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노심초사 왜?

2013.04.22 14:51:45 호수 0호

'두 토끼' 잡으려다 둘다 놓칠라

[일요시사=경제1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한라건설 살리기에 두 팔을 걷어부쳤다. 그런데 주주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일부 주주들은 민형사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으며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한라그룹 임원들이 자사주를 잇달아 매수하며 주주들을 달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라건설-만도-마이스터-한라건설.' 한라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다. 이런 순환출자는 적은 자본으로 여러 기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동안 많은 재벌들의 선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계열사 한 곳이 '삐걱'대면 그 여파가 나머지 계열사를 모두 흔들 수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극동건설에 돈을 쏟아 붓다 망한 웅진그룹이 대표적 사례다.



웅진 전철 밟나?

한라그룹에서는 한라건설이 삐걱댔다. 건설경기 침체 여파였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한라건설을 살리기 위해 우량 계열사인 만도를 동원했다.

지난 12일 만도는 100% 자회사인 마이스터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형태로 한라건설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만도 측은 신사현 대표이사 부회장 명의로 자료를 내고 "유상증자에 대한 충분한 법률 검토를 마쳤고 회계법인이 산정한 공정가치를 기준으로 했다"며 유상증자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어 "자금 부담 탓에 만도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한 것은 한라건설과 만도의 경영 정상화에 불가피한 과정이었다"며 "무엇보다 모회사인 한라건설을 살리고 소속 종업원들과 협력 업체의 일자리를 보전하는 데 최대 목표를 뒀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한라건설은 유상증자를 통해 3435억원 납입이 완료됐다고 장 마감 후 공시했다. 대금은 정 회장이 50억원을, 나머지 전액은 마이스터가 납입했다. 추가로 물류창고 및 골프장 등 자산의 매각으로 5600억원 정도를 지원할 계획이다. 순환출자 구조상 한라건설이 흔들리게 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 자금 지원이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만도의 주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만도 지분 1.77%를 보유한 트러스톤자사운용은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트러스톤 측은 "주금납입을 연기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만도가) 강행했다"며 "앞으로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구, 배임 혐의 고소, 주주 대표 소송 등 회사와 대주주 측의 책임을 묻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웅진사태에서 봤듯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나 다른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회수가능성에 대한 담보 없이 우량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하는 잘못된 관행은 위법하고 부당할 뿐만 아니라 동반부실 위험 등 경제적 부작용이 크다"면서 "투자기업의 경영진이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이를 막으려 노력하는 것이 자산운용사의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다.

만도 지분 9.7%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도 만도를 두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8개월 전 이른바 '한라공조 사태' 때 만도에게 힘을 보태준 바 있는 데 '뒷통수'를 맞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측은 "유증 참여자를 장 마감 후 기습 발표한 것도 그렇고 이번 과정이 전반적으로 불쾌하다"고 말했다.

계열사 동원해 건설 살리기…9100억 긴급수혈
유상증자에 주주들 반발 "소송 등 강력대응"

일단 이번 증자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17일 한라건설은 전거래일 대비 320원(6.04%) 뛴 56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문제는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인 상태에서 이번 한 번의 자금 지원으로 한라건설의 회생이 해결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도 한라건설의 회생이 즉각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정 회장은 왜 이렇게 한라건설에 집착하는 걸까?

1962년 고 정인영 명예회장이 설립한 한라그룹은 한 때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2위권 기업이었으나 지난 1997년 IMF 때 해체됐다. 당시 만도는 외국계 자본(선세이지)에 매각되는 아픔을 겪었다. 정 명예회장이 작고한 뒤 만도 되찾기는 창업자의 유지가 됐고 정 회장은 한라건설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을 통해 선세이지에 6500억원을 주고 만도를 되찾았다.

현재 한라그룹의 양대 사업축은 건설사인 한라건설과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만도다. 정 회장에게 한라건설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데 발판이 됐던 회사인 것이다. 이번에 만도의 돈으로 한라건설을 살리기로 결정한 것도 정 회장의 애착을 엿볼 수 있다.

유상증자의 성공으로 정 회장은 한숨 돌렸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한 소액투자자는 "그룹 오너가 우량한 회사를 개인의 사금고처럼 동원했다"며 "특히 정 회장이 만도 주식을 사들인 것은 주주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소액주주 커뮤니티인 네비스탁은 "한라건설이 만도의 최대주주 중 한 주체인데 우량 자회사인 만도가 모회사의 부실을 지원하는 꼴이 됐다"며 "이는 만도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태"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 회장은 16일과 17일에 만도 주식 1300주, 1200주를 각각 취득했다. 이로써 정 회장이 보유한 만도 주식은 17일 기준 137만5019주로 전체 지분의 7.55%가 됐다.

주주들 '콧방귀'


최병수 사장은 지난 9일 한라건설의 주식 1만주를 주당 6242원에 장내매수했으며 이원철 상무도 지난 15일 한라건설 주식 1500주를 주당 6200원에 장내매수했다. 만도 주가가 급락하는 기간 최대주주 그룹이 사들인 주식은 총 5240주로 약 4억원 규모다. 또한 만도는 논란이 불거지자 이번 유상증자 배경과 만도의 경영현황을 설명하기 위해 기업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한라그룹의 이 같은 움직임의 만도의 유상증자 참여 결정 이후 관련 종목들의 주가가 급락세를 보이며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비난에 형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은 '콧방귀'를 뀌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까지 합심해 한라그룹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임시주총 소집을 준비하고 있다. 한라그룹의 주주 ‘달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라그룹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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