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만 명 시대다.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는 탈북자들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나는 탈북자의 수만큼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많아진다는 것.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일부 새터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때론 힘든 현실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범죄자의 길을 택하고 있다. 범죄의 내용도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다.
몇 해 전 탈북자 범죄가 단순폭력이나 교통사범 정도에 그쳤다면 지금은 마약, 강간, 살인 등 강력 범죄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엔 술값이 없다는 이유로 카페 여주인을 살해한 탈북자의 사건이 전해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탈북자 범죄의 실상을 취재했다.
술값 25만원 안 내려 카페 여주인 무참히 살해한 탈북자
“술값도 없이 왜 술 먹냐” 무시하는 말에 격분해 범행
지난 2007년 11월, 중국에서 베트남을 거쳐 탈북한 양모(33)씨. 그는 지난해 부산에 정착해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소심한데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탓에 터놓고 지낼 친구도 많지 않았던 양씨. 변변한 일자리도 없었다.
“돈 없이 왜 술 먹냐”
격분해 흉기로 찔러
탈북한 뒤 일용직노동자로 일하며 생활을 해나갔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구하기가 힘들어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에 의지해 근근이 살아갔다. 가난과 외로움에 지친 양씨를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다. 지난달 29일 저녁에도 그는 부산시 기장군의 한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술친구도 없이 혼자 카페에 찾아가 여주인 A(52)씨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이날은 양씨가 유일한 손님이었던 터라 두 사람의 술자리는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술자리는 곧 참혹한 현장으로 변했다. 술값이 화근이었다. 비싼 양주를 시킨 탓에 술값은 25만원이 나왔고 술값이 없다는 양씨의 말에 A씨의 태도가 돌변하면서 그를 자극하기 시작한 것. A씨는 “돈도 없는 새끼가 왜 술을 먹냐”는 막말로 양씨를 무시했다. 이에 격분한 양씨는 A씨의 목을 졸라 실신시킨 뒤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와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이 벌어진 것은 오전 1시10분쯤. 손님도 종업원도 없는 카페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깨달은 양씨는 현금 6만5000원을 빼앗은 뒤 달아났다. 그가 숨은 곳은 기장군과 금정구 일대 야산. 이곳에서 양씨는 풀뿌리 등을 먹으며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범행도 세상에 드러났다. 범행 다음 날 카페를 찾은 손님에 의해 A씨의 죽음이 경찰에 알려지게 된 것. 이에 경찰은 양씨를 용의선상에 올렸고 양씨의 집인 기장군 모 아파트에 잠복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오후 5시30분쯤, 허기에 지쳐 집을 찾은 양씨는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부산 해운대 경찰서에 따르면 양씨는 범행 일체를 순순히 자백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외로웠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날 새벽의 일을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 5일 강도살인 혐의로 양씨를 구속했다. 양씨처럼 생활고와 외로움이란 이중고에 시달리다 범죄자의 길을 걷는 탈북자의 수는 늘어나는 양상이다. 경찰대학 부설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효율적 지원방안보고서’는 탈북자들의 범죄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7년 1월31일까지 전체 탈북자 8885명 가운데 1687명이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탈북자 5명 중 1명은 범죄경력자란 것으로 풀이된다. 그중에서도 10.2%인 899명이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포함한 형사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폭력은 603명, 살인 5명, 강간 12명, 사기 36명 등이다. 이는 한국인의 평균 범죄율인 4.3%보다 두 배나 높은 수치로 탈북자들의 범죄행각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줄어든 정착지원금과 남한사회 부적응으로 힘든 생활
탈북자 증가하는 만큼 강력범죄도 늘어 대책 마련 필요
증가추이도 심상치 않다. 북방문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형사처벌을 받은 탈북자는 총 285명. 이는 2000년 39명, 2001년 54명, 2003년 80명에 비해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범죄의 강도가 점차 세지고 있다는 것. 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탈북자들의 범죄는 우발적 폭력이나 교통사범 등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탈북자의 국내 입국이 증가하고 정부의 정착지원금이 줄어들면서 범죄는 보다 흉포화되어 마약, 매춘, 폭력 등의 강력범죄가 크게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발생한 285건의 범죄 가운데 살인, 마약, 폭력 등 죄질이 나쁜 9대 범죄의 비율이 전체의 44.6%를 차지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황모씨도 강력범죄의 수렁에 빠져 죗값을 치르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난 1994년 형과 함께 꿈에 그리던 남한생활을 시작하게 된 황씨.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직업조차 구하기가 어려워 당장 먹고사는 일이 시급해진 것. 방황하던 황씨가 택한 것은 범죄였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도짓을 일삼았고 특수강도, 강도상해죄 등으로 세 차례에 걸쳐 복역을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자신의 생활태도를 꾸짖는다는 이유로 서울 일원동 길가에서 친형을 흉기로 일곱 차례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그런가 하면 탈북 브로커에게 진 빚(입국자금)을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적발된 여성들도 있다. 이들 여성은 남한 사회에 적응할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채무변제를 위해 입국 후 5개월 만에 성매매 업소로 흘러들어갔다. 이들은 2007년 1월 입국 후,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온 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입국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지난해 6월 초 춘천의 유사성행위업소에서 일을 하다 업주와 함께 성매매 혐의로 구속됐다.
