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온라인팀] 대법 “긴급조치 4호는 위헌”…1·9호에 이어 판결
대법원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반대하던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근거가 됐던 국가안전과공공질서의수호를위한대통령긴급조치 제1·9호에 이어 제4호에 대해서도 위헌을 선언했다.
긴급조치 4호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관련 단체의 가입 및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영장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해 비상군법회의에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1974년 4월 선포된 뒤 같은해 8월 긴급조치 5호에 의해 해제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6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추영현(83)씨에 대한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제4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영장주의, 법관에 재판받을 권리, 학문의 자유 및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무효"라고 밝혔다.
또 "재심판결 당시 법령이 폐지됐더라도 그 폐지가 처음부터 헌법에 위반돼 효력이 없는 경우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에서 규정한 무죄 사유에 해당한다"며 "면소 대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한 긴급조치 제4호가 합헌이라는 취지로 판시한 기존 대법원 판례는 모두 폐기한다"며 판례를 변경했다.
추씨는 1974년 일간스포츠 재직 시절 취직을 부탁하며 찾아온 권모씨에게 긴급조치 4호를 비방하는 등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긴급조치 1호 및 4호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2심에서 각 12년을 선고받았다.
추씨는 이후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형이 확정돼 4년2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고, 2009년 6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재심개시 결정을 받아냈다.
재심 사건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긴급조치 내용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 내지 신체의 자유, 헌법상 보장된 청원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긴급조치 1·4호는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돼 위헌이고, 현행 헌법에 비춰봐도 위헌"이라며 "형사소송법상 '피고 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 추씨에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 및 9호에 대해 위헌을 선고한 뒤 제4호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유신헌법 아래에서 이를 합헌이라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들을 폐기했다"며 "이런 점에서 한국 사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이날 선고는 긴급조치 제4호는 당초부터 위헌이라는 판결"이라며 "국민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형벌법규와 국가형벌권 규정에 대해 사법심사권을 행사했다"고 부연했다.
한편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 제1호, 지난달 제9호에 대해 각각 위헌을 선고했으며,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제1·2·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제4호에 대한 헌법소원은 제기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대법의 선언에 따라 긴급조치 제4호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들도 다른 재심사유에 대한 증명 없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김해웅 기자 <haewoo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