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출판기념회의 비밀

2013.09.16 16:17:49 호수 0호

알고 보니 합법적인 '갑의 횡포'

[일요시사=정치팀] 최근 국회는 연일 문전성시다. 국정감사와 예산심의를 앞두고 한창 바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 가만히 있다가 돌연 정기국회 기간에 갑자기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들이 갑작스레 문학에 심취하기라도 한 것일까? <일요시사>가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의 비밀을 추적해봤다.






지난 3일, 국회 제2의원회관에서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출판기념회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여야 의원들은 물론이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행사장을 찾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김덕중 국세청장 등은 화환을 보내 출판기념회를 축하했다. 이날 도착한 화환은 80여 개로 행사장을 빙 둘러싸고도 남았다.

출판기념회?

420석 규모의 행사장은 빈자리가 없었고, 눈도장만 찍고 다녀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참석자가 1000명은 족히 될 것으로 추산됐다. 출판기념회를 위해 이 의원 측이 준비한 1600권 정도의 책은 금방 동이 났다. 판매대에 있는 직원들은 주소를 남겨놓으면 따로 책을 보내주겠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이 의원이 발표한 책은 자신의 신앙 간증집인 <동행>이다. 이 책은 총239쪽 분량으로 47년 만에 공천장을 들고 찾은 고향의 환대와 지난 총선 때 뇌졸중에도 선거를 치렀던 경험, 가족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사려고 출판기념회장을 찾은 인파만 보면 분명 베스트셀러감인데 정작 내용은 그렇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결위원장은 내년도 예산 심사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예산결산심사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예산확보가 중요한 각 장관과 공공기관장, 여야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이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이라 피감기관장들도 몰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이후 많은 언론들로부터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3일 후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경남 통영시민회관에서 또 한번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서울에서의 출판기념회와 마찬가지로 통영에서의 출판기념회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의원 측은 자신의 출판기념회가 언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것과 관련 "예결위원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10월 중순에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아니겠냐"며 "6월에 책을 완성하고 행사장을 대관하려다보니 예약이 밀려 어쩔 수 없이 9월에 출판기념회를 열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의원 측은 또 출판기념회를 두 번 열게 된 것에 대해서는 "서울에서만 출판기념회를 열어도 지역구에서 오실 분들은 다 오신다"며 "하지만 지역구인 경남 통영이 워낙 멀기 때문에 서울에서만 출판기념회를 열면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신다. 그 분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 예결위원장이 되기 이전에도 출판기념회는 서울과 지역에서 두 번씩 열었다"고 밝혔다.

예결위원장이 부르는데 안갈 도리 없어
한도 없고 회계보고 의무 없는 '쌈짓돈'

한편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출판기념회에 나서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이 의원뿐만이 아니다. 정기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 2일에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 민주당 정호준 의원<길위에 서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또 3일에는 민주당 노영민 의원<노영민, 그의 삶과 지적 편력>이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4일에는 정무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과 5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민주당 신학용 의원도 잇달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외에도 6일 민주당 유은혜 의원<유은혜와 꽃이 피는 만남>, 9일 민주당 김영주 의원<영등포의 정치와 문화이야기>, 11일 민주당 유대운 의원<유대운의 강북정치>, 16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등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출판기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회의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사실상 정치자금 모금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기념회는 책을 팔고 책값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모금행사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에서 모금한 돈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상 어떤 규제도 없다. 선관위가 출판기념회를 경조사와 비슷한 성격으로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전부 개인돈이다. 모금 한도도 없고 회계보고를 해야 하는 의무도 없다. 개인이나 단체가 책을 아무리 많이 사거나 책값보다 다소 많은 돈을 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책을 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출판축하금도 낸다. 책을 파는 것 이외에 축하금을 전달하는 경우에도 통상수준에서 주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도 통상적인 수준이라는 기준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사실상 출판기념회에서 모으는 돈은 정치자금 단속의 사각지대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들이 왜 굳이 국정감사나 예산안 심사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앞 다퉈 출판기념회를 여는지 납득이 된다.

강제모금회?

정치전문가들은 현역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 대해 "굳이 정기국회 기간에 맞춰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본인들은 그런 뜻이 없었다고 해도 자칫 예산심의, 국정감사와 관련한 기관이나 개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이 시기엔 온갖 정부기관·단체·지역구에서 예산을 더 배정해달라거나 국정감사와 관련한 청탁이 쏟아져 들어오는 만큼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들은 출판기념회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책값의 회계처리를 의무화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행사 축하금이나 정가 이상의 책값은 정치후원금으로 규정해 정치자금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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