마약범죄도 탈북자들을 비켜날 수 없었다. 수억원대의 마약을 밀반입한 탈북자 가족도 경찰에 잡힌 바 있다. 이들 가족은 5만여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을 중국에서 밀반입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한국에 입국한 뒤 3년 동안 생활보호자 신세를 면치 못한 이들 가족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마약밀매에 손을 댔고 북한산 필로폰 1억6000만원어치를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것.
이들은 마약단속이 심한 공항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21시간 동안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다. 조사결과 이들은 마약이 적발되지 않으려고 갓 돌이 지난 아들의 기저귀와 아내의 옷 속 복대에 마약을 숨겨 항만을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범인은 “분유 값과 어머니의 병원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이 길에 들어섰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성매매, 마약 등 강력범죄
탈북자들 비켜가지 못해
실제 범인은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지원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탈북 알선비용과 다단계 사기로 모두 탕진한데다 어머니의 수술비와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의 아들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힘든 한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댄 탈북자도 있다. 2000년 10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와 일용직으로 일하던 최모(45)씨는 지난해 6월 일자리를 찾으러 중국에 갔다가 마약의 수렁에 빠졌다.
그는 “마음이 답답할 때 도움이 된다”는 중국동포 무역업자 정모씨의 권유로 필로폰에 손을 댔다. 최씨는 이후 6개월 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4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다 적발돼 올 1월 중순 구속됐다. 그렇다면 이처럼 탈북자들의 범죄가 증가하고 또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치안정책연구소의 김윤영 연구관은 이에 대해 몇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탈북 당시 자연스럽게 각종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1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제 3국 체류 당시 생존을 위해 다양한 직업과 환경에 맞부딪히면서 범죄환경에 노출된 경험이 많았고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절도나 매춘 등의 자본주의형 범죄에 쉽게 유혹된다는 것. 탈북자들의 어려운 경제사정도 범죄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줄어든 정착지원금과 일용직 노동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포자기하는 탈북자들을 만들고 있고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탈북자 5명 중 4명은 극빈층에 속한다는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5년 7월 국내 거주 탈북자 6531명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된 수는 5201명으로 전체의 79.6%를 차지했다. 이는 2004년보다 41.6%나 증가한 수치다. 탈북자들의 과거 범죄경력도 범죄발생 증가의 한 요인이다.
탈북자의 상당수가 북한이나 제3국에 체류할 당시 범죄경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실한 입국 검증 체계와 교화개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 범죄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남한 법지식의 무지도 탈북자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탈북자들은 국내에 입국한 후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은 뒤 바로 거주지로 배치되는데 남한 사회의 법이나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남한 생활을 시작해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
탈북자 정보 사전에 알아
범죄가능성 차단 필요해
북한에서는 법에 걸릴 것이 없었던 문제가 남한에서는 법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들을 습득하지 못한데서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북한에서 한 것처럼 개인 대 개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다 범법행위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김 연구원은 또 남한 사회가 탈북자에게 관대하고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범죄의 한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사선을 넘어 온 동포라는 생각에 범법행위를 눈감아 줄 거라는 기대심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것. 이 같은 탈북자 범죄의 증가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탈북자에 대한 차별행위로 이어져 더 많은 범죄를 낳게 되는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탈북자 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에 입을 모은다.
김 연구관은 탈북자 범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대책 중 하나로 탈북자들의 입국 전 범죄 경력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련기관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꼽았다. 탈북자들의 이전 경력을 투명하게 해 정착초기단계부터 세심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관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탈북자를 사전에 알아 내 관리하고 교화하는 시스템이 미비한 것이 탈북자 범죄 증가의 큰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실질적으로 범죄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나원에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관은 이어 “신변보호 담당 보안경찰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은 탈북자들의 생활지도, 인간적 신뢰구축, 준법정신, 범죄행위 등에 대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 범죄 예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