큰 결격 사유가 없던 채 전 총장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채 전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김 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하는 파격을 감행했지만 김 전 고검장은 '성접대 의혹'으로 취임 6일 만에 사퇴했다.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경찰 조직 개편의 도화선이 됐다.

박근혜정부가 경찰 조직을 '손보는' 사이 검찰은 나름의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전방위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와 검찰의 '엇박자'는 다가올 파국을 예고했다.

지난달 5일 박 대통령은 김 비서실장과 홍경식(8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임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 비서실장과 홍 비서관은 채 총장보다 훨씬 선배인데다 '공안통'이기 때문에 검찰을 손보기 위한 인사로 풀이됐다.

이 무렵 검찰 안팎에선 "채 총장이 곧 물러날 것”이란 설이 파다했다. 정치권에선 "채 총장이 민주당 모 의원과 자주 통화하는 등 야당과 더 친해 정권 입장에선 부담"이란 말도 들렸다. 그리고 채 전 총장은 한 달 뒤 옷을 벗었다.

이와 관련해 한 법무부 관계자는 "아마도 채 총장의 혼외아들 보도는 김 비서실장의 작품일 것"이란 추측을 내놨다. 김 비서실장은 지난 총추위 후보 추천 과정에서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당시 법사위 등에서 김 비서실장이 미는 인물로는 김 전 차장이 거론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채 총장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정보가 처음 나온 시점이 지난 2월이란 점이다. "박 대통령의 측근인 모 오페라단 B 이사장과 채 총장이 내연관계에 있다"는 이 소문은 당시 여의도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다. <일요시사> 역시 B 이사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채 총장의 내연관계를 취재했던 한 언론사 관계자는 "각 후보마다 확인되지 않은 첩보가 생성되고 유포됐는데 이는 모두 검찰 내부로부터 나온 정보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는 검찰 내부에서 각 후보들을 견제하는 정보가 생성·유포됐음을 의미한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는 인수위를 비롯한 각 정부기관에서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짜 배후
따로 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검란사태 때 '특수통'들은 가장 먼저 앞장서 한 전 총장을 끌어내렸다. '공안통'의 대부였던 한 전 총장은 후배들에 의해 쫓겨나듯 조직을 떠났다. 이를 지켜보는 '공안통'들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검찰 일각에선 "특수부가 작당해 한 전 총장을 불명예 퇴진시킨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당시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은퇴한 '공안통'들이 검찰 밖에서 검찰 내부의 움직임을 우려했던 건 사실"이라며 "이번 채 총장 사건도 정치권 선배들이 힘을 쓰고, 후배들은 침묵을 통해 협조하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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