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 정치인의 ‘도박귀환’ 후유증

2009.04.07 00:05:38 호수 0호

정치권의 두 거물이 돌아왔다. 정동영과 이재오. 그들은 지난해 치러졌던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마하고 대한민국 정계를 떠났던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패자’가 되어 쫓기듯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



두 사람 다 못다한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1년도 채 안 돼 공히 ‘놀던 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벌써 목표로 했던 공부를 다한 것일까.

대한민국 정치에는 다른 나라엔 없는 희한한 ‘전통’ 같은 게 있다. 선거에서 패하면 꼭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나곤 하는. 국내에 있기 민망해서 그런 것인지, 선거 때 너무 힘을 빼서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92년 대선에서 YS에게 분패했던 DJ가 그랬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참패했던 이회창도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선거를 앞두고 돌아와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다시 선거에 출마했던 것. 그후 DJ는 결국 97년 대선에서 대권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지만, 이회창은 세 번째 도전인 2007년 대선에서도 이명박, 정동영에 이어 3위에 머무르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 희한한 전통을 잇기라도 하듯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에 패한 정동영은 2008년 총선에서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인 전주 덕진이 아닌 서울 동작을에 차출돼 정몽준에게 패하고 쓸쓸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 이재오 역시 지난해 총선에서 다크호스로 등장한 문국현에게 석패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내정치를 떠나 미국에서 낭인 아닌 낭인생활을 해야만 했다.

똑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한 사람은 9개월, 한 사람은 10개월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국내정치와는 거리가 먼 타국 땅 워싱턴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하다가 돌아온 시점도 비슷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6일 차이로 귀국한 두 사람의 귀환 풍경은 그러나 판이하게 달랐다.

지난 3월2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정동영은 ‘왕의 귀환’인 양 환영 나온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성대한 귀국행사를 가진 반면, 28일 일본을 거쳐 김포공항으로 몰래 들어온 이재오의 귀국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혼미한 정국에 시끌벅적한 정동영의 귀환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은 것일까. 단지 측근 몇 사람만이 그의 귀국을 반겼을 뿐이다.

그렇게 대조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두 사람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4·29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들이 끼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까닭이다.

먼저 돌아온 정동영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면대치하며 자신의 텃밭인 전주 덕진 출마를 고수하고 있고, 귀국 후에도 칩거 아닌 칩거를 하고 있는 이재오는 정작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도 주변에서 연일 야단법석이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어떻고’ ‘이상득과 박근혜가 어떻고’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기에 그리 새삼스러울만한 것은 못되지만, 그렇더라도 두 사람의 귀환은 좀 더 신중했어야 마땅하다.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 자칫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 비춰질 경우 ‘삼류정객’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동영의 경우 자신의 출마 선언에 따른 거센 비난을 한 몸에 떠 안으며 외로운 미국 유랑에 이어 또다시 정치적 유랑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540만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정권을 빼앗긴 데 따른 정치적,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에 당내 비판은 물론 대다수 여론도 그의 재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재오 역시 당장 정치적인 행보는 멀리하겠다고 말하지만 당내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는 친이계 주류에선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과의 불화가 자신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난 18대 공천 과정에서 앙금이 남아 있는 친박계와의 대면은 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당내 비판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권력의 중심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정권이 끝날 때까지 낭인이 될 게 뻔하다.

혹자는 어차피 ‘도박귀환’을 감행한 마당에 못할 일이 뭐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선택은 더욱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정동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권 재수의 꿈을 접고 먼저 당내 화합을 위해 몸을 낮추어야 할 것이며, 이재오 또한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명박정권이 더 이상 잡음 없이 순항할 수 있도록 백의종군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작금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정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제 본인들의 선택에 달렸다. 지금 국민들은 그들의 도박귀환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만큼 본인의 정치적 욕심과 일신의 영달보다 작게는 당내화합, 크게는 국민화합을 위한 선택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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